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제: 의심 대신 검증하기
"Opellie, 인사(HR)는 그렇게 하는 게 아냐'
1차,2차를 넘어선 회식자리였습니다. 술을 잘 못하는 저는 그때도 술 몇잔에 빨개진 얼굴을 붙잡고 밖으로 나왔습니다. 찬바람이라도 쐬면서 술을 깰 요량으로 말이죠. 때마침 저와 비슷한 또래이지만 지금 기업에는 저보다는 오래 있었던 동료가 밖으로 나왔습니다. 그러다 저를 보고는 이 말을 건넸죠.
조금, 사실은 많이 당황했습니다. 술이나 깨자고 나와있었는데 그런 말을 들을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고, 무엇보다 그의 말은 5년 넘게 인사라는 일을 해왔던 Opellie라는 아이의 경험을 부정하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사실 그 당시는 저도 제정신이 아니긴 했었습니다. 일단 술이 들어간 상태였으니까요.
저는 그 말이 제 귓가에 닿은 순간 주먹을 날리지는 않았고 대신 살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제가 했던 끄덕임을 그가 제대로 이해했을 거 같지는 않지만 당시 제가 한 끄덕임에 담긴 의미는 이랬습니다.
"음, 그래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어"
이 대답은 인사라는 일과 인사담당자라는 역할에 대해 각자가 가지고 있는 관점, 부여하는 의미가 다를 수 있음을 인정하는 것과 하지만 그것을 인정한다는 것이 내가 틀렸다는 네 말에 동의하는 것은 아니라는 두 가지 의미가 담겨 있죠.
일을 하면서 좀더 많은 서로 다른 사람들을 만나면서 간혹 우리는 우리 자신을 부정하고 깍아내리는 말들을 만나곤 합니다. 나름 열심히 인사라는 일을 해왔는데 어느 날 술자리에서 제가 들었던 말처럼 말이죠.
처음엔 기분이 나쁘고 속에서는 '니가 뭔데(나한테 그런 말을 해)'라는 문장이 반복재생되는 노랫말처럼 재생되기 시작합니다. 그러다 시간이 좀더 지나고 나면 '정말 잘못하고 있는 걸까?'라는 의심이 싹트기 시작합니다. 이러한 의심이 계속되면 우리는 자기자신을 갉아먹기 시작합니다. 평소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일들에 대해서도 자신감이 없어지고 나도 모르게 주눅이 들곤 합니다.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듯 행동하고 혼자서 '니가 뭔데'를 반복재생하면서도 '정말 그럴까?'라는 의심을 하고 말죠.
물론 사람마다 가지고 있는 성향에 따라 반응은 또 다를 수는 있겠지만, 저는 그랬습니다. MBTI를 하면 극단적인 집돌이 성향을 보이는 저는 말이죠.
의심 대신 검증하기
술이 깬 다음 날 맨 정신에 전날 들었던 말을 떠올립니다. 그리고는 '니가 뭔데'를 속으로 되뇌이고 있는 저를 만났습니다. 반복할수록 분노 게이지가 차오르기 시작하고 억울하다는 생각도 했죠. 그러다 내가 왜 이럴까라는 질문을 만났습니다. 억울하다는 건 나는 아닌데 다른 사람이 나를 오해하고 있다는 이야기이니까요. 억울하려면 일단 내 자신이 당당해야 했죠.
"떳떳하면 기분 나쁠 것 무서울 것도 없다"는 스토브 리그 백선생의 말을 따라서 우선은 내 자신을 스스로 의심하고 검증하기로 합니다. 제가 인사라는 일을 하면서 일에 부여하고 가지고 있는 의미, 가치, 방향성에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의 방식이 부합하는가를 스스로 확인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곤 결론을 내리죠
"아니야. 아직 잘 가고 있어"
의심은 의심으로 연결됩니다. 확인된 사실보다 확인되지 않은 그럴듯한 말들이 또 다른 말들을 만들어 냅니다. 반면 검증은 막연한 의심을 명확하게 해줍니다. 이를 통해 검증은 '떳떳해서 기분 나쁠 것도 무서울 것도 없는' 우리들을 만나러 가는 길로 한 걸음 내딛을 수 있게 해줄 수 있습니다.
의심은 또 다른 의심을 만나게 하지만
검증은 우리를 보다 명확한 '나'를 만나게 해준다
사회생활을 하며 우리는 생각보다 자주 우리들을 부정하거나 틀린 것으로 단정짓는 말들을 만나곤 합니다. 속상하고 때로는 아프기도 할 겁니다. 이때 우리 자신에 대해 의심하기 대신 검증하기를 적용해보면 어떨까 생각합니다. 의심은 또 다른 의심으로 이어지고 아무런 실체가 없음에도 우리 자신을 부족한 사람, 틀린 사람으로 만들 수 있습니다. 반면 검증을 통해 우리는 우리 자신을 이해하고 보다 '나다운' 모습으로 단단함을 만들어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오랜만에 조금 감성적인 글을 남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