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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Jbenitora Jun 08. 2022

술과 본성

  인간과 술은 애증을 가진 친구이다. 신석기시대부터 항아리에 술을 담가 두었다 마신 흔적들이 중국과 중동에서 발견되는 것을 보면 문명의 시작 전에 술과 인간은 이미 함께 하고 있었다.


  역사가 흘러오면서 술은 권장되기보다는 박해를 받은 때가 많았다. 먹을 것이 부족한 과거에는 술을 담그는 것이 호사였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금주령을 통해 술을 담는 것과 마시는 행위 모두를 금지하기도 하였다. 그런 시기에도 생활이 넉넉한 일부는 몰래 빚어 마셨다. 비료의 발전과 농작물의 개량으로 먹을 것이 남아돌기 시작하자 술은 음지에서 양지로 나왔다. 각 집안의 고유의 주조방식에 따라 발효주, 증류주, 혼합주로 나뉘고 재료에 따라, 알코올의 도수에 따라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다. 언제 어디서든 만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럼에도 술과 함께 하는 데는 아직도 몇 가지 제약이 있다. 일정 나이가 되어야 허용이 되는 점, 음주 후 운전은 할 수 없다는 점, 일부 종교에 술을 마실 수 없는 교리가 있는 점등이다. 풍족한 21세기에도 술을 마시는데 인간 스스로 제약을 둔 까닭이 있을까?


  생각해 보면 술이란 참 요상한 존재이다. 사람을 발가벗겨 놓는다. 아무리 많이 배운 학자라도, 근엄한 신사라도, 얌전한 숙녀라도 술 앞에서는 자신의 본모습을 보일 수밖에 없다. ‘가면 벗기’라고도 볼 수 있는 이런 현상은 위장에서 흡수된 술의 알코올 성분이 간으로 운반되어 아세트 알데히드라는 물질로 바뀌면서 시작된다. 흔히 술에 취한다고 표현하는 단계는 간이 허용하는 용량보다 많은 알코올이 유입된 단계이다. 이때는 알코올의 일부가 분해되지 않은 채 뇌에 도달하여 감정 조절 중추를 자극한다. 이성이 잘 조절하고 있던 감정을 본성이 차지하게 되는 것이다. 더 나아가 알코올이 소뇌를 자극하면 몸을 의지대로 움직일 수 없게 되고 해마까지 도달하면 단기 기억상실증을 유발하여 필름이 끊긴다.


  바로 여기에서 제약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사람마다 고유의 본성을 숨기고 살아가는데 본성에 대해 알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이력, 경력, 학력 등 사람을 파악할 수 있는 대부분이 이성을 통해 기록되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의 본성을 깨우는 유일무이한 방법이 술을 마시는 것이다.


  잠자던 본성을 불러오는 마법의 물을 허락하기에는 이성이 아직 덜 수련된 청소년은 불안하다. 운전을 본성에 맡겼다가는 어떤 사고를 칠지 알 수 없다. 종교에서 요구하는 성인의 경지는 이성을 단련하여야 이룰 수 있기에 본성을 철저히 외면한다.


  술을 마신다고 하여 모두 사고를 치는 것은 아니다. 술을 소화하는 기능이 제각각이라 몇 병을 마셔도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는 사람이 있고 금방 취하더라도 얌전한 사람도 있다. 다만 개개인의 본성이 언제쯤 나올지 예측하기 힘들고 본성이 나왔을 때 어떤 사람이 되는지를 알 수 없기에 사전에 조심하는 것이다. 술에 취하면 자연스럽게 나오는 버릇들이 본성을 예상하게 한다. 술버릇이 나쁘다는 것이 꼭 본성이 나쁘다고 말할 수는 없겠으나 어느 정도 상관관계가 있다. 술을 마시면 폭력적으로 변하고 입이 거칠어지는 사람을 본성이 착하다고 할 수 없지 않겠는가.


   나도 술버릇이 있다. 취하면 마음이 즐거워져 실실 웃음이 샌다. 나쁜 버릇은 아니라 다행이지만 대학 신입생 시절 처음 이 버릇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를 떠올리면 조금 부끄러워진다.


  내가 다닌 대학은 포항의 한 시골에 외따로 떨어져 있었다. 입학생은 전원 기숙사 생활을 해야 했다. 게다가 종교적인 신념이 있어 교내에서는 부활절 포도주를 빼고는 술을 입에 대지 못하는 불문율이 있었다. 신입생 환영회도 다과와 음료수가 전부였다. 매점에서도 술은 찾아볼 수 없었다. 한잔 하려면 학교버스로 15분은 나와야 했다. 대학만 가면 술 마시고 이성 교제를 해도 괜찮다는 어른들의 말이 있었기에 견뎠던 고등학교 시절이었다. 그런데 기껏 노력해서 대학에 들어왔더니 술을 보기도 힘들다니 뭔가 힘이 빠졌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기회는 한 달 만에 찾아왔다. 마지막 교시 수업을 마친 오후 다섯 시 반쯤 평소처럼 식당을 갔다. 호주머니에 항상 챙겨 다니던 식권이 없었다. 번거로웠지만 기숙사 방으로 돌아와서 식권을 챙겼다. 그때 누군가가 방문을 불쑥 열었다. 옆방을 쓰던 범수라는 친구였다. “너 혼자 있어?” 짧은 물음에 “어”라고 답했다. 범수는 “아니야”라고 말하고는 방문을 닫았다. 싱거운 녀석이라 생각하는 찰나 범수가 다시 들어왔다. “시간 있으면 술 마시러 가자! 내가 살게”라고 했다. 술 마실 사람을 찾다가 아무도 없으니 나라도 데려갈 생각을 한 것 같았다. 술을 마시고 싶은데 그간 기회가 없던 나에겐 저절로 굴러들어 온 호박이었다. 식권은 다시 서랍에 넣고 주섬주섬 지갑을 챙겨 따라 나갔다.


 

 저녁 무렵 학교에서 밖으로 나가는 버스는 언제나 만원이었다. 그간 나갈 일이 없었기에 남의 일처럼 보기만 했었다. 각기 무슨 사연으로 통금시간인 밤 11시까지 서너 시간을 밖에서 보내려고 만원 버스를 타는지가 궁금했었다. 오늘 미어터지는 차속의 불편한 몸뚱이와는 상관없이 마음은 술 생각만 가득한 나에게서 그 답을 발견하였다.


  버스는 15분을 달려 문명이 있는 곳에 우리를 내려주었다. 15분을 더 타고 있으면 시내 중심가까지도 갈 수 있었지만 범수는 선술집이 많은 이 동네에서 식사와 함께 반주를 하자고 했다. 골목마다 치킨집, 족발집, 생선구이집, 동태탕집 등 가게들이 허다했지만 우리 학교 학생들이 자리를 전부 차지하고 있었다. 범수는 잠시 실망하더니 이런 건 예상했다는 듯 포장마차로 재빨리 발길을 돌렸다. 푸근해 보이는 포장마차 여주인이 있었다. 범수가 “이모, 여기 골뱅이랑 소주 1병 주시고요. 우동국수도 두 개 주세요”라고 말하자 여주인은 술과 찬거리를 금방 내어 왔다.


  지난 한 달간 범수는 1학년 동기 중에서 가장 말을 적게 섞었던 친구였다. 같은 방을 쓰지도 않았고 서울에서 자라서 그런지 울산 출신인 나와는 말투도, 생각도 달랐다. 우리 대학의 학제는 1학년은 전공이 없고 2학년이 되면 원하는 과를 선택하는 방식이었다. 희망 전공이 언론 방송학인 범수와 국제 지역학인 나는 완전히 진로가 다른 데다 교양필수 과목에서 조차도 마주치는 일이 없었다. 그런 범수가 아무런 이유도 없이 술을 마시자고 할 수는 없었다.


  소주 몇 잔이 비워지고 나니 슬슬 자기 이야기를 했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사귀어 오던 여자 친구로부터 헤어지자는 통보를 받았단다. 서울과 포항이라는 거리가 마음을 멀어지게 한 듯했다. 여자 친구와의 만남부터 최근 있었던 사소한 다툼까지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범수의 이야기를 자못 심각한 얼굴로 들어주었다.


  이야기를 하며 소주잔을 계속 비워대는 범수를 따라갈 수가 없었다. 대작하며 눈치껏 절반씩 나눠 마시고 있었는데도 취기가 올랐다. 얼굴이 화끈하고 자리가 붕 뜨는 느낌이 들었다. 범수가 소변을 보고 오겠다기에 같이 나가 포장마차 뒤 깜깜한 풀밭에 서서 물줄기를 내보냈다. 찬바람에 얼굴에 올랐던 열이 식었다. 뇌에서 이제 술을 그만 마시라는 신호를 보냈다.


  이런 내 상태를 모르는 범수는 내가 일부러 잔을 비우고 치워놓으면 자꾸만 술을 따라 다시 앞에 가져다 놓았다. 나보다 2배는 더 마신 녀석의 얼굴과 행동에는 취한 느낌이 없었다. 몇 잔을 더 마시니 주변이 빙빙 돌았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도 알 수 없었다. 손목시계를 슬쩍 확인하던 범수가 돌아가자고 하였다.

  ‘꽈당!’ 자리에서 일어나다가 발을 헛디뎌 넘어졌다. 범수가 손을 잡아 주었다. “괜찮아?”라고 묻는데 괜찮다는 말이 하고 싶었지만 대답이 나오지 않았다. 사실 혀가 꼬여 말이 나오지 않았다. 웃으며 고개만 끄덕였다. 범수가 안 되겠다 싶었는지 어깨를 부축했다. 버스정류장까지 5분을 걸어오는데 웃음이 자꾸 새어 나왔다. 부축을 받는 내 모습이 웃겼고, 부축하고 있는 범수도 웃겼다. 좀 걸으니 꼬인 혀가 풀렸다.


  정류장에 도착했다. 우리보다 먼저와 기다리고 있는 학생들 중 같은 교양수업을 듣는 여학생 무리가 있었다. 그 와중에 너무 반가웠다. 하나하나 이름을 부르면서 아는 체를 했다. “선희야 안녕”, “혜정아 안녕” 스스로 들어도 발음이 정확하지 않았지만 꼭 인사를 하고 싶었다. 그 친구들은 옆 사람들의 눈치를 보면서 인사를 받아줬다.  범수는 그런 내가 부끄러웠는지 나를 끌고 재빨리 줄 맨 뒷자리에 가서 섰다. 우리 뒤에도 줄이 늘어섰는데 아는 얼굴이 보이는 족족 웃으며 새는 발음으로 인사를 했다. 이 상황이 재밌고 사람들이 반갑고 여기 있는 것이 즐거운 나와 달리 범수는 눈을 땅에 깔고 있었다.


  만원 버스를 타고 다시 학교로 돌아왔다. 버스에 내려서도 말리는 범수의 팔을 뿌리치며 버스문 가까이 서서 내리는 친구들마다 잘 들어가라는 인사를 했다. 사람들이 다 내리고 나서야 범수에게 끌려 기숙사로 들어왔다. 범수는 방으로 나를 들여보내고 자기 방으로 돌아갔다. 잠 잘 준비를 하고 있던 같은 방 선배와 친구에게도 실실 웃으며 인사를 건네고 침대에 뻗었다.


  다음날 수업에 들어갔더니 여학생들이 평소처럼 인사는 했지만 나와 멀리 떨어져 앉았다. 어제 마주쳤던 사람들은 하나같이 나와 눈이 마주치지 않으려 했고 혹여 마주치면 인사만 하고 쏜살같이 자기 갈 길을 갔다. 평소 살갑게 인사하던 사이들은 아니었지만 어제를 계기로 친구들과 많이 친해졌다고 생각했는데 이 어색한 분위기는 뭔지 알 수 없었다.


  방을 같이 쓰는 친구에게 이 얘기를 해줬더니 껄껄 웃었다. 어제 술에 취해서 한 행동들은 모두 잊으라고 했다. 안 그래도 평소 튀지 않고 얌전하던 녀석이 미소를 띠며 인사하던 게 좀 이상하더라고 했다. 그 후 한동안 친구들은 나를 피했고 범수는 다시는 술을 마시자고 하지 않았다.


  사회생활을 하고 이런저런 모임에 나가면서 술을 마실 기회가 많았다. 하지만 큰 실수 없이 지금까지 살아왔다. 대학 신입생 시절 처음 술버릇을 알게 되었던 그날 덕분이다. 어느 정도 취기가 올라올 때 술을 멈춰야 하는지, 술에 취했을 때는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나만의 원칙도 그때의 경험이 만들어 주었다.


  이성이 시키는 대로 행동하고 일정한 거리를 두고 사람들과 친해지는 것이 일상화된 시대이다. 어느 자리든 품위와 체면과 같은 껍데기를 쓰고 앉아있어야 남에게 손가락질받지 않는다. 그래서 술은 더욱 소중한 존재이다. 이 요상한 녀석은 우리의 이성을 마비시켜 껍데기를 벗기고 태초로 돌아가게 해 준다. 각자의 본성에 의거한 술버릇만 남긴다. 순수를 추구하는 세태가 있는 한 술은 현대 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을 담당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겠다.


  경력이 어느 정도 차고 나니 여러 모임에서 심심찮게 불러 강의를 하거나 심사위원을 하는 경우가 생긴다. 그 자리에서는 전문가로서 체통을 위해 평소보다 과묵하고 진지하게 임한다. 이때마다 가면 속의 순수하고 웃음이 많은 내 본성을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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