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고( 思考 )라는 요소를 전혀 내포하지 않고는 의미를 가진 경험이란 있을 수 없다. -존 듀이
HR담당자로 일을 시작한 지 5년 차를 보내던 때였습니다. 당시 저와 나이도 경력연수도 하는 일도 같았던 한 친구는 술잔이 몇 차례 돌고 잠시 술을 깨는 시간에 저에게 이런 말을 건넸습니다.
"HR은 그렇게 하는 게 아냐"
조금 당황스럽기도 했지만 당시 저는 그냥 조용히 웃으며 상황을 넘겼습니다. 아무래도 술자리이기도 했고 사실 그 친구가 그렇게 말하는 이유를 조금은 알 것도 같았기 때문입니다. 그 이유로 생각하는 것이 바로 경험에 대한 인식입니다. 그는 자신의 경험을 정답으로 받아들였습니다. 하지만 저는 경험이란 더 나은 상태가 되는 경험을 위한 재료라 생각을 했습니다.
경험을 재료로 인식하는 것
경험을 더 나은 상태를 만들기 위한 재료로 인식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우리가 하는 경험들이 불완전함을 전제로 합니다. 앞서 GMS가 기본적으로 사람으로서 우리들이 불완전함을 기본으로 하는 것과 그 맥을 같이 합니다. 불완전한 경험은 개선이 가능합니다. 우상향으로의 이동이 가능함을 말합니다. 반면 정답으로 인식된 경험은 개선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10년 전 경험으로 10년 후 HR을 하고 있게 될 겁니다. 이렇게 보면 경험을 재료로 인식하는 것은 현재를 살아간다는 것을, 경험을 정답으로 인식하는 것은 과거를 살아가는 것을 이야기한다고도 할 수 있을 겁니다. 현재를 살아간다는 것은 세상의 변화에 우리들도 맞춰 변화를 하고 있음을 포함합니다. 경험을 재료로 인식한다는 것은 우리가 우리 스스로 변화관리를 하고 있음을 말합니다.
인식, 그리고 생각
인식이란 매우 주관적인 과정입니다. 동일한 상태, 현상을 보고 있더라도 서로 다른 인식을 할 수 있습니다. 경험을 인식함에 있어 중요한 건 우리가 하는 경험이 매우 제한적이라는 점입니다. 가능한 많은 경험을 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함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직접 경험의 제약을 조금이나마 극복하기 위한 움직임은 바로 '생각하기'입니다.
TED 영상 중 『Comics that ask "What if?"』라는 영상이 있습니다. 영상에서 Randall Munroe는 "빛의 속도의 90% 속도로 날아오는 야구공을 치려고 하면 어떻게 될까요?"와 같은 말 그대로 "이러면 어떨까?"라는 질문에 대해 수학과 과학 등의 지식을 활용해 설명합니다.
혹자는 이런 게 그래서 뭐가 도움이 된다는 거야?라고 할 수도 있지만 이렇게 생각을 조금은 다른 방식으로 해보는 과정, 특히 조금은 다른 생각을 해보고 그 생각을 현실의 지식과 논리로 풀어내는 노력은 우리로 하여금 경험을 정답이 아닌 재료로 활용할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상대평가제도를 운영하면서 90점과 89.9점이 등급별 비율이라는 제도적인 기준으로 A와 B로 나뉘는 것이 평가제도를 운영하는 목적에 부합할까? 그 내용적 타당성을 보완해 줄 수 있을까? 와 같이 현실적인 불완전성을 인식하고 이를 다르게 생각해 보고 그 생각을 다른 방법론으로 만들어보는 시도를 해보는 것이 가능한 우리들이 되는 과정입니다.
생각하기와 과정평가
개인적으로 이야기하는 HR의 방향성으로 '조직과 구성원이 함께 성장하는 환경을 구축하는 것'이라 말합니다. GMS에서 과정평가는 이 '생각하기'를 할 수 있는 환경으로서 제도를 제공하는 것을 목적으로 합니다. 무엇이든 처음 하는 것은 낯설고 두려울 수 있습니다. 특히나 우리 자신의 경험과 그 속의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불완전함을 이해하는 건 기존에 우리들이 해온 경험으로는 생각보다 쉽지 않은 일이기도 합니다. 이는 우리 자신의 부족함을 드러내는 일이 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이 과정을 제도화하는 건 구성원 개개인에게 다가올 수 있는 부족함을 드러내도 그것이 자신에게 불리하게 작동하지 않을 수 있음을 경험하게 하고 적어도 우리 기업에서만큼은 그러지 않을 것이라는 신뢰를 만드는 경험을 제공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과정평가의 구조
과정평가의 구조는 『경험하기 - 돌아보기 - 적용하기』의 세 가지 단계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경험하기란 말 그대로 우리가 일을 수행하는 과정을 말합니다. 돌아보기는 그 일의 수행과정으로서 경험을 돌아보고 잘한 점과 개선할 점을 돌아보는 과정입니다. 적용하기는 돌아보기를 통해 우리가 무엇을 잘하고 무엇을 어려워하는지를 확인하고 도출한 우상향으로 이동을 위한 방안을 적용함으로써 이전과 같지만 다른 경험을 하는 과정을 말합니다.
과정평가의 기록과 활용
일상적인 과정평가는 구성원이 자율적으로 진행하며 제도에 의해 일종의 강제성이 부여된 과정평가의 공식 주기는 분기를 이야기합니다. 분기마다 구성원은 공식적인 '돌아보기' 프로세스를 진행하고 이를 공식적인 문서기록으로 남기고 보관합니다. GMS는 이 과정을 통해 구성원의 경험을 기록된 데이터로 관리할 수 있고 분기마다 기록된 이 문서화된 데이터는 우리가 연말 연초 혹은 연봉조정 등 보상을 결정함에 있어 구성원의 전문성 수준을 진단하는 가장 기초적인 데이터로 활용됩니다.
과정평가의 참여자
공식적인 과정평가에는 기본적으로 해당 과업 혹은 직무에 이해관계를 가진 구성원이 참석합니다. 이는 동일한 과업에 대하여 최대한 다양한 관점들을 확보함으로써 한 개인과 경험이 가지고 있는 불완전성을 최대한 줄이기 위한 목적을 가집니다. 다만 앞서 잠깐 언급한 바와 같이 상대방의 불완전성을 바라보는 관점이 미래지향적이지 않은 참여자가 있을 경우 과정평가는 제대로 진행되지 못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관점이 그렇지 않더라도 만일 우리를 포함한 구성원이 기존의 관행에 익숙해 있거나 경험을 정답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강하게 있는 조직이라면 제도 시행 초기에는 그 참여자를 최소한으로 하고 조금씩 늘려가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습니다. 혹은 일종의 ground rule을 준비하여 해당 규칙을 지키도록 하거나 6 hat과 같이 사전에 역할을 지정하는 방식을 활용할 수도 있을 겁니다. 우리가 idea도출을 위한 브레인스토밍 등을 진행함에 있어 사전 규칙을 정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라 할 수 있습니다.
과정평가, 조직 내 '신뢰'를 만들어가는 과정
GMS에서 과정평가를 통해 우리는 우리 개개인이 가지고 있는 부족함을 솔직하게 드러내고 그 부족함을 다양성을 통해 채워가는 경험을 만나게 됩니다. 이 경험을 통해 우리는 우상향을 위한 경험뿐 아니라 구성원과 조직에 대한 신뢰가 만들어지는 경험도 만날 수 있습니다. 상대방이 하는 이야기가 우리 개개인을 깎아내리고 나쁘게 판단하려는 것이 아니라 돕기 위한 마음임을 느끼게 하는 과정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GMS가 이야기하는 과정평가는 '일을 중심으로 조직 내 신뢰를 만드는 과정' 내지 '일에 있어 심리적 안전감을 확보하는 과정'으로서 경험을 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는 제도라 말할 수 있습니다.
방향성과 저성과자 관리
위의 이야기를 하면 저에게 돌아오는 반문 중 하나가 다 좋은 이야기인데 사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저성과자 이슈가 있지 않겠냐는 이야기입니다. 모든 조직에는 항상 저성과자가 있습니다. 다소 단정적인 표현을 사용한 건 그 성과를 판단하는 사람에 따라 달라지는 일종의 상대적 개념에 가깝다는 생각에 기인합니다. 저성과자 관리의 관점에서 보면 GMS에서 말하는 과정평가는 더욱 중요합니다.
GMS는 기본적으로 성장을 지향합니다. 이는 조직의 관점에서 성과를, 구성원 관점에서 성장을 의미한다는 것을 이전의 글들에서 이야기했었습니다. 그 성장을 위해 우리는 불완전성을 인식하고 솔직하게 마주하고 그 솔직함을 다양성을 통해 보완하며 이 과정을 통해 조직 내 신뢰를 만들어가는 경험을 마주할 것을 GMS는 제안합니다. 달리 말하면 '성장'이라는 방향성에 맞지 않는다면 우리는 그 누군가를 저성과자로 관리해야 할 수도 있음을 말합니다. 기존에 '저성과자'라는 표현을 사용했지만 과정평가의 취지 등을 고려하면 '적합성이 낮은 사람'이라 말할 수 있을 겁니다. 그 적합성에 대한 판단 역시 데이터를 기반으로 이루어져야 합니다. 과정평가를 통해 우리는 그 데이터를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지속적이고 연결된 일에 관한 데이터 말이죠.
HR의 역할
과정평가를 통해 데이터가 만들어지더라도 그 데이터를 제대로 해석하지 못하면 혹은 그 데이터를 특정 개인의 이익을 위한 방향으로 해석하고 단정한다면 우리가 한 과정평가는 정말 쓸모없는 것이 될 수 있습니다.
"이제 약속했으니까 내가 이제 아저씨 100% 믿을게"
"100% 론 믿지 마. 사람은 100% 믿으면 안 돼. 나중에 상처받을 수 있어"
"음, 그러면 50%만 믿을게"
- 드라마 대행사 13회 대사 중
사람은 불완전합니다. 아무리 좋은 사람이라 하더라도 개인적인 이익 앞에서 고민을 안 하기란 쉽지 않을 겁니다. 그래서 제도가 필요하고 보완장치가 필요합니다. GMS의 과정평가를 통해 우리는 사람의 행동을 유인하고 성장지향적 인식이 형성될 수 있도록 도움을 제공합니다. 이를 위해 HR은 과정평가의 데이터가 최대한 객관적으로 해석될 수 있도록 역할을 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러한 HR의 역할을 GMS에서는 coach2 process로 표현합니다. HR은 가장 권력적인 기능이 될 수 있지만 어쩌면 가장 권력적이지 않은 기능이 되어야 합니다.
평가제도와 성과관리제도
OKR을 누군가는 평가제도로 말하기도 하고 누군가는 성과관리제도로 말하기도 합니다. 혹은 성과관리제도라 생각하지만 실무적으로 혹은 현실적으로는 평가제도이다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성과관리제도가 아닌 평가제도로 실무단계에서 일을 해오면서 제 머릿속에 남은 건 평가제도보다는 성과관리제도라 말하는 것이 더 적합하다입니다. 다만 그 성과를 '관리'하는 과정에서 일을 중심으로 하는 소통구조와 데이터 관리를 어떻게 할 것인가에 따라 우리는 이를 기반으로 올바른 평가를 위한 자료로 활용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과정평가와 경험관리
경험관리라는 단어가 많이 회자되지만 사실 경험관리라는 것이 굉장히 새로운 개념이라 말하기는 어렵다는 생각을 합니다, 우리는 이미 지나온 시간 동안 경험을 해왔기 때문입니다. GMS에서 과정평가는 우리 조직 내에서 일하는 방식으로서 경험을 관리합니다. 그 경험을 소재로 대화하고 기록하고 합의하는 과정을 만드는 것이 GMS 과정평가의 본질입니다.
GMS경험관리와 커리어관리
한 개인에게 있어 커리어 관리는 중요한 이슈입니다. 외부에서 한 개인을 평가하는 주요 정보가 되기 때문입니다. GMS에서 경험관리는 기본적으로 한 개인의 커리어 관리를 주요 목적으로 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보다 본질적인 관점에서 일하는 경험을 개인이 만날 수 있도록 도와줌으로써 개인의 전문성을 수준을 향상하는 데 도움을 제공할 수 있습니다. 이는 GMS가 구성원 개인의 성장이라는 관점에서 제시하는 전문성으로 연결됩니다.
생각해 보면 쉬운데 또 하려면 어렵기도 합니다. GMS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 자주 만나는 반응은 참 좋은데 하려고 하니 어렵다였습니다. 개인적으로 우리들이 경험을 재료로 활용하는 연습, 경험을 하지 못해 왔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을 합니다.
어려워 보이지만 생각보다 쉽게 할 수 있습니다. 이들 개념을 적용하는 기업들이 많아지길 희망합니다. 조직과 구성원이 함께 성장하는 환경으로서 HR제도를 고민하는 기업들이 많아지길 희망합니다. 그 과정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제가 브런치에 생각을 기록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