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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pellie Aug 15. 2024

인문학 책은 어려울까?

본 글은 인문학에 대한 전문적이고 학술적인 글이 아닙니다.
인문학 책을 조금은 봤고 보고 있는 독자의 한 사람으로서 인문학 책에 대한 생각을 기록합니다.


하반기 북클럽 과정을 개설을 검토하면서 인문학으로 분류될 만한 책들을 보기 시작했습니다. 책들을 보고 정리를 하다가 인문학으로 분류되는 책들을 상대적으로 어려워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지난 시간 어디선가 들어봤을 문장이 머릿속에 등장합니다. 


처음 생각한 글의 제목은 '인문학 책은 왜 어려울까?'였습니다. 그리고 이내 이 문장에서 ''왜?''라는 단어를 빼기로 했습니다. 인문학이라는 분야를 즐기며 공부하는 분들이 있을 수도 있고, 무엇보다 그냥 생각해 보면 인문학은 어려워서는 안 되는 분야가 아닐까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인문학(人文學)은 인문(人文), 즉 사람을 탐구하는 분야라고 합니다. 사람을 알아가는 분야인 거죠. 이러한 정의는 사실 매우 당황스러운 개념정의이기도 합니다. 나 자신이 사람인데 나를 알아가는 학문이라는 이야기가 되고 이는 지금  우리가 '나 자신'을 잘 모른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제 MBTI는 『I』로  시작합니다. 내향적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저는 외향적이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습니다. 그것도 여러 사람들로부터 말이죠. 개인적으로는 평소의 '나'와 HR이라는 일을 할 때의 '나'가 다른 거 같다고 말합니다. 저는 내향적일까요? 외향적일까요?

F와 T를 구분하는 질문 "나 우울해서 빵 샀어"는 어떨까요? F는 '우울하다는 상대방의 상태'에 초점을 맞추는 반면 T는 "우울한데 왜 빵을 사?"와 같은 반응을 한다고 하죠. 저는 "우울할 땐 단 게 필요하지"라고 답을 했다면 저는 F일까요? T일까요?


'나'를 알기 어려운 건 '나'라는 존재는 『I』나 『E』, 『F』나『T』와 같이 어느 일방으로 단정 짓기 어려운 존재이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말 그대로 복잡한 존재인 거죠. '나'는 상대적으로 잘하는 것이 있고 반대로 상대적으로 잘 못하는 것이 있습니다. 우리는 전자를 강점으로, 후자를 단점으로 말합니다. 하지만 '나'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강점만으로는 부족합니다. 단점도 필요하죠. 그런데 경우에 따라서는 강점이 오히려 독이 되고 반대로 단점이 좋은 결과를  가져다주기도 합니다. 때로는 동일한 습관, 행동특성이 상황에 따라 강점이 되기도 하고 단점이 되기도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1+1은 항상 2가 된다고 배웠지만 사람이라는 우리들은 상황에 따라 '열일'이 되기도 하고 그냥 '1'이 되기도 하고 '귀요미'가 되기도 합니다. 이제 우리는 우리들에게 질문을 합니다. 1+1이 언제 '열일'이 되고 언제 '1'이 되고 언제 '귀요미'가 되는지 말이죠. 


질문을 받고 답을 하려고 보니 '언제'라는 단어를 이야기해야 합니다. 여기에서 '언제'라는 단어는 '어떤 상황에서'의  의미를 가집니다. 1+1이 '열일' '1' '귀요미'가 되는 상황 말이죠. 


학창 시절 시험의 정답을 맞혀야 하는 신분으로서 우리들에게 질문은 단 하나의 답을 가진 존재였습니다. 우리들이 만난 질문에는 항상 정답이 있었죠. 가끔 그 정답에 이의를 제기했다가 혼이 나기도 했죠. 학창 시절에 수학선생님에게 "1+1=귀요미"라고 말했다면 "뒤로 가서 손들고 서 있어"라는 말을 들었겠지만 인문학 책은 '1+1=귀요미'라는 답에 대해 "1+1이 귀요미가 되는 상황은 어떤 상황인가요?"라고 질문을 합니다. 우리는 다시 '상황'을 생각하고 말과 글 등을 통해 표현해야 합니다.


'상황'을 이야기하기 위해 우리는 그 상황을 구성하고 있는 요소들을 살펴봅니다. 그 요소를 우리에게 익숙한 단어로 '6하원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언제'는 시간을 말합니다. 시간을 이야기한다는 건 상황이 발생한 순간으로서 정지된 시간과 그 정지된 시간의 앞과 뒤로 연결된 시간을 포함합니다. '어디서'는 '장소'를 말합니다. '장소'는 '의미/가치가 부여된 공간'을 말합니다. '무엇을'은 그 상황의 중심 소재로서 '대상'을, '누가'는 그 상황을 만들어가고 있는 '주연과 조연'을, '어떻게'는 그 상황에 참여하고 있는 주연/조연들의 반응으로서 '말과 행동'을, '왜'는 그 상황이 필요한 혹은 발생한 이유 내지 근본적인 목적을 말합니다.


우리가 학창 시절 만났던 질문들은 답이 있었습니다. 설사 우리가 답을 맞히지 못했어도 답을 알 수가 있었죠. 반면 인문학 책이 하는 질문은 하나의 답으로 수렴되기는커녕 오히려 더 복잡하고 모호한 상태로 나아갑니다. 인문학 책은 질문을 계속 던지고 있지만 답을 주지 않습니다. 때로는 약 올리는 건가 싶기도 하죠.

인문학 책과 대화하

사실 인문학 책은 질문을 하면서 수시로 힌트를 던지고 있습니다. 역사 속에서 이런 경우가 있었고, 어느 철학자는 이렇게 이야기를 했고, 과거 홍길동이 의적이 된 이유는 이런 상황이 영향을 주었다는 식입니다. 하지만 인문학 책은 끝까지 정답을 이야기하지는 않습니다. 왜 이럴까요?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인문학 책이 이러는 이유는 『모든 상황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책을 읽는 독자 개개인은 모두 다르고 각자 가지고 있는 고민, 속해 있는 공동체, 하는 일, 주변 사람들, 가지고 있는 자원 등 상황을  구성하는 모든 요소들이 다르다는 이야기입니다. 상황이 다름을 아는 인문학 책이 정답을 제시하는 건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래서 인문학 책은 이야기합니다. 역사 속에서 이런 경우가 있었고, 어느 철학자는 이렇게 이야기를 했고, 홍길동이 의적이 된 이유에는 이런 상황들이 있었다고 말이죠. 


그래 인문학 책의 입장은 알겠어! 
그래서 우리는 인문학 책을 읽어야 해? 
읽는다면 어떻게 읽어야 하는 거야?

제가 드리는 답은 아래와 같습니다. 

"우리는 인문학 책을 읽어야 해?"

네 읽어야 합니다. 이유는 명확합니다. 인문학 책은 계속 질문을 한다는 거죠. 인문학 책은 질문을 통해 우리들이 우리들에 대해 좀 더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합니다. 여기에서 우리들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는 것은  우리 자신을 포함해 우리들이 마주하고 있는 상황에 연결된 다양한 사람과 사물들, 그리고 그 연결고리, 즉 상호작용에 기반한  관계를 생각해 보는 것까지를 포함합니다. 그냥 막연하게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인문학  책이 소개해준 역사적 사실과 상황, 어느 철학자의 이야기 등과 연결 지어 지금 현재 우리들 개인이 마주하고 있는 상황을 살펴볼 수 있게 도와줍니다.


"읽는다면 어떻게 읽어야 하는 거야"

따라서 인문학 책을  읽으면서 우리는 인문학 책을 통해 무언가를 배우거나 지식을 하나 더 얻겠다는 마음가짐  대신 인문학 책과 대화를 한다고 생각하며 인문학 책을 읽는 것이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이는 다음과 같은 대화로 이어지겠죠. 


인문학  책이 건네는 말

"피터 브뤼헐이 그린 「추락하는 이카루스가 있는 풍경」이라는 그림이 있어"

"그림에서 이카루스는 어디에 있을까?"

"오른쪽 아래에 물에 빠진 걸로 보이는 사람의 다리 보이지?"

"그게 바로 이카루스야"


인문학 책을 보는 내가 책의 말을 읽고서 하는 말 

"하늘을 나는 기쁨에 너무 취해서 너무 올라가면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내가 될 수도 있겠구나"


인문학 책은 독자로서 우리들의 대답에 더 이상 옳고 그름을 이야기하지는 않습니다. 물론 이는 책이라는 도구의 특성이기도 하지만 인문학  책은 정답이 아닌 생각의 기회를 주는 책이라는 점에서 책과의 대화라는 특성이 더욱 돋보이는 분야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인문학 책은 어려울까? 

인문학 책은 어려울 수 있습니다. 그네들은 독자인 우리들에게 답을 주지 않고 계속 질문을 하거든요. 그것도 직접 물어보는 게 아니라 '이땐 이랬어' 'A는 이런 이야기를 했어' '내 생각에 공간과 장소는 구분하는 게  필요해' '사람과  인간의 개념 구분이 필요해'와 같이 간접적으로 질문을 하는 거죠. 

지식이나 정답을 얻고 싶어서 인문학 책을 보신다면 네, 인문학 책은 어려울 수 있습니다. 말은 많은데 정답을 줄 생각이 없거든요.

대신 인문학 책과 대화를 한다고 생각하고 읽어보시길 권합니다. 책이 전하는 내용을 지금 우리들의 상황과 연결 지어 생각해 보고 책의 여백에 "나도 공감해. 이런  상황에서 이렇게 해볼 수 있을까?"라고 기록해 두는 거죠. 인문학 책이 어려운 대상이 아니라 솔직하게 대화할  수 있는 대상이 될 수 있을 겁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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