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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pellie Jan 14. 2021

인사평가, 프로세스와 컨텐츠

인사평가에 대한 많은 이야기들이 있습니다. 많은 경우 그 공정성과 절차적 타당성, 평가자의 주관과 조직 내 정치와 같은 다소 부정적인 이야기들입니다. 한편에서는 인사평가를 결과평가가 아닌 과정평가 내지 성장을 위한 피드백 평가가 되어야 한다고 말을 하기도 하지만 현실에서 많은 경우 '현실'이라는 이름으로 보상을 위한 평가가 되는 경우가 아직은 많아 보입니다. 요 며칠은 하루 종일 평가를 붙잡고 있습니다. 산술적으로 진행하면 누군가 이의를 제기했을 때 '기준대로 했습니다' 라고 말하면 될 지도 모르지만, 그러한 평가를 운영도 해보고 받아도 본 이로서 그것이 담당자로서 잘못이 없음을 이야기하는 근거가 될 수는 있을지 몰라도 인사평가라는 제도가 제 역할을 할 수 있는가에 대한 근거는 제시하지 못함을 느꼈음에 제 손으로 하는 평가를 그렇게 기계적으로 하기는 싫었다고 해야 할까요. 그만큼의 책임도 늘어나겠으나 나름의 판단을 조금씩 개입하고 있습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인원이 아직은 일일이 손으로 작업할 수 있을 규모라는 점이라고 할까요. 문서를 만들고 만들면서 내용을 조금씩 엿보기도 하고 비슷한 케이스에 서로 다른 판단이 나오는 자칫 평가자 오류에 빠질 수 있어 보이는 경우들을 확인하고 평가그룹 내 조정평가자와 이야기하기도 합니다.


이러한 모습들은 자칫 위험해 보이기도 합니다. 인사담당자가 모든 직무에 대해 다 알기란 쉬운 일이 아닌 까닭입니다. 그럼에도 프로세스 전문가로서 인사담당자는 컨텐츠에 개입할 필요가 없고 컨텐츠가 설사 잘못되었다 하더라도 그건 프로세스 문제는 아니니 프로세스 전문가로서 인사담당자는 그 평가 결과에 아무런 잘못이 없다고 할 수 있을까? 라는 질문을 했을 때 적어도 제가 내린 답은 '아니오'였습니다. 물론 제가 개입한다고 해서 무언가 제도가 완벽해지는 건 아닙니다. 제가 완벽한 존재는 아니니까요. 다만 혹시나를 확인하는 과정은 할 수 있을 겁니다. 운이 좋다면 그 혹시나를 통해 결과를 조금 더 온전한 방향으로 만들어갈 수 있을 겁니다.


지금 기업에서는 흔히 말하는 평균-편차조정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일단 모수가 워낙 작아서 편차를 내는 것도 쉽지 않고 무엇보다 이러한 산술조정이 아무리 평가자 오류를 일정부분 조정해준다 하더라도 평가자 입장에서 보면 평가자가 준 점수가 바뀌었다고 말하는 데 전혀 지장이 없기 때문입니다. 과거 어느 평가자분들은 이러한 형태를 악용(?)해서 평가피드백을 할 때 인사팀 탓을 하는 경우도 있었지요. 사실 많은 경우 평균-편차조정이나 평가자오류에는 관심이 없어보이기도 합니다. 그것이 이의제기에 있어 근거로 필요해지기 전까지는  말이죠. 컨텐츠에 대한 개입은 점수에 대한 산술적 기계적 조정을 실제 목표와 이에 대한 평가의 패턴들을 통해 수행한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제가 평가의 내용에 대해 조금이나마 개입을 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방지할 수 있는 오류라면 예방하는게 제도가 조금 더 온전한 상태로 이어질 수 있게 하는 길이겠지요.


동일직무를 수행하는 평가그룹에서 유사한 목표에 대해 평가자별로 평가결과의 패턴이 다른 모습을 확인했습니다. 만일 제가 프로세스 전문가로서 스탠스를 유지하고 있었다면 아마도 이에 대해서 평가자의 판단으로 치부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는 대신 저는 평가자와 이야기를 했습니다. 무언가 패턴이 다르게 나타난다라고. 그리고 그 원인을 알았습니다. 공식적으로 말하면 관대화 경향과 가혹화의 오류라 할 수 있고, 한 편으로는 동일 지표에  대한 주관적 해석의 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인사평가 프로세스를 운영하고 있으나 컨텐츠에 일부 개입을 하고 컨텐츠를 확인하는 과정을 통해 오류들을 미리 확인하고 조정할 수 있음을 말합니다.


어쩌면 제가 인사담당자의 역할로 퍼실리테이터를 이야기하면서 그가 가진 중립성 대신 가치지향성을 가지고 있는 퍼실리테이터를 이야기하는 이유라 할 수도 있습니다. 사실 컨텐츠에 대한 이해는 생각보다 어렵고 시간이 좀 필요한 부분입니다. 프로세스는 지식을 배우듯 배울 수 있으나 컨텐츠는 스스로 의식하지 않으면 이해하기 어려움이 있습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굳이 컨텐츠를 이해하지 않아도 일하는데 지장이 없을 수도 있고, 괜히 이에 발을 담갔다가 힘들어지는 경우도 있을 겁니다. 그럼에도 컨텐츠를 이야기하는 건 인사제도가 추구하는 모습을 만들어내기 위해서 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인사에 있어 컨텐츠는 크게 보면 value chain을 포함하는 경영의 전체 흐름이라 할 수 있고, 보다 HR의 관점으로 좁혀 본다면 우리 기업 내 존재하는 직무에 대해 이해하는 것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모든 직무들을 다 알 수는 없으나 그 직무들이 가지는 주요한 업무수행방식이나 근무패턴, 주요 산출물과 그들이 다른 직무들과 연결되는 방식 등이 이러한 이해에 포함됩니다. 개인적으로는 이러한 컨텐츠를 이해하고 개입하는데 최소 1년 이상의 시간들이 필요했던 듯 합니다. 그것도 HR에 대한 어느 정도의 경험이 쌓이고 난 이후에야 겨우 그렇습니다.


올해는 그래도 이전 2년 정도 운영해왔던 패턴이 있어서 조금 더 속도를 내고 있고, 프로세스가 기본적으로 돌아가는 덕분에 컨텐츠에 대한 개입도 조금씩 할 수 있었던 듯 합니다. 조금 더 나은 결과를 위해 프로세스에서 한 발 더 나아가 컨텐츠에 대한 질문들을 조금씩 하고 있습니다. 나중에 나오게 될 평가결과에 있어 자칫 이의제기로 이어질 수 있었던 한 케이스를 잡았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게 저 자신에게 독이 될지, 득이 될지는 모르겠으나 분명한 건 평가오류를 평가자에게 한 번 더 짚어주었다는 점일 겁니다.


평가는 늘 어렵습니다. 특히나 저처럼 서술형 평가를 고집하는 이들에게 평가는 참 고된 작업이기도 합니다. 그래도 그게 맞으리라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조금 더 나은 평가제도에 대한 고민은 답이 없는 인사라는 영역에서 제가 인사라는 일을 하는 동안에는 계속 해야 할 고민일 듯 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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