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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Jbenitora Feb 13. 2023

논리적으로 말하는 가장 쉬운 방법

 H형은 대학교 2학년 때 처음 만났다. 학번은 2년 빨랐지만 나이는 8살이 더 많았다. 서울대를 가기 위해 3수까지 하다가 군대를 다녀왔고 우리 학교로 왔다고 했다. 송파구에 집이 있었고 전형적인 서울 말투를 썼다. 여성들이 좋아하는 감미로운 목소리를 가졌고 무엇보다 논리적이었다. 다만 외향은 가죽잠바를 늘 걸치고 다녀서 그런지 아저씨 티가 확실히 났다.


 H형은 학교에 친구가 없었다. 대학을 늦게 들어간 형과는 달리 형의 친구들은 모두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 형은 아직 군대도 다녀오지 않은 나와 내 또래 친구들과 놀았다. 우리는 어울려 다니며 PC방에서 스타크래프트를 하고 오락실에서 DDR(Dance Dance Revolution)을 하였다. 고교생활에서 느끼지 못한 자유로운 대학의 분위기 속에서 성적이 바닥을 기던 시절이었다.


 우리 사이는 가까웠다. 방학기간에 H형이 컴퓨터가 필요하다고 했을 때는 울산에 살던 내가 일부러 서울 여행을 계획했다. 우리는 용산에 같이 갔고 발품 팔아 컴퓨터 부품을 보러 다녔다. 컴퓨터에 문외한이던 형을 위해 조립도 직접해 주었다. 이렇게까지 했던 것은 아직 인생에서 배울게 많은 나에게 형이 많은 부분에서 귀감이 되어줬기 때문이었다.


  대표적으로 내가 토익 성적이 잘 나오지 않아 힘들어할 때 형이 해결책을 제시해 주었다. 내 토익 성적이 낮은 이유가 파트 5와 6의 문법영역에서 죽을 쒀서라는 것을 알고 얇은 문법 책 한 권을 추천해 줬다. 본인이 대입 영어공부를 하면서 수많은 책을 봤는데 그것 만큼 정리가 잘되어있는 것이 없다고 했다. 형의 말은 사실이었다. 그 책을 달달 외우고 나니 문법 점수는 수직으로 올랐다. 고민이 있으면 형을 만날 때마다 이런 식으로 물었고 형은 어떤 고민에 대해서도 본인이 아는 한에서 명쾌하게 답을 주었다.


 나는 성격이 외향적이고 말을 많이 하는 편이었다. 고등학교 시절 어느날은 하도 말을 많이해서 학교 갔다가 집에 돌아왔을 때 입에 단내가 난 적이 있었다. 그때부터 말을 적게 해보고자 입에 투명테이프를 바르고 있기도 했지만 한두 시간 내에 떼내기 일쑤였다. 무협지를 보다가 면벽수행이나 묵언수행이 나오면 나도 해야 하나 고민하기도 하였다. 세상에 궁금한 게 많고 친구들과 공유할게 많던 나날들이었다. 말을 많이 한다고 해서 잘하는 건 아니라는 것은 대학에 가서 더 많이 느끼고 있었다. 나이를 먹을수록 장황하게 말하기보다 간결하게 핵심을 짚어서 말하는 것이 중요한 덕목이 되어갔다.


 평소에 H형은 한번 들으면 쏙쏙 머릿속에 들어오도록 말을 했다. 어느 날 형에게 물었다.


"형, 요즘 부쩍 말을 논리적으로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데 방법을 모르겠네요? 말을 잘하고 싶은데..."

"왜? 너의 말하기가 어때서? 지금도 소통하는데 문제없잖아."

"저는 형처럼 말을 조리 있게 하고 핵심을 정확하게 전달하는 화법을 쓰는 사람이 부럽거든요."

"그래? 그럼 일(1), 이(2), 삼(3) 방법을 사용해 봐!"


 형이 123 방법이라고 얘기한 방법은 말하려는 것을 3가지로 정리해서 말하는 것이었다.


"얘기 주제를 정하면 상대에게 뭘 전해야 할지를 머릿속으로 정리해 봐!"

"예를 들면요?"

"현대인의 필수품에 대해서 얘기한다고 해보자."


 형이 즉석에서 예를 들어 설명해 주었다.


"현대 사회를 살아가기 위해서는 3가지의 필수품이 있어. 첫째는 휴대폰이야. 약속을 정하거나 필요할 때 바로 연락할 수 있도록 해주는 기기지. 둘째는 컴퓨터야. 이메일을 확인하고 검색을 하거나 과제를 하고 업무를 할 때, 온라인 쇼핑을 하거나 게임 같은 여가생활을 할 때 필수적이지. 셋째는 자동차야. 내가 어딘가를 가고 싶을 때 언제라도 갈 수 있게 해 주지. 삶의 반경이 훨씬 넓어지고 삶을 더 풍요롭게 만들어. 이렇게 3가지는 현대인들이 살아가는데 꼭 필요한 물건이지."

 

 형의 설명에 감탄이 흘러나왔다. 이보다 간단하면서도 명료한 방법이 없었다. 그러고 보니 형은 강조하거나 핵심을 얘기할 때 123 방법을 항상 쓰고 있었다. 형은 다른 방법들도 있지만 이것이 가장 기본적인 방법이니 뭐든 우선순위를 정해서 상대가 이해할 수 있도록 정리를 해서 말을 하라고 조언했다.


 논리적인 말하기는 어려운 말하기가 아니었다. 말할 내용이 머릿속에 정리되어 있기만 하면 되었다. 그동안 정보를 전달하거나 생각을 전달하기 위해서 떠오르는 데로 모두 줄줄 읊었다. 형의 조언 이후로는 한 템포를 쉬면서 머릿속에서 먼저 정리를 하고 중요한 사항만 3가지 내외로 선별해서 말을 했다. 말하는 나도, 듣는 사람도 모두 만족하는 말하기였다.


 세월이 많이 흘렀다. 그사이 현대인의 필수품 3가지는 스마트폰이 나오면서 2가지로 바뀌었다. 하지만 그때 배운 논리적 말하기는 지금까지 내 삶에 도움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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