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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pellie Dec 20. 2024

17. 모함을 받다

어느 인사담당자의 경험은 그대로 두면 그냥 한 사람의 경험일 뿐이지만, 그 경험이 공유되면 다른 경험을 만들어가는 재료가 될 수 있음을 생각합니다. 기존의 글들보다는 조금 더 주관적인 인사담당자 Opellie의 경험을 소개합니다. 기억의 조각에 크고 작은 살을 붙였기에 기본적으로 브런치북 '인사담당자 Opellie'는 실제 인물과 같을 수도, 다를 수도 있습니다.

어느 인사담당자의 시간을 기록합니다. 


"팀장님 잠시 회의 좀 할까요?"


대표이사님의 갑작스러운 미팅 요청이 받고 회의실로 이동한다.


"그러셨을 거라 생각하진 않지만,,,"


아리송한 말로 시작한 대표님은 인사팀장인 내가 특정 리더에 대한 뒷담화를 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했다. 그 순간 나는 멍했다. 인사업무를 나름 오래 하면서 말실수를 하거나 누군가에 대한 악의적인 뒷담화를 한 적이 없다는 건 내 나름 가지고 있는 자부심 같은 것이었고, 무엇보다 백번 양보해도 오해를 받을 만한 상황이 떠오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혹여나 내 스스로 인지하지 못한 상황에서 누군가  그렇게  받아들인 상황이 있었을까도 생각해보았지만 도무지 그 근거를 찾질 못했다.


"저는 그런 적이 없습니다. 무슨 일인지 여쭤봐도 될까요?"


대표님은 나에게  최근 퇴직한 어느 구성원의 이야기를 꺼냈다. 

그 순간 나도 모르게 허탈한 웃음이 나왔다. 어떤 상황인지 대략적인 그림이 그려지기 시작했다.


인사담당자로서 나는 퇴직인원이 발생하면 늘 퇴직면담을 해왔다. 떠나는 인원이 회사에 대해 혹시나 가질  수도 있는 부정적인 감정을 대화를 통해 다독이고 회사에 대해 그간 하고 싶었던, 회사의 성장에 있어 구성원 관점에서 필요하다고 생각했던 점들에 대한 솔직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해당 구성원도 그랬다. 해당 구성원의 퇴직 소식을 듣고 퇴직면담 일정을  잡았다. 조금 특이했던 점은 퇴직면담 장소였다. 구성원은 회사 사무실 혹은 근처 커피숍이 아니라 사무실에서 거리가 있는 커피숍에서 만나 이야기하길 희망했다. 커피숍에서 마주한 구성원은 나에게 사무실에서 거리가 있는 커피숍에서 만났으면 하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A리더와 마주치고 싶지 않습니다"


그의 퇴직사유는 명확했다. 「리더」


여느 퇴직면담과 마찮가지로 나는  부정적인 감정을 다독이고자 노력하며 퇴직면담을 마쳤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퇴직면담 결과를 정리해서 필요한 경우 개선을 위한 재료로 활용해야 하지만 퇴직면담 내용을 해당 리더에게 전달했을 때  해당 리더가 그  이야기를 진지하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 대해 나는 YES보다는 NO라는 답을 떠올리고 있었다. 어떻게 해야 할까를 고민하던 중 해당 리더와 구성원 사이의 중간관리자분이 연락을 주셨다. 그는 떠난 구성원이 인사팀장에게 남긴 면담 내용을 알고 싶다고 했고 그렇게 나는  퇴직면담 내용을 중간관리자에게 전달했다. 


이후 중간관리자는 퇴직면담 내용을 해당 리더에게 전달했고, 그 리더는 퇴직사유의 메인에 자신이 있다는 말에 화를 냈다고 했다. 그 리더는 내가 중간관리자에게 전달한 퇴직면담 내용을 마치 인사팀장이 해당 리더의 뒷담화를 하고 다니는 것으로 둔갑시켜 조금 과격한 표현으로 인사팀장을 '제거'하려 하고 있었다.


"음... 사실관계만 말씀드리겠습니다"


퇴직면담을 요청받았던 메시지, 중간관리자가 먼저 요청한 메시지, 퇴직면담을 하고 난 뒤 기록해 놓은 면담일지 등을 그 자리에서 바로 공유했고, 일련의 시간적 흐름을 설명했다. 기분이 좋을 리는 만무하다. 하지만 상대방이 감정으로 나를 대할 때일수록 나는 이성적으로 대응한다. 무엇보다 이번 사안과 관련하여 나는 '부끄러운 일'을 하지 않았으니까 사실관계만 정리해 전달하고 판단은 대표이사님에게 맡긴다. 


"음, 중간관리자가 전달을 잘 못한 것 같네요"


"미안합니다"


"아뇨. 무언가 찜찜한 것이 있으면 이야기해서 확인하는 게 맞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이야기는 마무리 되었다.


돌아보면 그 리더는 몇번에 걸쳐 나에게 '내 편이 되어라'는 말을 건네고 있었다. 그리고 언제나 그랬듯 나는 양서류 론을 내세웠다. 내가  생각하는 인사라는 일이 올바른 일이  되는 방향으로 일을 한다. 누구 편이야? 라는 말에  나는 늘  '일의 편'이라  대답을 해왔다. '일의 편'이라는 내 대답에 해당 리더는 이렇게 말하고 있었던 셈이다.


"그럼 죽어!"


일은 더 이상 언급되지  않았고 일종의 헤프닝처럼 지나갔다. 


인사라는 일을 하다보면 정말 다양한 일들을 만난다. 그 모든 일에 일희일비(一喜一悲)하면 어쩌면 우리는 스스로 무너져버릴지도 모른다. 그 다양한, 말도 안되는 일들을 마주했을 때일수록 우리는 사실과 합리적 이성에 기반하여 생각하고 판단하고 행동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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