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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pellie Jan 22. 2020

책임, 꼰대 그리고 현재에 대하여

낭만닥터 김사부에서 말하는 두 개의 책임에 대한 이야기

책임질 수 있겠습니까?
살릴 수 있습니까!!!


최근 방영중인 낭만닥터 김사부라는 드라마의 한 장면에서 나온 대사입니다. 환자를 치료하는 의사라는 직무가 대상으로서 일을 바라보는 관점의 차이가 보입니다. 전자는 사람을 기준으로 합니다. 좀 더 나아가면 사람의 이익과 손해를, 그리고 이에 따르는 책임을 기준으로 일을 바라봅니다. 반면 후자는 직무를 기준으로 일을 바라봅니다. 의사라는 직무가 가지고 있는 성과책임이 무엇인가를 이해하고 그 성과책임에 충실하려 노력합니다. 이는 극중  서우진과의 대화에서도 그대로 드러나죠. "살린다. 무조건 살린다."라는 김사부의 말입니다. 직무성과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조금 풀어서 표현하면 '왜 일하는가?'라는 질문으로 이야기할 수 있을 듯 합니다. 의사라는 직무가 존재하는 이유라고 할까요.


A팀과 B팀이 있습니다. 두 팀은 업무적으로 서로 연결되어 있지요. 소위 말하는 '협업'이 뒷받침 되어야만 비로소 '가치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상태'에 이를 수 있음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협업의 관계에서 우리는 종종 직무와 직무가 연결되는 지점을 놓고 다투기도 합니다. 일전에 개인적으로 이들을 브릿지 업무라고 표현을 하기도 했었어요. 이들 업무는 때로는 매우 작고 소소한 일들, 소위 말해 손이 많이 가는 일들인 경우가 있습니다. 어찌 보면 귀찮고 굳이 내가 해야 하는가?라는 생각이 드는 그런 업무입니다. 그럼에도 이들이 없다면 '협업'이 온전하게 이루어지지 않게 되므로 우리가 바라는 '가치'가 온전하지 않거나 제대로 만들어지지 않을 겁니다. 이러한 브릿지 업무에서의 갈등의 이면에는 우리가 앞에서 언급한 대상으로서 일을 바라보는 관점의 차이가 한 축을 형성하고 있습니다.

두 개의 책임에 대하여


김사부라는 드라마를 보는 관점에 따라 다를 수 있겠지만 제가 드라마 속에서 계속 마주하고 있는 건 두 개의 책임 사이의 갈등입니다. 이 두 개의 책임과 관련하여 김용진 저자님의 '경영학 사용 설명서'에 있는 두 개념을 소개드립니다.

책임에는 2가지 종류가 있음을 이해해야 한다. 그중 하나는 '사전 책임'인데 어떤 일을 책임지고 수행하는 것과 관련되어 있다. 이러한 책임을 영어로는 'responsibility'라고 한다. 이러한 책임은 일이 시작되기 전에 지는 책임으로 일을 잘하기 위한 자발적인 책임이며 미래 지향적 성격이 있다. (중략) 책임의 또 다른 하나의 영역은 '사후 책임'이다. 이것은 어떤 일의 결과에 대한 책임을 묻는 것과 관련되어 있다. 영어로는 'accountability'로 표현한다. 이러한 종류의 책임은 일이 끝난 후에 지게 되는 책임이며 타율적이고 과거 지향적이며 조직 내 정치 구도에도 영향을 받는다. 이러한 책임에 초점을 맞추면 당연히 책임을 회피하는 문화가 형성된다. 그런데다가 직위에 따라 기계적으로 권한을 부여해버리면 권한은 많고 책임은 지지 않는 사람들이 마구 생겨난다.
경영학 사용 설명서 p75-76, 김용진 저, 클라우드나인


우리들이 사전책임을 책임이라는 단어로 이해하고 있다면 어쩌면 협업에서 브릿지 업무들에서의 갈등은 생각보다 그리 크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일을 통해 나아가고자 하는 방향이 같으므로 조율과 협업의 가능성이 높아지겠죠. 반면 사후책임으로 책임이라는 단어를 이해하면 굳이 책임질 가능성이 있는 일을 하지 않게 될 겁니다. 그리고 개인 경험에 비추어 지금까지 우리의 많은 기업들은 사전책임이 아닌 사후책임을 암암리에 더 강조하고 있었고 생각보다 많은 소위 경력을 가진 이들이 이들 사후책임에 익숙해져서 변화하려 하지 않는다는 점이겠죠.


일을 많이 하면 할수록 책임을 질 가능성이 높아지고 반대로 일을 하지 않는다면 책임질 가능성도 낮아지는 건 사실입니다. 따라서 누군가는 위험을 책임져야 할 일을 하지 않는 것이 당연하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겁니다. 다만 일을 하고 있는 한 사람으로서 저는 "일을 온전하게 하기 위해 발생 가능한 위험을 최소화하는 것"이라 달리 표현하고자 합니다. 전자는 행위를 회피하지만 후자는 적극적인 행위를 통해 일의 완성으로 움직이는 행동을 하겠죠. "일의 완성, 즉 일을 제대로 한다는 것"은 달리 표현하면 직무성과를 달성하는 것이라 말할 수 있지 않을까요. 우리가 왜 일하는가?에 대해 생각하고 스스로의 답을 만들어보는 시간이 필요한 이유입니다. 더불어

김사부를 보면서 우리가 그를 응원하는 건 어쩌면 우리들 마음 속에 사후책임이 아닌 사전책임을 따르는 것이 맞다는 무언의 동의가 있기 때문은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그것이 옳다라는 우리들이 갖고 있는 느낌 말이죠.


책임을 사후책임이 아닌 사전책임으로 이해하고 행동할 수 있기 위해 사실 우리들만 노력해서는 한계가 있습니다. 사람의 말과 행동, 우리가 하는 일의 최종 결과물은 결국 사람과 사람, 사람과 일, 일과 조직이 서로 연결되어 상호작용을 통해 만들어진 결과물이기 때문입니다. 기업이 사후책임을 강조하면서 구성원에게는 자율성에 기반한 사전책임을 강요하는 건 그 자체로서 모순일 겁니다. 그리고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우리의 많은 기업들은 사전책임보다 사후책임을 더 강조하는 지나온 시간의 경험이 있고 우리들은 그 경험에 대하여 의문을 제기하는 대신 익숙해져있을 가능성이 높음을, 그게 현재 상태임을 조금 더 직시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현실을 직시한다는 건 그냥 현재에 안주하기 위함이 아니라 보다 나은 상태로 나아가기 위한 시작점 내지 준비단계라는 점을 생각하면서 말이죠.


오늘 우연히 어느 인터넷 기사에서 『'김사부2' 흔해빠진 꼰대 말고  한석규 같은 사부 어디 없소?』라는 제하의 기사글을 만났습니다. 외형적으로는 '꼰대'처럼 보이는 김사부를 우리가 '꼰대'라 부를 수 없는 이유는 그가 일을 할 때 그 일의 직무성과를 만들어 내기 위해 올인하는 모습과 반대로 일을 하지 않을 때 사람에 대해 주는 따뜻함에 있는 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합니다. 반대로 생각하면 우리가 흔히 말하는 '꼰대'란 일에서는 책임을 회피하면서 정작 일과 상관없이 나이나 권위로 누르려는 누군가라 할 수 도 있을 듯 합니다.


책임질 수 있겠습니까?와 

살릴 수 있습니까!라는 

두 문장이 주는 생각거리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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