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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Jbenitora May 02. 2023

날 때부터 큰 뜻을 품고 울음을 터뜨리는 사람은 없다

사회복지 현장실습과 인생

재작년 11월부터 시작한 사회복지사 2급 취득과정이 끝을 보이고 있었다. 올해 초에 드디어 3학기에 걸쳐 진행한 전공필수와 선택 수업들을 마무리하였다. 그간 강의를 듣고 과제를 내고 퀴즈를 보고 시험을 쳐왔던 루틴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생각하니 후련했다.


사회복지사 과정을 수강한 것은 큰 뜻이 있어서가 아니었다. 시작은 의미 없이 흘러가는 시간에 무언가라도 해보자는 마음이었다. 마침 그 시기에 사회복지사 취득과정을 인터넷에서 한참 광고를 하고 있었고 그 정도 교육비는 통장에 꽂혀있었기 때문에 신청한 것이었다.


스스로를 공부라는 구덩이 속에 던져 넣고 이제 겨우 기어 나왔지만 사회복지사 자격증 취득을 위해서는 아직 넘어야 할 산이 하나 남아있었다.

사회복지 현장실습 160시간

실습과목의 학점을 따기 위해서는 지금까지 수업을 받았던 온라인 교육업체가 아닌 별도로 사회복지 학과가 있는 대학교에 시간제로 입학 신청을 해야 했다. 교육업체에서는 해당 대학들을 안내해 주고 이후 어떻게 하는지까지 친절히 알려주었지만 번거롭다는 생각은 떨칠 수 없었다. 한 번에 할 수 있었으면 좋겠지만 조건이 그런 것이니 어쩌랴! 벽처럼 느껴지는 과정을 안내문을 몇 번을 다시 읽으며 넘었다.


문자안내에 따라 학점은행에 그동안 수강한 과목들을 등록하고 학점당 얼마의 수수료를 내고 학점인정신청을 했다. 학점들이 등록되자 사회복지 수강과목들의 성적증명서를 뽑고 고등학교 졸업증명서와 성적증명서를 주민센터에 가서 떼왔다. 모집기간에 여유가 있는 사이버대학교 하나를 골라 입학신청을 넣었다. 모집기간이 끝나고 곧 입학허가가 떨어졌다.


사회복지협회 홈페이지에 공지된 실습생을 받아주는 기관 리스트를 보고 연락을 돌렸다. 이번학기 실습이 가능한 기관과 연락이 닿았고 4월 한 달 동안 실습을 하기로 협의하였다. 학교에서 준비하라는 서류 리스트를 보며 기관에 방문하여 드릴 서류를 전달하고 받을 서류를 받았다. 학교에 서류를 등기로 발송하고 얼마 안 있어 추가 등록금을 납부하였고 사회복지 현장실습 반과 교수님이 배정되었다.


3월이 금방 지나갔다. 실습기간 중 15주간 들어야 할 온라인 수업을 4주간 들었고 매달 1회씩 총 3회 있는 실습세미나도 한번 다녀왔다. 세미나에서 대구와 울산 지역의 기관에서 실습을 하는 실습생들과 교수님을 만났다.


4월이 되었다. 실습기관에 소정의 실습비를 입금하고 실습 하루 전에는 병원에서 전문가용 코로나검사를 받았다. 첫 월요일부터 20일간 매일 8시간을 채워 총 160시간을 해야 하는 사회복지 현장실습이 시작되었다.


현장 실습기관은 울산 지역의 노인 복지 센터 중에서 규모가 큰 편에 속하고 기관평가도 A를 놓치지 않는 곳이었다. 서로 다른 대학교 소속이지만 실습생 두 분이 같은 기간 함께 실습하였고 우리들은 서로 의지하며 실습을 하였다.


매일 1층로비와 실습실 청소로 시작되는 하루였다. 오전엔 사회복지법에 근거한 요양 현장에서의 일상을 배웠다. 요양복지사, 간호사, 물리치료사 선생님들이 매일 쓰는 입소자 건강일지를 검토해 보고 수정이 필요한 것은 표시해두었다. 오후에는 노인성 질환과 특징에 따른 대응방법과 같은 생소하지만 복지사로서 모르면 안 될 이론을 배웠다. 간간이 어르신 산책이나 화분심기 활동의 도우미를 하기도 하였다. 퇴근하기 전에는 주간보호시설 생활실의 바닥을 쓸고 닦고 화장실 청소를 하였다. 그러던 중 실습생 한분이 개인 사정상 중도포기를 하였고 남은 실습생인 S선생님과 나는 꾸준히 실습을 하였다.


S선생님과 점심때 도시락을 같이 먹고 애들 키우는 얘기도 하며 실습기간을 지내다 보니 어느새 3주가 흘렀다. S선생님의 현장실습기간이 먼저 끝났다. 그 이유는 S선생님은 2020년 법개정 전에 사회복지 수업을 다 듣고 실습을 미뤄 두다가 3년이 지난 지금 실습을 신청한 것이라 그전 법에 따라 120시간만 하면 되었기 때문이었다. S선생님은 실습 시간만 짧은 것이 아니고 학교에 내는 실습 일지도 매일 한 장을 약식으로 작성해도 되었고 찍어둬야 할 실습사진의 숫자도 적었다. 실습세미나도 세 번 중 한 번이라도 빠지면 낙제인 나와는 달리 한 번도 가지 않아도 감점에 그친다고 했다. 160시간을 꽉 채워야 하는 나를 남겨두고 S선생님은 실습을 종료하였고 나는 혼자 남았다.


혼자라도 일상은 이전과 같이 이어졌다. 다만 아침에 청소 범위는 그대로인데 청소 인원이 줄어드니 시간이 2배 가까이 더 들었다. 식사를 혼자 해야 했고 수업시간에 실습지도해 주시는 사회복지사 선생님의 시선을 한 몸에 받아야 했다. 하루치 검토 할 서류의 분량도 혼자서 하니 생각보다 빨리 줄어들지 않았다. 주간보호시설 생활실 청소도 혼자 해야 했기에 시간이 더 걸릴 수밖에 없었다. 남은 며칠간 S선생님의 빈자리는 확실히 느껴졌다.


혼자 하는 실습은 전보다 외롭긴 했지만 나쁜 것만은 아니었다. 사회복지사, 요양보호사, 간호사, 주방 선생님 등 기관의 선생님들은 간식을 따로 챙겨주거나 수고하신다며 꼭 인사해 주었다. 이제 곧 실습을 마칠 내가 하나라도 더 배워가도록 주간회의에 배석을 시켜주거나 직원 역량 강화 교육을 참관시켜 주었다. 주간복지 어른들에게 챙겨드릴 간식으로 미나리 전을 만들 때는 실습생 먼저 챙겨줘야 한다며 제일 처음 구운 미나리 전을 내게 주기도 하였다. 나는 미나리 전을 다 먹고 전 굽는 일꾼이 되어 일손을 거들어 드렸는데 기름이 튀고 부침가루가 묻어도 즐거운 경험이었다.


5월이 왔다. 드디어 기관에서의 사회복지 현장실습이 끝이 났다. 실습지도자 선생님에게서 밀봉된 실습평가서와 확인서, 그간 작성한 일지 등 대학교로 보내야 할 서류를 전부 받았다. 그간 챙겨주신 것이 고마워 음료수를 기관의 종사자 수만큼 사서 감사의 인사와 함께 실습지도자 선생님께 전달드렸다. 한 달 동안 직원과 같은 마음으로 다녔던 곳을 떠나니 시원하면서도 아쉬웠다.


지나고 보니 20일의 사회복지 현장실습은 인생의 축소판이었다. 처음 실습기관에서 인사를 할까 말까 데면데면하던 시기는 세상을 알아가는 아이의 시기와 같았다. 실습생 분들과 함께 매일 배우고 다른 복지사 선생님들의 일을 도우며 하나의 일꾼으로 성장했다. 함께 하던 분이 돌연 이탈을 하는 일을 겪고 남은 두 사람은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남아서 꾸준히 실습을 했다. 그런 끝에 한 사람이 먼저 목적을 달성하고 떠났다. 남은 사람은 떠난 사람의 빈자리가 크게 느껴졌지만 자신만의 업무루틴을 세워 효율적으로 빈자릴 메웠다. 그리고 수일 뒤에 역시 목적을 달성하고 기관을 떠난 것이었다.


나는 실습기간 동안 스쳐 지나가는 선생님들께도 눈이 마주치면 인사를 하였고 시키는 일이 아니라도 의아한 일은 물었고 체크하였다. 기존의 방식에 개선이 필요  있으면 무엇을 어떻게 하면 좋을  같다고 정리해서 제안했다. 나의 배움도 좋았지만 어떻게든 나의 존재가  기관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실습을 했다. 그랬더니 시간도  가고  많이 배울  있었다. 기관 선생님들과도 쉽게 친해질  있었고 고맙다는 말도 많이 들을  있었다.


이제 실습은 끝났지만 앞으로도 이렇게 인생의 축소판과 같은 일들을 여럿 겪으며 인생을 살게 될 것이다. 실습기간 동안 정말 많은 것을 배웠다. 사회복지법과 현장에서의 업무지식들도 물론 소중하지만 그 기간동안 시키는 일에 열정을 가지고 임했던 것은 인생을 두고 큰 자산이 될 것이다.


누구도 태어날 때부터 큰 뜻을 품고 울음을 터뜨리는 사람은 없다. 세상을 대하고 살아가는 자세에 따라 그 뜻이 커지고 끝내 이루게 되는 것이다. 수동적이고 방어적으로 딱 할 것만 하고 세상을 살아가는 것과 시키지 않아도 일을 찾아 하는 열정을 가지고 세상에 도움이 되고자 하는 목적을 세워 살아가는 것 중 어느 것이 자신과 사회에 더 유익한지는 말 안 해도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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