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at. Opellie의 경험
입대하고 만난 첫 휴가를 나왔습니다. 짧은 휴가를 마치고 복귀를 하기 위해 집을 나서는 아들에게 어머니는 이렇게 말을 건넸습니다. 군에 가기 전에는 아들이 욕을 하는 걸 본 적이 없으셨던 어머니는 휴가 중 대화를 하며 아무렇지 않게 욕을 포함하여 말을 하는 아들이 계속 마음에 걸리셨었고 복귀하는 아들에게 말을 건네신 거죠. 부대로 복귀해야 하는 아들이 그리우실 수도 있지만 어머니 입장에서 군복무는 아들이기에 해야만 하는 것이라면 욕을 하는 건 해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사실 당시 저에게 어머니의 그 말씀은 제법 강한 메시지로 다가왔습니다. 제가 욕을 하고 있다는 생각을 단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고, 입대 후 첫 휴가를 나오기까지 불과 몇 개월 사이에 달라진 점이었기 때문입니다. 만일 그 당시 어머니 말씀이 아니었다면 어쩌면 일상적인 대화 속의 제 모습이 달라졌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집 문을 나서는 아들을 보며 하신 어머니의 말씀 하나에 만일 제가 '그냥 제가 알아서 할게요' 라며 튕겨냈다면 이야기는 또 달라졌을 겁니다. 당시 저는 어머니의 말 한마디를 튕겨내는 대신 받아들였고 스스로 말을 함에 있어 의식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뒤통수로 들려온 어머니의 말을 받아들이는 데 있어 무엇보다 중요한 건 어머니에 대한 신뢰였습니다. 어머니의 말은 어머니 본인을 위함이 아니라 그 말의 상대방인 아들을 진심으로 위함이 담겨 있음을 말합니다. 신뢰는 영향력이 형성될 수 있는 강한 작동 기제이고 동시에 영향력은 신뢰를 형성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도구라 말할 수 있을 겁니다.
저와 10살이 조금 넘게 차이나는 어느 과장님이 집에서 회사 이야기를 하면서 남편에게 이렇게 말을 했다고 합니다. 그러자 남편은 이렇게 답을 했다고 합니다
"기본적으로 인사팀은 믿으면 안 돼"
아시다시피 저는 HR이라는 일을 합니다. 한 발 더 나아가 "HR이라는 일을 좋아합니다". 좋아하는 일이기에 제가 하는 일이 보다 긍정적인 영향력을 가질 수 있길 바라고 있습니다. HR이 긍정적인 영향력을 가진다는 건 HR이 다루는 제도들이 긍정적인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설계되어야 함을 말할 겁니다. HR이 만든 제도들이 긍정적인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지 여부는 제도 기획서나 보고서가 아닌 그 제도를 활용하는 사람들, 즉 구성원분들을 통해서만 확인이 가능합니다.
그런데 HR을 하는 opellie라는 사람은 본질적으로 '불완전한 인간'입니다. 저는 긍정적인 모습을 그리며 제도를 설계했지만 미처 예측하지 못한 부분들이 있을 가능성이 항상 존재합니다. 그 예측하지 못한 부분들을 채워주는 건 구성원분들입니다. 제도를 이용하면서 느낌들을 피드백받으면서 제가 가진 불완전함을 하나씩 채워갈 수 있습니다. 이러한 상호작용은 상호 간 긍정적인 영향력을 주고받는 과정으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긍정적인 영향력의 상호작용은 상호 간 신뢰가 있을 때 보다 잘 형성될 겁니다. 제가 하는 말과 제가 만드는 제도가 다소 낯설거나 이상해 보여도 HR이 지향하는 방향을 상대방으로서 구성원분들이 이해하고 있고 나아가 HR을 하는 사람으로서 인사팀장을 신뢰한다면 긍정적인 영향력은 보다 잘 만들어질 겁니다.
저와 경력연수에 좀 차이가 있는 구성원분들과 이야기를 하다 보면 저 역시나 제가 지나온 시간에 경험한 일들을 이야기하기도 합니다. 흔히 말하는 "라떼"를 시전 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다행히도 아직까지는 저와 대화를 하고 난 후의 결과로 "꼰대" 소리를 들어본 적은 없습니다. 개인적으로 같은 "라떼"도 영향력의 작용 결과에 따라 다른 "라떼"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이러한 차이를 만드는 기본은 영향력이 가지고 있는 힘의 근원과 방향성이라 생각합니다. 대화 속에서 제가 하는 '라떼'는 기본적인 사실관계와 제가 지나온 시간 배우고 생각하며 정리해 온 나름의 논리를 힘의 기본으로 하며, 말을 듣는 상대방에게 도움이 되는 '라떼'라는 방향성이 있습니다. 외형적으로는 '라떼'이긴 한데, 그 '라떼'가 나 자신을 돋보이고 잘나게 보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상대방에게 도움이 되는 방향성을 가지고 있음을 말합니다.
동료 둘과 같이 점심을 먹으러 갑니다. 저와 다른 동료 한 명은 점심메뉴 정하는 걸 많이 어려워했습니다. 그래서 매번 남은 동료가 메뉴를 정했고 우리는 따라갔었죠. 그러던 어느 날 매번 메뉴를 정하던 동료가 제가 아닌 다른 동료에게 화를 냅니다. 메뉴를 정해보라고 말이죠. 식사를 하고 오후에 차를 마시며 매번 메뉴를 정하던 동료와 점심 이야기를 했습니다. 제가 한 이야기는 '미안하다'였는데 그 동료의 대답은 '미안할 필요가 없다'였습니다. 점심에 화를 낸 건 제가 아닌 다른 동료에게만 한 거라고 말이죠. 그래서 물어봤습니다. 나도 점심을 정해본 적이 없다고. 이 말에 돌아온 동료의 대답은 이랬습니다.
"opellie가 메뉴를 정하지 않는 건 나(동료)를 배려하기 위한 것이고,
다른 동료가 메뉴를 정하지 않는 건 그냥 자기 자신이 결정하는 게 귀찮아서 그러는 것"
이라고 말이죠. 저와 다른 동료, 둘은 똑같이 '메뉴를 결정하지 않는' 행동을 했지만 그 동일한 행동을 상대방은 다르게 받아들이고 있었습니다.
조금 오래전에 체코의 프라하에 여행을 다녀온 적이 있습니다. 황금길부터 구/신시가지 등 다양한 곳을 보고 왔지만 그중에도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은 '자동차와 비둘기'라 기억에 이름 붙인 장면입니다. 어느 도로에 비둘기 한 마리가 내려앉아 있었고 저편에서 자동차가 오고 있습니다. 다소 불안해 보였던 그 순간 자동차는 속도를 줄여 멈췄습니다. 여기에서 기억에 남는 장면을 만납니다. 새가 지나갈 때까지 경적도 울리지 않고 자동차가 멈춰 서서 기다리는 장면 말이죠. 어쩌면 그 자동차를 운전하고 있는 누군가는 평소에도 주변의 사람들에게 긍정적인 영향력을 주는 사람이 아니었을까 생각을 합니다.
영향력은 잘 보이지 않습니다. 영향력이 발현된 결과로써 행동은 볼 수 있지만 그러한 행동이 나타나게 만드는 상호작용 과정을 우리는 눈으로 볼 수 없습니다. 어쩌면 영향력은 매 순간 우리가 의도하건 의도하지 않았건에 상관없이 일상 속에서 무수히 다양한 형태로 발생하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화장실에서 손을 씻으면서 티슈를 지나치게 과하게 사용하지 않는 것, 화장지를 쓰레기통에 제대로 버리는 것, 다른 사람들이 지키지 않아도 묵묵히 횡단보도의 시작점에 서서 신호등의 초록빛을 기다리는 것, 길을 건너길 기다리는 사람이 보이면 잠시 정차하고 길을 건널 수 있도록 기다려 주는 것 등등의 모습들 말이죠.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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