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이 되면 하고 싶은 것을 다 해도 된다는 어른들의 말.
그것은 당연하게도 좋은 대학을 보내고픈 부모님과 선생님이 만든 말이었다.
대학 신입생이 되어 한 학기를 보내면서 덩그러니 내 앞에 놓인 자유를 어찌할지 몰랐다. 사립대라 비싼 학비가 아까워 18학점 들어도 될 것을 21학점을 채웠다. 그럼에도 수업사이에 공강이 있었고 저녁식사 이후에는 기숙사 점호 때까지 자유였다. 고3 때의 밀도 높은 생활에 비할바가 아니었다.
IMF시절이라 장학금을 받지 않으면 다음 학기엔 쉬어야 하는 학생들은 과제에 모임에 예습과 복습으로 정신이 없었다. 그에 반해 아버지 회사에서 학비 보조금이 나와 상대적으로 여유롭던 나는 낯선 자유에 목표하나 잡지 못했다.
별생각 없이 가입한 전산 동아리는 MT와 회식의 추억을 남겨줬을 뿐이었다. 평소 관심 있던 국제관계학 수업은 3학년 이상이 듣길 권장할 만큼 낯선 용어 투성이인 데다가 1학년은 나 밖에 없었다. 높은 교과 수준은 흥미를 잃게 했고 수강철회 기간을 놓치고 나서는 출석만 하는 수준이었다. 영어회화도 생전 처음 만나는 원어민 교수와의 수업이라 적응 안 되긴 마찬가지였다.
누군가가 내게 넘쳐나는 자유시간에 뭘 하면 좋다는 조언이라도 해주길 바랐던 걸까? 당연하게도 한 학기가 지나도록 조언해 주는 사람은 없었고 살벌하게 낮은 학점을 통해 사회는 길을 제시해 주지 않음을 처음으로 깨닫게 되었다.
그렇게 주어진 자유는 봄학기 따윈 잊고 방학을 신나게 보내고 돌아온 가을 학기에도 대부분 학생의 본분과는 상관없는데 쓰였다. 주말이 되면 기숙사 전화선을 통해 모뎀을 연결하거나 IPX로 선을 연결해서 '스타크래프트' 게임 대전을 했다. 평일에는 한 컴퓨터에 두 명이 앉아 키보드로 '사무라이쇼다운' 대전을 했다.
둘이서 대전하고 있다가 한 사람이 수업에 가면 금방 다른 친구가 빈자리를 채웠다. 수업을 갔다 오면 수업 있는 친구가 빠진 자리를 또 매웠다. 이렇게 자기 전까지 게임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도 시험기간이 다가오면 도서관 열람실에 들르기도 하고 LAB실에서 외국어 테이프를 틀고 큰소리로 따라 하며 공부했다.
습관이 되지 않은 공부라 시험기간이 끝나면 다시 게임하는 일과로 돌아갔다. 고등학교 때 못한 게임의 한을 푸는 듯했다. 오죽하면 우리 팀 남학생들은 학교축제 때 '사무라이쇼다운' 게임 대회를 열었다.
검도를 배우던 때라서 목도를 컴퓨터가 있는 기숙사 방 입구에 걸어두고 참가비를 낸 학교의 은둔 고수들을 맞이했다. 토너먼트를 통해 우승자를 가렸는데 나는 2번 이기고는 8강에서 떨어졌다. 우승은 다행히(?) 우리 팀에서 나왔다.
이렇게 미래보다는 당장의 재미를 위해 자유를 써버린 2학기는 더 처참한 학점을 선사했다. 자유라는 말이 즐거운 이미지였던 종전과 달리 스스로를 책임져야 한다는 무게감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