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MS에서 일과 일 하는 방식에 대하여
일은 인간의 본성과 맞지 않다. 일을 하면 피곤한 게 그 증거다 - 미셸 투르니에
프랑스의 소설가 미셸 투르니에는 이런 말을 남겼다고 합니다. 저는 이 말을 김영하 작가의 TED영상에서 들었는데요. 이 말을 들으면서 든 생각은 '노는 것도 피곤해지긴 하는데'였습니다. 물론 '일 하는 것'과 '노는 것'에 대한 이 두 문장에는 보이는 것 외에 보이지 않는, 맥락이 담겨 있을 수도 있습니다. 일을 하는 것과 노는 것 모두 육체적인 피로는 있겠지만 동시에 존재하는 심리적 상태가 다를 수 있다는 점이겠지요.
생각해 보면 이러한 맥락의 차이를 만드는 중요한 지점에는 우리가 바라보는 대상으로서 '일'에 대한 관점 내지 인식이 있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보상과 동기부여에 대한 이야기들이 있습니다. 집 앞에서 노는 아이들을 쫓아낼 목적으로 아이들에게 놀면 보상을 제공하면서 점차 그 보상을 줄이자 아이들이 놀이에서 재미를 잃어버렸다는 이야기나 아프리카 어느 지역에서 지하수를 끌어올리기 위해 고안했던 아이디어 상품이 실패했다는 이야기들입니다.
사실 일과 놀이는 그 외형적으로 크게 다른 무언가라고 말하긴 어렵습니다. 예를 들어 제가 즐겨하는 게임이 저에겐 일종의 놀이이지만, 프로 게이머 분들에게는 일이 되기도 합니다. 반대로 제가 하는 일이 HR이지만 동시에 HR이라는 일이 제가 하는 또 다른 놀이가 될 수도 있을 겁니다. 게임에서 좋은 아이템을 얻기 위해 반복적인 노력을 하듯 HR이라는 일에서 만들고자 하는 다소 도전적인 상태로서 제도를 만들기 위해 나름의 노력을 반복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솔직히 저는 그런 적이 있습니다. 제가 만들어 놓은 보고서, 구조화된 제도의 설계도를 보면서 '아름답지 않아요?'라는 말을 하는 순간 말이죠.
일과 놀이를 서로 다른 것으로 만드는 데에는 우리의 인식이 있습니다. '일'이라는 단어와 '놀이'라는 단어에 대해 우리가 사전적으로 가지고 있는 인식입니다. GMS에서는 그 인식에 영향을 주는 요인으로서 경험을 이야기합니다. 게임을 하면서 일정 수준 반복하여 노력했으나 원하는 보상을 얻기 힘들거나 솔플로는 할 수 없는 레이드가 있으면 시도할 생각도 하지 않고 포기를 합니다. 구조적으로 솔플로는 할 수 없는 구조이거나 혹은 제가 가지고 있는 게임 실력으로 클리어가 불가능하다는 걸 알기 때문입니다. 이를 인식하게 하는 건 '경험'입니다. 대학생 시절 디아블로2 확장판에서부터 시작해 지금까지 가지고 있는 게임 플레이에 대한 게임과 나 자신에 대한 이해입니다.
GMS는 기업 구성원 분들이 일을 통해 경험을 하는 구조를 제공합니다. 이를 본 글에서는 '일 하는 방식'이라 표현합니다. GMS는 '일 하는 방식'을 제공하여 구성원 분들이 '일 하는 경험'을 마주하게 합니다. 물론 이러한 구조가 없어도 우리는 일을 할 수는 있습니다. 지금까지 우리들이 해왔던 방식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 결과 우리는 일은 재미없고 어쩔 수 없이 하는 것으로, 놀이는 재밌는 것으로 인식하게 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GMS는 게임의 보스 공략을 위해 우리가 시간을 들여 사람을 모으고 역할을 정하고 어떤 방식으로 공략을 하고 행동할 것인지, 그래서 무엇을 달성할 것인지를 이해관계자들이 이야기할 수 있는 구조를 제공합니다. 여기에서 한 가지 우리가 더 생각해야 하는 건 동일한 일을 수행한다 하더라도 그 경험들이 모두 동일하다고 말할 수 없다는 점입니다. 각 개인이 사전 지식으로 가지고 있는 살아온 경험, 지식, 생각의 방식 등이 모두 다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아무리 제도가 완벽해도 모든 구성원에게 동일한 경험을 제공할 수는 없습니다. 어쩌면 모두에게 동일한 경험을 제공하는 것은 그리 바람직한 결과가 아닐 수도 있습니다. GMS가 구성원 분들의 경험을 직접 만들어 제공한다고 말하지 않고 구성원분들이 직접 경험을 할 수 있는 구조를 제공한다고 말하는 이유입니다.
MBO라는 단어를 아시는 분들이라면 PDS(Plan-Do-See)라는 단어를 아마 한 번쯤은 들어보셨으리라 생각합니다. 계획을 수립하고(Plan), 실행하고(Do), 확인하는(See)의 프로세스입니다. 사실 GMS에서 이야기하는 일 하는 구조도 이 PDS cycle과 다르지 않습니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PDS cycle을 운영하는 목적이 결과평가(evaluation)가 아니라 과정평가(assessment)에 있다는 점에 있습니다. 이는 우리가 기존에 종종 해왔던 평가의 목적을 육성과 보상 중 어느 것으로 할 것인가? 의 논쟁과 연결됩니다.
우리가 보상의 바이블이라고 말하는 밀코비치의 보상이라는 책에서 저자는 MBO를 육성에 적합하고 보상과 관리에 적합하지 않은 도구로 분류를 합니다. GMS는 제도의 본질에 부합하게 제도를 운영함으로써 본래 제도가 만들고자 했던 모습을 찾아갈 수 있도록 돕는 도구라 말할 수 있습니다.
기존의 PDS와 GMS에서 PDS의 차이점은 PDS 프로세스를 운영하는 목적에 있습니다. 기존에 우리는 PDS 프로세스를 결과평가(evaluation)를 위한, 그래서 보상의 근거로 활용하려는 목적이 강했습니다. 그럼에도 여전히 보상의 공정성에 대한 논란은 계속 존재해 왔지만 사실 이렇다 할 대안이 없었던 것도 사실입니다. GMS가 제공하는 일 하는 구조에서 PDS 프로세스는 과정평가(assessment)를 그 운영의 목적으로 합니다. 결과평가와 과정평가의 차이점은 명확합니다. 결과평가는 특정 시점에 사람과 일을 평가하며 궁극적으로 보상의 근거를 만들기 위한 목적으로 운영됩니다. 과정평가는 일을 수행하는 과정을 진단함으로써 경험을 관리하는 목적으로 운영됩니다.
바로 앞 문장에서 결과평가와 과정평가를 이야기하며 단어 하나를 다르게 기록했습니다. 결과평가를 이야기하면서 '평가'라는 단어를 사용한 반면 과정평가를 이야기하면서는 '진단'이라는 단어를 사용했습니다. 평가와 진단 모두 현재 상태를 확인하는 것에는 다름이 없습니다. 그러나 평가는 판단을 목적으로, 그리하여 판단의 결과를 도출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지만 진단은 더 나은 상태로 나아가기 위해 현재 상태를 확인하는 것을 목적으로 합니다. GMS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제시했던 방향성으로서 '우상향의 직선'의 모습을 만들어가는 과정이라 할 수 있습니다.
주니어 HR담당자 시기에 참석했던 스터디 모임에서 강사분은 참석자분들에게 이런 질문을 합니다.
"평가는 언제 하는 건가요?"
나올 수 있는 답들은 거의 다 나왔던 듯합니다.
매년 말, 매년 초, 반기 혹은 분기마다, 월마다 그리고 1년 내내 항상
강사분이 생각하고 있는 답은 '1년 365일 항상'이었습니다. 물론 정말 365일 내내 평가를 하는 건 현실적으로 쉽지만은 않은 일일 겁니다. 아무리 한 공간에서 같이 일을 한다 하더라도 모든 상황을 다 관찰한다는 건 어렵습니다. 더욱이 리더가 나름의 실무를 같이 하고 있다면 더욱 그럴 겁니다.
저 역시 글로 생각을 기록하고 있지만 간혹 같이 일하는 친구들과 이야기하다가 일기쓰기를 권하곤 합니다. 이 일기쓰기에는 한 가지 조건이 있습니다. 매일 쓰지 않아도 된다는 것입니다. 생각날 때 생각을 기록하는 습관을 가지는 것에 가깝습니다. 이는 우리가 가진 기억이 왜곡되거나 사라지는 것을 막아줄 수 있습니다. 이를 위해 일기는 생각이 났을 때 써야 합니다. 진단과 피드백도 그렇습니다. 시기를 놓치면 현재 상태는 다양한 원인들로 인해 왜곡됩니다
"건의를 했는데 1달이 넘어서야 피드백이 왔어요. 그것도 왜? 도 없이 그냥 안 된다네요"
어느 구성원분과 면답을 하면서 들었던 말입니다. 피드백은 그 피드백이 유효하게 작동할 수 있는 시점이 있습니다. 그 시점을 넘기면 피드백을 하는 사람도 받는 사람도 더욱 어색한 상황들이 될 가능성이 높게 됩니다.
적시성과 함께 피드백을 함에 있어 중요한 건 피드백의 방식입니다. 아래의 두 문장을 살펴볼까요
"왜 이렇게 했어!. 이것밖에 못해!"
"A를 하기로 했는데 a'를 했네요. A를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일단 반말과 '요'의 차이가 보입니다. 이와 더불어 한 가지 강조하고 싶은 건 전자는 사람에게 탓을 하는 맥락을 듣는 사람에게 전달한다면 후자는 일이 우리가 바라는 대로 완성되지 않았음을 이야기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분명한 건 이 두 문장 모두 듣는 이에게 지금 '현재의 상태'가 잘못되었다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하지만 전자는 그 '상태'를 진단하는 대신 상대방을 판단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고 후자는 '상태'를 진단하고 그 '상태'를 개선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고 할 수 있을지 상대방이 생각할 수 있도록 질문을 합니다. 결과평가 피드백에서 우리는 지나온 시간에 전자와 같은 피드백을 받아왔다면 과정평가 피드백을 지향하는 GMS는 후자의 피드백을 이야기합니다.
제가 기록하는 HR과 관련한 글들이 어쩌면 새로운 내용들은 아닐 거라 생각합니다. 다만 개인적으로는 이를 본질을 찾아가는 여정이라 말합니다. 오랜 시간이 지나며 사람과 사람, 기업과 기업 등을 거치면서 왜곡되어 있던 제도의 본질을 찾아가는 노력이라 할 수 있습니다. 본질을 알면 형식과 실제 현장에서의 움직임을 본질을 기준으로 조율하고 만들어갈 수 있지만 본질을 모르고 형식만 배우면 우리는 형식에 의존하는 존재가 될 수밖에 없을 겁니다. 등급별 비율이 정해져 있으니 90점과 89.9점이 A와 B를 구분하는 기준으로 다소 불합리함을 인정함에도 형식에 기대어 잘못되지 않았음을 이야기하는 모습 말이죠. 본질을 이해하면 형식은 산업과 기업, 구성원과 경영진에 따라 다양하게 나타날 수 있습니다. 구글이 사용하는 양식이 정답이 아니라 지금 우리가 만드는 양식이 적어도 우리 기업에서는 정답이 될 수 있을 겁니다.
다음 주제
다음 주제는 이번 글에서 이야기한 과정평가와 진단이 이루어지는 과정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어쩌면 우리가 이미 하고 있는 모습도 포함되어 있을 수 있고 우리가 안 될 거야라고 생각했던 모습도 있을 수 있습니다. 결과평가가 아닌 과정평가의 모습을 살펴보고 그렇다면 결과평가는 어떻게 해야 할까? 에 대한 이야기도 이어서 진행해보려 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