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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Jbenitora Apr 13. 2023

청년이 중년이 되어 노년을 생각하다

20대 대학생 시절 어느 추석날, 명절 특집 방송들을 보고 있었다. 남자 댄스 가수 하나가 무대에서 춤을 추는데 활력이 넘쳤다.


'아 나도 저 나이로 돌아가고 싶다.'


그 가수는 나보다 겨우 2살이 더 어릴 뿐이었다.


육체적으로 한참 전성기를 맞이하는 20대는 보이는 것이 중요한 시절이었다. 친구들이 가지고 다니는 비싼 가방, 멋진 옷과 신발에 시선을 뺏겼다. 누가 근사한 차라도 뽑으면 부러워했다. 외모를 꾸미는데 돈을 아끼지 않았고 폼나는 여행지로 여행을 가서 사진을 남기고 SNS에 남겨두었다. 사회생활을 한지 얼마되지 않아 월급이 적다는 것만이 유일하게 아쉬운 시기였다.


스무 살의 내 모습은 이랬다.


군에서 고된 유격훈련을 마치고 자대까지 행군으로 복귀했다. 행군을 한 지 5시간도 넘게 지난 새벽녘이었다. 한걸음 한걸음이 태산을 옮기듯 무겁고 몸에 힘이 없었다. 허리는 앞으로 굽고 어깨는 군장의 무게에 아프다 못해 감각이 없었다. 깜깜한데다 처음가는 길이라 목적지까지 얼마나 남았는지 감이 오지도 않았다. 앞뒤로 쭉 늘어선 대열의 중간에서 불현듯 이런 생각을 했다.


'나보다 한참 앞에서 걷고 있는 저 동료와 자리를 바꿨으면 좋겠다.'


걸으면서 드는 생각은 이뿐만이 아니었다.


'옆의 도랑으로 빠져서 열외를 할까? 힘드니 군장이라도 차에 실어달라고 소대장에게 말할까? '


하지만 이건 모두 임시방편일 뿐이었다. 동료와 자리를 바꾼다 한들 단 몇 분 더 빨리 갈 뿐 행군 전체적으로 미치는 영향은 거의 없을 것이었다. 도랑으로 일부러 빠지면 열외는 될지언정 차후에 놀림감으로 남을게 뻔했다. 힘들다고 말해봐야 소대장의 불호령만 들을 것이었다.


그렇게 탈진을 한 상태에서 행군을 하면서 생각이 꼬리를 문 결론은 의외로 간단했다.


'나만 힘든 게 아니야! 체력이 되는 한 묵묵히 걷던 대로 걷자.'


마음을 다잡아도 걷는 건 여전히 쉽지 않았지만 쉬는 시간에 배급되는 맛스타 한 캔이나 5분 더 쉬고 출발하는 사소한 것들이 큰 위안으로 다가왔다. 기계처럼 걷다 보니 서서히 날이 밝았고 수많은 동료 병사들과 함께 자대 위병소를 통과했다. 우리는 푹 삶아진 양배추 같이 늘어져 있었지만 대대장님의 입에서 행군 종료 선언이 떨어지자 모두 남은 힘을 쏟아 승리의 괴성을 질렀다.


이렇게 나의 스무 살은 삶에 대해 모르는 것이 많고 나의 편함이 최우선이던 시절이었다. 미숙했던 나는 20대를 거치며 여러 실수와 실례를 범하면서 참을성을 배우고 꾸준함을 배우며 성장하였다.


30대가 되면서 돈보다 시간이 더 아쉽다는 느낌이 들었다. 출장을 다니며 9to6에 맞춰져있지 않은 사람들이 거리를 활보하는 모습을 보면서 그들을 부러워했다. 아직 충분하진 않지만 월급은 적정 수준을 받고 있는데 여유시간이 없었다. 체력은 운동을 안해도 받쳐주었지만 결혼을 하고 육아와 회사생활을 병행하면서 가정에 얽매이게 되었다. 연예인과 나는 전혀 다른 세계의 인물임을 받아들이기 때문에 부럽다거나 동경하는 느낌이 사라졌다.


30대의 나는 세상의 일원이 되어 열심히 달려갔다. 이상보다 현실에 더 가깝게 살았다.


40대가 되니 아이들은 커가고  들어갈 일이 많아졌다. 자신을 위해 쓰는  보다 아이들을 위해 쓰는 돈이 훨씬 많았다.  양말은 구멍난지 모르고 계속 신을지언정 손바닥보다 작은 천이 들어가는 어른 양말보다도 비싼 아이 양말은 커가는 아이의 발에 맞춰   사줬다. 세상의 일보다는 가정을  챙기고 새로운 것에 도전을 주저하게 되었다. 체력이 떨어지기 시작하는데 운동은 여전히 남의 일이고 밥은 익숙하면서 맛난것을 찾아먹었다.


동시에 40대의 나는 주변사람들의 소중함을 알고, 베풀면서 사는 것이 세상과 나를 동시에 이롭게 한다는 것을 아는 사람이다. 그리고 20대부터 해 온 노력이 하나씩 보상으로 나타나는 것을 느낀다. 단시간의 요행보다 꾸준함이 훨씬 값지다는 말뜻을 알게 된 것이다. 그래서 아직 남은 수많은 하고픈 것들이 내 생애에서 전부 이뤄지지는 않을지라도 한두 개는 이룰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진다.


최근 보이스피싱이니 주식리딩방이니 허위매물이니 깡통전세니 해서 남의 것을 탐하고 뺏으려는 사람들이 심심하면 뉴스를 탄다. 2000년대를 거치며 도둑질이나 소매치기가 거의 사라진 대신 사기가 옛날에 비해 더 과감해지고 횡행하는 것 같다. 자신이 직접 쌓지 않고 남이 쌓은 것을 뺏으려는 사람들을 크게 처벌하지 못하는 사회와 법이 한몫한다. 세상을 이제야 알아가는 젊은이들이 남에게 피해를 입혀도 큰 처벌을 받지 않는 것을 보고 커서 사기꾼이 된다면 그게 온전히 개인의 잘못일까?


묵묵히 발걸음을 옮기던 앞서가는 동료의 자리와 바꾸고 싶다고 생각한 철없던 내가 있었다. 그 청년은 다양한 실패와 좌절 속에서 길을 찾아 지금까지 왔다. 살면서 얻는 경험은 확신을 가지게 하고 사소한 것에 대한 집착을 버리게 해 주었다.


이제 나는 20대로 돌아갈 수 없다. 지금 여기서 할 수 있는 최선을 찾아야 한다. 그것은 새로 바뀌는 것들에 대해 적응하기보다는 남의 손을 빌리는 것을 더 편하게 생각하는 나를 마주하는 싸움이다. 사회적 지위가 있을수록, 자신이 중요한 자리에 있다고 생각할수록 사소한 것은 자기 할일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젊은 날의 내가 답답해하던 사람들이다. 손발이 멀쩡히 있으면서 온라인 뱅킹과 장보기, 티켓예매, 심지어 건전지 갈아끼우는데도 남의 손을 빌려야 하는 사람들 말이다.


그런 사람이 되지 않기 위해 새로운 도전을 삶의 즐거움으로 받아들이고 젊은 사람의 문화도 외면하지 않을 것이다. 이런 노력은 나이 들어 지금의 우리 자리를 물려받을 젊은 세대들과의 소통을 유지시켜 줄 것이다. 외골수로 외롭게 늙어가는 사람이 되지 않기 위해선 지금부터 씨를 뿌려야 한다. 20대부터 해온 노력이 40대에 수확되고 있듯 40대부터의 꾸준한 노력은 나의 풍요로운 노년기를 보장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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