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순이가 좋은 줄 알아?
아줌마, 오늘도집순이입니다.
누군 집이 좋아서 집에 있는 줄 알아?
어린이 집도 불안해서 못 보내고, 주위에 도와줄 사람 없어서 어쩔 수 없이 엄마인 내가 희생하는 거야.
나도 나가고 싶다고.. 돈도 벌고 경력도 인정받고 싶단 말이야..
오늘도 신랑에게 쓴소리를 해댔지만, 신랑의 한마디는 이랬다.
엄마의 역할이 뭐니?
아이는 누군가 봐주는 게 아니고 엄마가 당연히 봐야지..
다들 환경에 맞게 사는 거야..
누군가 대신 봐주지 않는다고 불평하지 말고...
답답한 마음에 뱉은 말들은 본전도 찾지 못했다.
그렇게 육아와 집안일을 하면서 나는 느꼈다.
직장에 다니는 게 훨씬 편하다는 걸..
내 밥 챙겨 먹을 시간에 아이 밥 하는 게 우선순위고, 집안일은 끝이 없다는 사실이다.
직장은 점심시간에 편히 밥이라도 먹고 퇴근이라는 끝이 있다.
물론 장점만 있는 건 아니라는 걸 잘 안다.
어딜 가나 한 명씩 존재하는 미친놈을 만나면 하루에도 내 감정은 오르락내리락 할터이니 말이다.
그건 집에 있어도 마찬가지다.
내 감정은 알아주지도 않는 남의 편 때문에 오늘도 서운한 마음만 남았다.
신랑이 좋아하는 닭볶음탕과 된장국을 끓이면서도 나는 생각했다.
집안일이라는 건 끝나지 않는구나..
맛있게 먹는 모습만 봐도 뿌듯하지만 먹고 나서 치우는 일도 내 몫이다 보니 최대한 설거지 거리가 적게 나오도록 한다.
배민에서 아무렇지 않게 시켜 먹고 싶지만 내 한 몸 열심히 움직이면 우리 집 식구가 배불리 먹는다라는 생각에 주방을 떠나질 않는다.
큰아이가 좋아하는 감자튀김, 딸이 좋아하는 떡볶이, 막내가 좋아하는 토스트를 하느라 나는 늘 바쁘다.
직장 다닐 때도 바빴는데, 집콕인 지금도 바쁘다.
아니 집콕일 때가 더 바쁘다.
가장이라는 무거운 짐을 달고 사는 신랑은 요즘 기운이 없어 보인다.
40대라는 중년이기도 하지만 심적으로 책임감이 크기 때문이다.
이때쯤이면 직장에서도 책임지는 위치에 오르기도 하고, 커가는 아이들을 보며 버티는 인생을 살아야만 하기 때문이다.
다른 일을 하고 싶어도, 내가 좋아하는 취미를 갖고 싶어도 그건 사치다.
오로지 가장이라는 책임감으로 그렇게 하루하루를 버티는 신랑이 안쓰럽다.
집에 있는 나는 왠지 분주히 움직일 수밖에 없다.
정리정돈은 습관이 되었고, 음식은 잘하지 못해도 최선을 다하고, 음식물 쓰레기는 최대한 빨리 버렸다.
집에 와서 우리 가족들이 편히 쉴 수 있도록 나름 노력했다.
그게 집에 있는 내가 할 일이라고 생각하면서 말이다.
잠시 쉬고 있는 나는 집에 쉬면서도 마음이 편치 않는다.
힘없이 퇴근하는 신랑을 바라보며 나는 큰소리를 쳤다.
여보, 1년만 버텨..
그다음엔 바통 터치하고 내가 나갈게..
그때쯤이면 아이들도 자기 손으로 밥은 해먹을 터이니..
제발 그렇게 해...라고 말하는 신랑을 보며 뭔지 모를 미안한 맘이 들었다.
집에 있다고 해서 마냥 편한 건 아닌데 말이다.
누군가 알아주기를 바라는 건 욕심이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욕심을 바라지 않는다.
엄마라는, 와이프라는 역할에 충실할 뿐이다.
처음 파김치를 담으면서 나는 어릴 적 나의 엄마가 생각났다.
아픈 몸으로 가족들을 위해 김치를 담는 엄마 모습 말이다.
더 이상 엄마가 담아준 김치를 맛 볼순 없지만 나는 오늘 씩씩하게 김치를 담는다.
눈물을 흘리며 (매운 파, 엄마 생각) 처음 파김치를 담갔다.
유튜브를 보며 따라 하는 재미가 솔솔 하다.
그렇게 집에 있는 나는 오늘 한 가지김치를 담갔다는 보람으로 어깨가 으쓱하다.
퇴근 후 내가 담은 파김치를 맛보는 순간 신랑은 함박웃음을 짓는다.
2프로 부족하다는 신랑의 농담과 우리 와이프가 대견하다는 웃음이다.
한때는 나 역시 불만이 많았다.
군인이라는 직업 특성상 타 도시를 돌아다녔다.
아이들 유치원과 학교 전학 문제, 새로운 환경으로 사실 힘들었다.
그렇게 지난 세월을 돌이켜 봤더니 우린 많이 강해졌다.
불만보단 긍정적인 생각을..
성급함 보단 여유를..
그리고 남과 비교 보단 나를 인정하기로 말이다.
예민함 보단 무던함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그랬더니 삶이 한결 가벼워졌다.
학원 다니지 않는 큰아들에게 영어 학원 다녀볼래?라고 했더니 신랑은 한마디 한다.
집에서 엄마가 가르쳐도 되잖아.
학원 전기세 수도세 내주러 학원 가지 말고..
그래, 오늘도 나는 큰아이에게 웃으며 말했다.
엄마가 공부를 잘했으니 직접 물어보라고...
몰래 해답지를 보고 아이에게 설명해 줬다.
아이는 엄마 정말 공부 잘했나 보다..라고 인정했다.
내 역할이 한 개 더 늘어났다.
선생님...
아이들 세명 가르치는 선생님이 되었다.
학원비를 벌고 있는 중이다.
생각한 대로 살면 된다.
중년에 삶의 지혜라면 바로 이게 아닐까?
부정보단 긍정을 선택하자..
나는 집에서 아이들 학원비까지 버는 능력 있는 아줌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