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흔히 착각에 빠져 산다.
'나만한 사람 없지!'
'내가 어디 가도 중간 이상은 하지!'
대학생 시절에 이런 생각을 많이 했다. 샤워하고 나와서 거울을 보며 '좀 생겼네!' 하는 것은 남자라면 누구나 경험하는 일이라고 쳐도 기숙사에서 속옷을 손빨래하면서 '이런 신랑감 없지!' 하며 혼자 피식한 것은 지금 생각하면 웃음이 난다. 시험을 볼 때도 공부를 그다지 하지 않았는데 성적이 잘 나올 때는 내가 잘난 덕이고 그 반대일 경우는 교수가 학생들을 괴롭히려고 시험을 어렵게 냈다며 넘겼다.
첫 번째 회사를 다니면서도 그런 생각은 변하지 않았다. 선배들이 정리해놓지 않은 계약서를 가나다 순으로 파일 철해서 정리해 놓을 때나 디지털 장비들을 수기로 관리하던 관행을 엑셀로 정리해 전산에 반영해 둘 때 '나 없으면 이 회사 어떡하냐!'라고 생각했다.
두 번째 회사, 세 번째 회사를 거치면서 점점 나는 그저 하나의 인간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달아갔다. 젊을 때의 패기가 사라졌다. 옛날엔 칭찬받던 일도 그 경력이면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이 되어버렸다. 뭔가 실수라도 했다 치면 나를 고깝게 보던 사람들의 공격이 이어졌다. 나를 방어하기 급급했고 천상계에 있던 자신감은 지상으로 내려오다 못해 지하 깊숙이까지 떨어지기도 하였다.
롤러코스트를 타듯하던 자신감은 지금에 와서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처럼 땅에 뿌리를 내렸다. 높지는 않지만 결코 쓰러지지는 않게 된 것이다. 한 번씩 젊은 시절을 생각하면 자신감이 과하던 내가 부끄러울 때도 있지만 남의 시선은 생각지 않던 패기만은 다시 가져오고 싶다.
얼마 전에 고등학교 친구들과의 식사자리가 있어서 친구들에게 물어봤다.
"그 당시 나는 어떤 사람이었어?"
친구들은 그 시절 나를 이렇게 기억하고 있었다.
'공부를 그다지 잘하진 않은 친구'
'꼰대 마인드가 있는 친구'
'책 읽기를 좋아하는 친구'
이 얘기를 듣고 약간 의외였다. 왜냐면 나는 고등학교 때 공부를 잘하는 편이라고 생각했고 꼰대 소리 들을 정도로 고지식하진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가만히 뜯어보면 친구의 말이 틀린 것이 아닌 게 나는 수능 모의고사 점수는 칠 때마다 전교에서 10% 안에 들었지만 내신 성적은 수, 우 보다 미, 양이 더 많았다. 수능 모의고사 점수가 그다지 중요하지 않던 고등학교 1학년 때 친구들이니 내가 공부를 잘하지 않았다는 기억이 맞는 것이다.
꼰대 같은 행동도 공부를 열심히 해도 성적이 안 나오는 친구를 잘 이해하지 못하고 잔소리를 했고, 내가 계획한 것이 틀어지면 불같이 화를 내기도 했기에 그렇게 생각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시간이 나면 도서관에 가서 여행서적, 소설, 수필, 자기 계발서 등 책을 잡히는 데로 읽고 다 못 읽으면 빌려와서 집과 학교에서도 읽었던 것을 기억해 준 것은 감사한 일이었다.
우리는 그 외에도 여러 얘기를 나눴는데 한 친구는 새벽까지 야간 자율학습을 시키고 지각하거나 떠들면 허벅지를 각목으로 때리던 고등학교 시절이 끔찍했다고 했다. 다른 친구와 나는 모두가 그러던 시절이고 세월에 나쁜 기억의 물이 빠져서 그런지 피멍이 들도록 맞았던 시절이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기억으로 남아있었다.
사람마다 생각과 처해있는 상황이 다르기 때문에 어떤 것에 대한 기억은 모두 다를 수 있다. 친구들과 얘기하면서 우리는 같은 시대를 살았던 전우와 같은 우정을 가지고 있지만 생각과 느낌은 모두 조금씩 달랐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전에는 내가 맞다고 여기는 것을 다른 사람들에게도 공감을 이끌어 내려고 애썼다. 하지만 요즘은 생각이 다른 사람을 억지로 변화시키지 않으려고 한다. 그 사람의 생각을 존중해 주고 다른 사람의 관점에서 오해로 받아들일 수 있는 점에 대해 언급해 주는 선에서 대화를 정리한다.
세상은 내가 의도한 대로 나를 봐주지 않을 수도 있다. 오해를 할 수도 있고 왜곡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내가 바른 길을 가고 있고 다른 사람에게 부끄럽지 않은 행동을 하고 있다면 시간이 지남에 따라 세상은 서서히 나를 왜곡 없이 바라봐준다.
지금 관계를 이어나가는 친구들은 모두 나의 단점을 모두 알고도 만나는 친구들이다. 나도 그 친구들의 장단점을 잘 알고 있고 장점에 훨씬 후한 점수를 주고 있다. 사람은 누구보다 더 낫다 못 낫다 할 수 없는 존재다. 비교 대상이 친구가 되던 과거의 내가 되던지 말이다. 아직도 일희일비하는 나를 보며 질문을 던진다.
지금의 나는 10대의 나보다 무엇이 얼마나 나아졌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