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본성은 선할까?
"마음으로는 사람이 선하다고 생각하는데, 가끔 그게 흔들릴 때가 있다"
일전 어느 모임에서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개인적으로는 조금 더 반갑고 고마운 책입니다. 막연히 들어서 알고 있던 몇 가지 실험들에 대한 어설픈 생각도 정리할 수 있었다고 할까요. 500페이지가 넘는 다소 무거운 책이지만 "감춰진 인간 본성에서 찾은 희망의 연대기"라는 책의 부제처럼 나름의 희망을, 그리고 제가 하는 HR의 방향이 어쩌면 틀리지 않을 수 있음을 생각하며 책 소개를 시작합니다.
도서명: 휴먼카인드
부 제: 감춰진 인간 본성에서 찾은 희망의 연대기
저 자: 뤼트허르 브레흐만
출판사: 인플루엔셜
1971년 8월 15일 평범한 학생들이 괴물로 변했다. 그들이 나쁜 사람이어서가 아니라 나쁜 상황에 처해졌기 때문이다. p210
HR을 하면서 제도를 이야기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HR을 표현할 때 EE라는 표현을 개인적으로 사용합니다. Employee Environment의 줄임말로 임직원이 일을 하는 환경을 세팅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구성원을 바꿀 수는 없겠지만 선한 사람이 나쁜 환경으로 인해 나쁜 사람이 되는 것을 막을 수는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이를 위해 필요한 건 제도가 선한 의도를 담고 있을 것, 그리고 그 선한 의도가 구성원에게 최대한 전달될 수 있도록 할 것입니다. 물론 '마음으로는 선하다고 믿지만 가끔 흔들리는 경우'를 만나기도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하다는 믿음'을 유지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알고 보니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 이와 동일한 경향을 나타냈다. 그들은 말 그대로 뇌 손상을 입은 사람처럼 행동한다. 보통사람보다 더욱 충동적이고 자기중심적이며, 무모하고 오만하며 무례하다. (중략) 권력은 타인에게 무감각해지게 만드는 마취제처럼 작용하는 것 같다. p317
조금 말을 바꿔보면 개인적으로는 이렇게 표현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도 해봅니다.
권력을 가진 이들은 스스로에게 관대하고 타인에게 엄격해지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이들은 스스로를 완벽한 존재로 놓고 타인을 불완전한 존재로 보게 된다. 자신은 실수를 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고, 타인은 늘 실수를 하니까. 그들은 보통사람보다 더욱 충동적이고 자기중심적이며, 무모하고 오만하며 무례하다. 이러한 인식이 반복되어 이들에 익숙해지면 우리에게 익숙한 그 존재가 된다.
"꼰대" by opellie
러셀의 말을 인용하자면 "우리의 믿음 중 어느 것도 진실이 아니다. 모든 것에 모호함과 오류의 그림자가 최 소한 희미하게라도 드리워져 있다. " 따라서 가능한 한 진실에 가까워지려면 확실성을 피하고 매 단계마다 스스로에게 의문을 제기해야 한다. p349
방법은 간단합니다. 특정 과업이 끝날 때마다 '돌아보기 세션'을 운영하면 됩니다. 해온 것을 돌아보고 잘된 점과 개선점을 확인하고 이를 바탕으로 다음 단계에서 보완하면 됩니다. 생각보다 쉽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잘된 점만 부각하고 개선점을 버리거나 감추기도 합니다. 스스로의 부족함을 오픈하는 게 심리적으로 부담을 갖고 있습니다. 어쩌면 우리는 자라면서 우리가 가진 단점을 감추는 게 바람직한 것으로 주어진 상황을 더 많이 만나온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어릴 적부터 틀리고 모르면 이해보다는 야단부터 맞았으니까요. Edmondson (1999) 교수님에 따르면 심리적 안전감은 조직 내 구성원 간에 존재하는 존중과 신뢰를 기반으로 한다고 합니다. 서로가 서로를 믿을 수 있다면, 서로가 경쟁하는 관계가 아니라 협력하는 관계가 될 수 있다면 심리적 안전감을 확보하고 서로에 대해 조금더 솔직해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결국 책의 앞에서 이야기한 말로 이어집니다.
만일 우리가 대부분의 사람을 믿을 수 없다고 믿는다면 우리는 서로를 그렇게 대할 것이다.
모두가 손해를 보는 것이다. p40
골렘효과는 일종의 노시보다. 가난한 학생들은 더 뒤처지게 만들고, 노숙자는 희망을 잃게, 고립된 10대들은 더 과격하게 만든다. 이는 또한 인종차별의 이면에 있는 사악한 매커니즘 중 하나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기대치가 낮으면 최선을 다하지 않게 되고 이것은 다른 사람들의 기대를 더욱 떨어뜨려서 자신의 성취를 더욱 낮게 만들기 때문이다. 골렘 효과와 부정적인 기대를 증가시키는 악순환이 조직 전체를 망가뜨릴 수 있다는 증거도 있다. p355
고등학교를 갓 졸업하고 입사한 친구는 근 1년을 넘게 일을 못한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이후 다른 사수와 일을 하게 된 그 친구는 그 사수에게 이상하다는 듯 말을 합니다. "다들 자신이 일을 못한다고 말하는데 왜 당신은 자신에게 일을 잘 한다고 말하냐고" 사수는 "일을 잘 하니까"라고 말할 뿐입니다. 의기소침했던 친구는 스스로 생각하고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 일을 못한다고 걱정하는 글들을 가끔 접합니다. 대부분은 자신이 실수도 많이 하고 혼이 많이 난다는 이야기를 합니다. 제가 그들을 만나본 적은 없지만 제 경험상 장담컨데 그들중 상당수는 일을 잘 할 수 있는 이들일 거라 생각합니다. 어쩌면 생각보다 많은 경우에서 우리들은 누군가 일을 잘 할 수 있는 사람을 일을 못하는 사람으로 만들 수도 있음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실무자는 전략적 사고를 할 수 없다는 인식이 있다. 그들에게는 비전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 일을 하는 사람들은 아이디어로 넘쳐난다. 그들은 수천 가지를 생각해 내지만 자기의견을 반영하지 못한다.p373
기획과 운영, 운영과 기획은 분리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라 생각합니다. 아무리 멋진 기획도 현장에 녹아들지 못하면 빛좋은 개살구일 뿐입니다. 운영으로부터 도출된 소스는 멋진 기획의 기반이 됩니다. 기획이 현장과 어우러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입니다. 리더들은 실무자들이 자신의 행동을 기반으로 그들의 생각이 최대한 발현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줄 필요가 있습니다. HR은 제도로서 환경을 만들어주어야 할 겁니다. 과거에 우리들은 말하고 싶어도 참았는데 요즘은 거리낌없이 이야기하는게 이상해가 아니라 그들의 이야기들을 다 듣고 같이 고민할 수 있는 리더가 되어야 합니다. 실무자가 가지고 있는 아이디어를 발현시키는 것은 오늘날 리더들에게 주어진 중요한 과제입니다.
일을 어렵게 만드는 것은 쉽지만 쉽게 만드는 것은 어렵다 p376
복잡한 일을 더욱 복잡하게 만드는 건 간단합니다. 일의 앞 뒤를 모른 채 중간을 뒤집으면 됩니다. 흔히 IT시스템을 만들고 운영하다보면 이런 일들이 발생합니다. 어느 순간 이 부분을 건들었을 때 시스템의 어느 부분에 영향을 주는 지 알 수 없어 더 이상 손댈 수 없는 상태 말이죠. 반면 일을 쉽게 만드는 건 어렵습니다. 시스템의 A to Z를 이해하고 그 맥락에 맞는 개선을 해야하기 때문입니다. 단순하고 명확하게 할 수 있다는 건 그가 그 이면에 존재하는 복잡함에 대해 이해하고 있음을 전제로 한다는 걸 알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가 '문화'라고 부르는 모든 것은 놀이에 기원을 두고 있다. p387
놀이는 고정된 규칙 및 규정의 적용을 받지 않으며, 제약과 제한도 없는 것이다. 아이들이 부모의 감독 없이 야외에서 활동하면서 자신만의 게임을 만드는 것이 놀이이다. p386
제도를 설계하고 운영하는 목적으로서 제도가 더 이상 필요없는 상태란 결국 조직문화가 완성된 상태라 할 수있습니다. 공유지에서 비극이 아니라 자율적인 모습이 나타날 수 있는 상태를 말합니다. 이러한 상태는 곧 놀이가 될 수 있습니다. 구성원 스스로 판단하고 자신만의 게임을 만들어가는 상태, 그 게임들이 모여서 공통의 가치를 만들어가는 상태입니다. 우리가 추구하는 가장 바람직한 상태로서 조직문화가 아닐까 싶습니다.
오스트롬은 자신의 획기적인 저서<공유지의 비극을 넘어>에서 공유지를 성공적으로 유지하기 위한 일련의 '설계원칙'을 공식화했다. 예를 들어 공동체에는최소한의 자율성과 효과적인 감시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 그러나 오스트롬은 성공을 위한 청사진은 따로 없다고 강조했다. 공유지의 특성은 궁극적으로 지역적 맥락에 의해 형성되기 때문이다.p423
라는 말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의 성취 기반 사회의 규칙을 내면화한 새로운 세대가 오고 있다. 성공의 주요 지표가 경력과 급여 수표가 되는 치열한 생존경쟁을 실천하는 방법을 배우는 세대이다. 느슨한 구석이 없고 꿈을 꾸거나 모험을 하거나 환상을 가지거나 탐구하는 경향이 작은 세대이다. 간단히 말해서 노는 법을 잊어가는 세대이다. p391
정확히 어떤 세대가 이러한 특성을 가질까라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저보다 윗 선배분들, 그리고 저를 포함한 세대도 '노는 법'을 잊어가는 세대일 수도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다행스럽다는 생각도 합니다. 요즘을 돌아보면 '노는 법'을 찾아가는 모습들도 종종 보이는 까닭입니다.
조금은 어렵고 조금은 충격적이고 하지만 마음 한 켠으로 '다행이다'를 말하게 된 책이 아닐까 싶습니다. 어느 책들보다도 단문의 글들만으로 느낌을 전달하기 어려웠던 책이 아닐까 싶습니다. 마음에 남는 뭉클함은 강렬한데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고민하게 된 책입니다. 조금은 분량이 많고 어려울 수도 있으나 충분히 읽어볼 가치가 있는 책으로 소개드립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