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우리는?
"이거 왜 하는 거죠?"
이 질문에 답을 하지 못했던 제 상급자분들의 모습을 기억합니다. 우리는 일을 하러 출근을 합니다. 그런데 그 일이란 무엇일까요? 정해진 시간을 채우는 것이 일이라면 우리는 나름 일을 하고 있다고 할 수 있겠지요. 그런데 일이란 이런 의미가 맞을까요? 일은 우리들의 성장과 별개의 것인 걸까요? 이런 질문들에 대해 직접적인 답이 아닌 생각거리를 제공하는 책으로, 일을 왜 하는지, 일이란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해보고 싶은 분이라면 읽어보실 책으로 추천합니다.
도서명 : 가짜 노동
저 자 : 데니스 뇌르마르크 & 아네르스 포그 옌센
출판사 : 자음과 모음
한편 독일의 어느 65세의 엔지니어는 2012년에 은퇴할 때, 관리자와 동료들에게 자신이 1998년 이후 아무 일도 하지 않았음을 고백했다. (중략) 그 엔지니어가 뭘 하는지 어차피 아무도 몰랐기 때문이다. p70
사람이 아닌 일을 기준으로 우리들과 일과 조직을 바라보는 것이 필요합니다. 어쩌면 지난 수년, 수십 년간 우리들은 일을 해왔지만 어쩌면 일을 잘 모르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우리는 사람에 집중하면서 사람을 소외시키고 일을 모르는 상태로 이어져왔는지도 모릅니다. 위의 엔지니어의 고백을 사람의 관점으로 보면 그의 탓으로 돌릴 수 있습니다. 가장 쉬운 해결책처럼 보일 수 있지요. 일에 집중하면 우리가 일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음으로 이어볼 수 있습니다. 어렵지만 우리가 좀 더 관심을 가지고 진지하게 들여다보아야 할 부분이기도 합니다.
자신의 일이 세상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50%만이 그렇다고 대답했다. 13%는 모르겠다고, 37%는 자기 직업이 아무 의미가 없다고 단언했다. p85
누군가에게 왜 HR을 하세요?라는 질문을 드린 적이 있습니다. 돌아온 대답은 더 높은 연봉과 커리어였습니다. 조금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저는 HR이라는 일이 좀 더 가치 있는 일이 되길 바라는 것이라 말하고 싶습니다. 그래서 저는 제가 하는 일에 '의미'를 부여합니다. 누군가가 정해준 의미가 아닌 제가 실무를 해오며 만들어가는 의미입니다. 저는 HR이라는 일이 제 역할을 하면 적어도 조직과 구성원 분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현장에서 경험하고 생각하고 공부하고 글을 쓰는 활동들이 가리키는 지점에는 '의미'가 있습니다.
벤트존이 가장 짜증 나는 건, 자신의 의학적 전문성이 완고한 시스템에 굴복해 마비되는 느낌이다. p159
시스템은 어디까지나 도구이지 그 자체가 목적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내가 인사시스템을 도입했어! 가 아니라 인사시스템을 도입해서 조직과 구서원에게 어떤 도움이 되었는가에 초점을 맞추어야 합니다. 지나온 시간 중 어느 분이 규정을 가져오셔서 해당 규정대로 하고 있는지를 물어보시기에 현실과 맞지 않으니 규정을 바꿔야 한다고 말씀을 드린 적이 있었습니다. 결과물은 동일한데 규정대로 하면 3일이 걸리는 일이 현장에서는 1일 만에 하고 있었으니까요. 물론 법을 위반하거나 하는 일은 없는 상태로 말이죠. 돌아온 대답은 규정대로 해야 한다 였습니다. 일을 더 효율적으로 할 수 있는데 현실에 맞게 규정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규정에 따라 효율성을 포기해야 한다는 논리가 등장했습니다. 중요한 건 그 규정을 만든 이들은 현장에서의 경험이 부족했다는 점에 있습니다. 일을 모르고 규정을 만들고 그렇게 만들어진 규정에 따라 현장을 통제하는 방식입니다. 전문성을 가진 실무자는 전문성이 없는 관리자가 만든 규정에 종속되고 맙니다. 무엇이 옳을지에 대해서는 읽으시는 분들의 판단에 맡기겠습니다.
이런 관료제적 개입이 없어지면서 넷플릭스 직원들은 그저 맡은 일을 잘 해내기만 하면 되었다. 즉, 넷플릭스는 소모적인 지침이 없어도 될 정도로 직원들의 책임감이 강하고, 성과 지표를 도입하는 것이 시간 낭비일 정도로 직원들의 능력이 뛰어나다고 믿은 것이다. p181,182
문장의 맺음 말이 눈에 들어옵니다. "직원들의 능력이 뛰어나다"가 아니라 "직원들의 능력이 뛰어나다고 믿은 것"이라는 표현입니다. 과거 어느 CEO분은 넷플릭스와 같은 기업을 만들고 싶다는 말을 자주 하셨습니다. 넷플릭스의 '규칙 없음'이라는 책을 늘 강조하면서 동시에 우리는 그들과 같은 인재가 없다는 말도 함께 하곤 했습니다. 그분은 이미 구성원을 믿고 있지 않았고 구성원들이 뛰어나지 않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뛰어난 인재는 어떻게 만들어질까요? 물론 뛰어난 인재를 채용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구성원들이 뛰어난 인재가 될 수 있으리라는 믿음을 통해 그들이 뛰어난 인재가 될 수 있게 돕는 것도 필요합니다. 과거 소개드렸던 책중 '평범한 사람들이 만든 위대한 회사'라는 제목을 가진 책이 있었습니다. 우리 조직은 평범한 사람들이 모여 있어서 위대한 회사는 되기 어려울까요? 어쩌면 위대한 회사를 만들 수 있는 구성원들을 평범하다고 판단하여 그들이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만들고 있지는 않을까요?
아무도 안 읽으니까요. 작년에 만들었던 200부가 아직 지하에 있어요. p208
비슷한 경험이 있습니다. 해당 기업은 매년 4월이면 각 직무별로 업무 flow를 포함한 매뉴얼을 업데이트하곤 했습니다. 그런데 그 문서는 매년 4월 업데이트가 완료됨과 동시에 기획실의 캐비닛에 보관되었습니다. 다음 년 4월 업데이트 공지가 나오기 전까지 그 매뉴얼을 보거나 활용하는 이들은 없었습니다. 당시 우리들은 기획실의 일을 만들어주기 위한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누가 넘어지려 하면 근처에 있던 사람이 손을 뻗어 잡아준다. 본능적 반응이다. 그러나 그 돕는 손이 제도화되고 시스템 일부가 되면 문제가 발생한다. 그것이 실제 상황에서의 반사적 행동 이상으로 제도화될 때 점검이 실제 문제가 아닌 제도화된 자동화 기제에 순응하기 위한 목적으로 수행될 때, 이것은 직원에게 큰 영향을 미친다. p301
제도는 기본적으로 통제의 성격을 가집니다. 제도로 일정한 울타리를 만들어 놓고 그 울타리를 넘어가면 안된다고 말하거나 조금 더할 경우 그 울타리 안에 길을 내어 놓고 그 길대로만 가도록 강제하기도 합니다. 제도가 일종의 가이드가 되면 사람들의 판단에 도움을 줄 수 있지만 제도가 정답이 되면 사람들은 수동적이 되고, 경우에 따라 규정에 정한 대로 했음을 근거로 책임을 회피하는 모습으로 이어지기도 합니다. 많은 기업의 경영자들은 창의적이고 자율적인 인재를 원한다고 말합니다. 정말 그렇다면, 그리고 지금 우리 기업에서 그 원하는 모습이 안 나온다고 생각한다면 제도와 그 제도에 대한 소통과 제도에 대한 인식을 다시 살펴보시길 권합니다. 지금 우리가 운영하는 제도들이 구성원에게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는지, 그 제도를 전달하는 중간관리자들은 그 메시지를 온전히 잘 전달하고 있는지 말이죠.
통제로는 신뢰가 쌓일 수 없다. 내가 사람들을 믿지 않으면 사람들도 믿음직하게 행동하지 않는다. p304
팀장으로 일을 하면서 함께 하는 분들과 늘 하는 이야기는 '구성원을 믿는다'입니다. 믿고 있으니 각자 자신의 역할을 잘해주시고 그 일들에 대해 팀장인 저에게 '보고'가 아닌 '공유'를 해달라고 말합니다. 일을 공유하는 이유는 책임에 있습니다. 리더로서 팀 업무에 대한 책임을 가지고 있기에 그 책임에 대한 책임을 지기 위해 기본적으로 일을 알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저도 평소 진행상황을 제 나름대로 확인하기도 합니다. 때론 저에게 공유되지 않은 일들을 물어보기도 합니다. 그건 구성원을 믿지 못해서가 아니라 저를 포함해 모든 사람들은 불완전하고 잘하는 것과 못하는 것이 있다는 아주 기본적인 영역에 기반합니다. 최근 어느 친구에게 업무를 지시했는데 생각보다 시간이 좀 걸렸고 늦은 시간까지 있어서 그만 들어가라는 말을 건넨 적이 있습니다. 그때 그 친구가 저에게 한 말은 이렇습니다. 최종본까지 다 하기는 어렵겠지만 이 부분까지는 완료하고 가겠노라는 말이었습니다. 리더는 혼자 일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구성원이 스스로 일하고 싶게 만들어 그들이 일을 하게 만드는 사람이기도 합니다. 가장 좋은 방법은 먼저 믿어주는 것이라 말하고 싶습니다. 그다음은 팃포탯을 따르면 됩니다.
다시 의미를 찾으려면 큰 그림을 봐야 한다. 회사보다 더 큰 무언가를 위해 일해야 한다. 의사는 사람들의 건강을 위해 일하지 자신의 직장인 병원을 위해 일하는 게 아니다. 변호사는 정의를 위해 일하지 자신의 법무 법인을 위해 일하는 게 아니다. 교사는 사회의 미래를 위해 일하지 특정 학교를 지키는 게 임무가 아니다. p343
愛社心과 愛事心에 대한 이야기를 한 적이 있습니다. 우리가 하는 일이 올바른 방향으로 올바르게 움직인다면 그 일들이 서로 연결되어 만들어내는 가치 역시 올바를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왜 일하는가? 에 대한 답은 모두 다를 수 있습니다. 같은 일을 하고 있더라도 그렇습니다. 저는 '성장'을 이야기합니다. '조직과 구성원이 함께 성장하는 환경으로서 제도를 만드는 일'로서 HR을 만들어보려 합니다.
조금은 뜨끔하고 조금은 시원한 그런 책이 아닐까 싶습니다. 과거 회사를 옮긴 어느 개발자분과 대화를 나누었었습니다. 옮기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 그는 이전 회사에서는 하루면 만들 수 있는 일이었는데 지금 회사에서는 그렇게 하면 일이 없어 보이고 쉬워 보인다는 이유로 3일~4일에 걸쳐하고 있다는 말을 했습니다. 주 48h, 주 44h, 주 40h, 주 52h... 분명한 건 흐름이 있습니다. 근로시간은 줄어들고 생산성은 높아집니다. 앞으로 우리는 어떻게 일을 해야 할까요? 지금처럼 하는 것이 답일까요? 모르겠습니다. 그 답을 아는 건 우리들 각자가 아닐까 싶습니다.
이상 가짜 노동 책 소개를 마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