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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pellie Aug 30. 2024

1. 인사담당자, Opellie, 시작

어느 인사담당자의 경험은 그대로 두면 그냥 한 사람의 경험일 뿐이지만, 그 경험이 공유되면 다른 경험을 만들어가는 재료가 될 수 있음을 생각합니다. 기존의 글들보다는 조금 더 주관적인 인사담당자 Opellie의 경험을 소개합니다. 기억의 조각에 크고 작은 살을 붙였기에 기본적으로 브런치북 '인사담당자 Opellie'는 실제 인물과 같을 수도, 다를 수도 있습니다.

어느 인사담당자의 시간을 기록합니다. 

2005년 12월 30일, 그러니까 내가 회사원으로서 이제야 온전히 한 해를 보내고 고생했다며 스스로 쓰담쓰담하던 그날 나는 책상 정리를 하고 있었다. 법적으로는 아직 토요일 근무가 남아 있었지만, 그래도 연말이니까 회사 차원에서 금요일에 업무 정리를 하는 중이었다. 


"Opellie"


등 뒤에서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리고 나는 자연스럽게 뒤를 돌아보며 소리나는 곳을 향했다. 나를 부른 건 감사과장님 이었는데 그는 나를 보며 말을 이어갔다


"감사실에서 고생했고, 다음 주 월요일부터 인사팀으로 출근해라"


순간, 왜? 갑자기? 등의 단어들이 떠올랐지만 그들보다 더 우선했던 건 내 감정이었다.

'두려움'

당시 내 마음 속 감정은 나에게 다가올 낯선 것에 막연한 두려움으로 가득차기 시작했다. 내가 있었던 감사실에서 역할에 이제 1년이라는 한 사이클을 경험하고 조금 익숙해질만 했는데 다시 새로운 사람, 일을 만나서 다시 적응을 해야 하는 상황을 만난다는 것이 많이 두려웠다. 그건 익숙함이 주는 편안함에서 벗어나고 싶어하지 않는 몸부림이기도 했다. 


"저 안가면 안될까요?"


막연하게 다가온 두려움이 내뱉은 말이었고 과장님은 어이없다는 듯 웃고 있었다. 

물론 그 웃음의 의미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쉽게 알 수 있었다. 


주말이 지나고 월요일이다. 출근을 해서 어색한 사무실로 어색한 모습으로 발을 들이밀었다. 조금 일찍 출근한 탓에 사무실에는 아직 사람들이 없었고, 내 자리를 몰랐던 나는 작은 회의용 탁자로 다가가 간이 의자에 앉았다. 얼마쯤  시간이 흐르고 몇 사람들이 내 옆을 스쳐 지나간다. 그리고 드디어 나에게 말을 걸어주는 사람을 만났다. 


"Opellie죠. 어서와요. 자리는 이쪽이에요"


인사팀 선배분들을 만났고, 그리고 인사라는 일을 만났다. 좀더 정확히는 채용과 3대보험이라는 일을 만났다. 업무 인수인계를 받고 있었지만 귀에 들어오지 않았고 사실 딱히 귀기울여 들을 내용이 그리 많지 않았다. 전임자는 인수인계를 하는 내내 자신이 일을 얼마나 잘하는지에 대한 자랑만 했다. 물론 그게  사실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되는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진 않았지만...


낯설었고 그래서 오기 싫었고, 어쩔 수 없이 왔지만 업무를 알려주는 이가 없었다. 전임자는 업무인수인계를 다 했다며 아무것도 모르는 나를 두고 나몰라라 했고, 나는 당장 일을 해야만 했다. 인사팀 출근 2일차 아침에 눈을 떴다. 출근하기 싫다는 생각을 한다. 낯선 사람들, 낯선 일들, 무엇을 해야 하는지 모른 채로 무언가를 해야 하는 상황. 그대로 영혼없는 출근을 시작했다.


인사팀으로 와서 알게 된 게 있었다. 내 고용형태가 '계약직'이었다는 것. 사실 입사 당시에는 중소기업이지만 '공채'라는 절차를 통해 입사를 했었기에 별다른 의심(?)을 하지 않고 계약서에 서명을 했었다. 그리고 당시에는 당연히 계약직, 정규직 개념 자체를 몰랐었다. 일단 돈을 버는 게 중요했으니까. 내 신분이 계약직, 즉 '기간제 근로자'라는 걸 알게 되었고 팀은 다르지만 인맥으로 입사한 누군가는 정규직이라는 걸 알았을 때 조금, 사실은 많이 당황을 했었다. 그리고 머지 않아 흔히 우리가 비정규직 3법이라 부르는 법들이 시행되고 나면 비정규직으로 구분된 이들에게 계약종료 통보가 올 수 있다는 말들이 돌았다. 


중소기업 공채 출신 기간제 근로자인 인사담당자, 

환경이 변하고 있고 그 환경을 나는 어떻게 할 수 있는 힘이 없다. 어짜피 법이 시행되면 내 의지와 무관한 일들이 발생할 수도 있고, 지금 맡은 일에 대해 아는 것도 없고, 물어볼 수 있는 사람도 없다. 내가 일을 잘 못하면 어짜피 계약이 종료될 가능성이 높다.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기왕 나가는 거라면,
내 스스로 부끄럽지는 않게 하고 나가자


내가 내린 결론이다. 어짜피 나가야 한다면 일을 못해서 쫒겨난다는 말을 듣고 싶지는 않았다. 나가더라도 적어도 내 스스로는 나 자신에게 부끄럽지 않을 수 있게 하고 싶었다. 부끄럽지 않은 나를 위해 무엇보다 인사라는 일을 알아야 했다. 부끄럽지 않으려면 행동으로 일의 결과를 만들어야 했고, 행동하려면 무엇보다 인사라는 일을 알아야만 했다.


인사라는 일을 하면서 종종 사용하는 표현으로 '최악의 상황을 가정하고 일을 준비한다'는 말이 있다. 특히나 노무관련 일을 할 때 나에게 이 말은 내가 하는 모든 일과 관련된 행동의 기준이 된다. 

이제 막 인사업무를 만난 나는 나에게 다가올 수 있는 최악의 상황을 생각했고, 그 속에서 내가 통제할 수 있는 부분과 그렇지 않은 부분을  구분했다. 그리고 내가 할  수 있는 부분에 대해서 만큼은 부끄럽지 않기로 했다. 설사 나가야 하는 상황이 오더라도 스스로를 탓하거나 부끄러워하는 대신 '졌잘싸'를 스스로에게 말할 수 있는 나를 만나고 싶었다. 


그렇게 인사담당자 Opellie의 시간이 시작되었다. 

인사라는 일을 만나러 가는 문을 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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