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now It All Society - 마이클 린치/메디치
제 부족함이겠으나 가끔 책을 보다가 한글이 어렵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사실 이 책도 그렇습니다. 책을 그나마 온전히 이해했다고 말할 수 있을까는 조심스러움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이 책의 제목과 부제가 던지는 이슈는 우리가 우리 자신을 돌아보는데 있어 생각해볼 법한 주제라 생각합니다. 코로나 시대에 과학을 허구로 덮으려는 행위들도 그렇고, 나름 민주주의에 있어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말해왔던 나라의 의회에 시위대가 들어가있는 모습도 그렇고, 현재와 바람직한 상태의 차이로서 문제를 해결하기보다는 상대방을 깍아내려 자신을 높이려 애쓰는 정치를 하려는 분들이 그렇습니다. 저자는 왜 똑똑한 사람들에 대해 그들이 민주주의에 해롭다고 말할까? 에 대한 답을 찾는 과정으로서 책을 보는 재미는 있습니다. 물론 말씀드렸듯 주관적이긴 하지만 조금은 한글이 어렵다는 생각을 하게 하기도 합니다.
"자신이 좇는 것을 찾아내는 것이 인간의 역량으로 가능할까?" 몽테뉴는 회의적이었다. 인간에게는 "전염병"이 있었다. "자신이 무언가를 안다는 생각"이 바로 그것이었다. p22
글을 쓰기도 하고 회사에서 일을 하고 때로는 맞다 틀리다를 말해야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사실 일상 속에서 항상 발생하는 상황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내가 알고 있는 것이 정말 맞다고 할 수 있을까? 에 대한 질문을 하기도 합니다. 늘 조심스럽지만 그렇다고 아무것도 안하면 말 그대로 제자리 걸음이 되겠지요. 전 어릴 때부터 생각이 많다는 말을 들어왔습니다. 생각이 많다 보니 생각에 묶여 무언가를 하는 걸 어려워했다고 할까요. 이는 일종의 의심이기도 했습니다. 내가 하는 생각이 정말 맞는 생각일까?라는 질문을 던지는 셈입니다. 어찌 보면 삶이란 이 질문에 대한 나름의 답을 찾아가는 과정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지적 오만함의) 씨앗 중 하나는 무지 그 자체가 아니라 무지에 대한 사회적으로 강화된 두려움이다. p37
우리의 지적 오만함은 우리가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인정하는 솔직함에 대한 회피일 수도 있습니다. 어릴 적부터 우리는 모르는 것을 부정적인 것으로 배워왔기도 합니다. 사견으로 모름을 인정할 수 있는 우리 자신을 위해서 우리는 좀 더 알아야 합니다. 모르는 것을 잘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아는 것을 더욱 잘 알기 위한 노력입니다. 서로 다른 우리들이 각자 잘 아는 분야가 있고 서로에 대해 모르는 분야를 채워줄 수 있다면 우리들은 좀 더 좋은 관계를 만들어갈 수 있으리라는 생각입니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특히 HR이라는 일을 하면서 간혹, 어쩌면 생각보다 자주 자신이 계층구조의 상위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지 못하는 분들을 만나곤 합니다. 안타까운 건 그러한 모습이 스스로에 대한 타인의 존경을 더욱 없애는 방향으로 이어질 수 있음에 있습니다. 자신이 아는 것을 더 명확히 하고 모르는 것을 솔직하게 인정하는 것, 우리들에게 필요한 부분이 아닐까 싶습니다.
위험은 본질적으로 거짓말이 아니라 기만에서 나온다. (중략) 그들은 빈 호두 껍질 속에 동전이 있다고 믿게 만들 필요가 없다. 그저 당신이 뭐가 진실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충분히 혼란스럽게 만들기만 하면 되기 때문이다. p54~55
저에게 인터넷은 매우 중요한 도구입니다. HR에 대해 당시 재직중이던 기업의 울타리에서 벗어나 HR을 좀 더 다양하고 온전히 바라볼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주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에도 이러한 기능은 다르지 않습니다. 다만 과거보다 오늘날, 그리고 미래로 갈수록 인터넷은 우리에게 이야기합니다. '무엇이 진실이고 무엇이 아닌지에 대해 판단해라'라고 말이죠. 우리가 마주하는 정보가 우리를 기만하고 혼란스럽게 만들 의도를 담고 있는지에 대한 판단입니다. 흔히 우리는 일종의 선택 편향을 합니다. 우리 생각과 맥을 같이 하는 생각을 비판 없이 받아들이고 맥을 달리하는 생각을 비판 없이 배척하는 모습입니다. 그것이 무엇이 되었든 '비판'은 필요합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의도적 연습'입니다.
내가 하고 있는 주장은 국가주의와 권위주의 정치의 등장은 종종 폭넓게 공유된 방어적인 심리사회적 태도, 즉 지위 위협의 등장과 관련이 있다는 것이다. p136
책을 보면서 문장이 다소 어렵게 쓰여졌다고 생각하는 예이기도 합니다. 누군가의 방어적인 태도는 그의 사회심리적인 태도가 반영된 것인데 이러한 방어적 태도는 그가 외부의 자극을 받아들이는 데 있어 그 자극을 위협으로 인식하면서 국가주의나 권위주의와 같은 요소들이 등장한다 정도로 이해할 수 있을 듯합니다. 새로운 제도를 시행하거나 기존의 관행에 변화를 하고자 할 때 제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도 그렇습니다. "해치지 않아"라는 메시지라고 할까요. 새로운 제도의 시행이 누군가를 깍아내리거나 그들의 이익을 제거하려는 목적이 아니라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셈입니다. 이러한 메시지가 어느 정도 전달되기까지는 다소 시간이 걸릴 수 있습니다. 중요한 건 그 메시지의 일관성과 실제 제도를 시행했을 때의 결과, 그리고 메시지가 받아들여지기까지의 부단한 노력과 확신, 인내심이 아닐까 싶습니다.
오만함이 진실과의 관계를 왜곡하는 두 번째 방법은 진실에 우선적으로 관심을 두지 않는 데서 기인한다. 어떤 사람들, 특히 어떤 힘 있는 사람들에게 중요한 것은 자신이 진실을 장악하고 있다는 사실이 아니라 자신에게 권력이나 명석함 또는 부가 있다는 사실이다. p145
진실이란 무엇일까요? 책에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진실을 이야기하는 것은 있는 것을 있다고 없는 것을 없다고 말하는 것이라고 했다. p121"
혹자는 자신들이 했던 말을 부인하거나 기억나지 않는다고 말하고 이에 대한 근거를 권력 등으로 대체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사실 우리가 아직도 많이 마주하는 모습이기도 합니다. 이는 앞에서 우리가 이야기한 '모름'에 대한 '솔직함'과 다시 연결됩니다. 모름을 감추기 위한 방어적 기제이기도 하겠지요. 있는 것을 있다고, 없는 것을 없다고 말할 수 있는 존재로서 우리를 그려 봅니다 .
중요한 점은 우리의 정체성이 우리에 의해, 동시에 다른 사람들에 의해 부분적으로는 인정의 과정을 통해 작성되는 서사라는 점이다. p161
'인정'과 '서사'라는 두 단어가 눈에 들어옵니다. '서사'란 우리의 삶이 하나의 연결된 이야기임을, 인정이란 이러한 이야기를 만들어가는데 있어 우리 자신과 다른 사람들과의 상호작용에서 만들어지는 '인정'이 중요함을 이야기합니다. 우리가 전문가가 된다는 건 달리 말해 다른 사람들로부터 '인정'을 받는 것을 말합니다. 그리고 여기에 우리 스스로의 인정(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다른 이들로부터 인정을 받는다는 건 달리 말하면 적어도 그 분야나 일에 대해서 나름의 존중을 받을 수 있음으로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권력 등의 힘이 아니라 그 존재 자체에 대한 존중입니다. 이러한 존중으로 채워지는 삶으로서 서사, 어떨까요. 어쩌면 멋진 삶을 살았노라 말할 수 있지 않을까요?
첫 번 째 교훈은 이 책을 관통하는 꾸준한 주제였다. 그것은 바로 진실을 진지하게 추구하려면 일단 우리 자신의 인지적 한계를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p204
우리 자신의 인지적 한계를 인정한다는 것을 달리 표현하면 '겸손함'이라 말할 수 있을 듯합니다. 우리가 아는 것에 대한 겸손함과 모르는 것에 대한 솔직함을 포함합니다. 리더이므로 모든 것을 다 알아야 하고 그가 하는 모든 생각은 다 옳은 것이라는 생각에서 벗어나는 것, 자신에게 이익이 되는지나 불편한지가 아니라 그것이 진실인지에 대해 생각하는 것입니다. 사실 참 어렵습니다. 중요한 건 좋은 일은 '의도적 연습'이 있어야만 비로소 만들어질 수 있다는 점입니다.
우리가 소크라테스의 접근법을 가지고 우리의 확신에 접근할 때, 다른 사람들의 근거와 경험에 의지함으로써 우리의 관점을 개선하고 다시 빚어낼 의지를 보일 때, 변화는 가능하다. p211
는 책의 이야기를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것을 지칭하는 최고의 용어는 '지적 겸손함 intellectual humility'이지 모른다. p212
책에서 이야기하는 결론이 아닐까 싶습니다. 겸손함이란 무작정 스스로를 낮추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지적 겸손함은 자신감 역시 요구한다 p213'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제가 살아오면서 '존경'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분들이 몇 분 있습니다. 그분들은 외부에서 보았을 때 이미 지적으로 훌륭함을 갖추고 있으나 스스로 자신을 치켜세우는 모습이 전혀 없습니다. 그분들은 자신들의 생각을 공유하고 이야기하는데 있어 확신을 가지고 있으나 그 확신에 대해 스스로 돌아보는 모습도 갖추고 있습니다. 표현된 단어에 대한 정의는 아무리 글자로 남기더라도 그것에 대한 우리 각자의 생각이 더해지지 않으면 시험 맞추기용 정답에 불과할 겁니다. 우리 삶이란 정답이 정해진 시험이 아니라 백지에 우리가 그려가는 하나의 '서사'이길 바랍니다.
진실을 말한다는 건 좋은 말이지만 참 어렵습니다. 무엇이 진실인지 모르는 경우일 수도 있고, 일방적인 이야기를 통해 만들어진 반쪽짜리 사실일 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매 순간 사는 시간 속에서 판단을 하고 행동을 하도록 요구받고 있지요. 그래서 지금의 우리들에게 '지적 겸손함'을 만들어가기 위한 노력이 더 요구되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입니다.
부제. 책을 보며 리뷰를 남기며 스스로를 돌아봅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