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인사담당자의 경험은 그대로 두면 그냥 한 사람의 경험일 뿐이지만, 그 경험이 공유되면 다른 경험을 만들어가는 재료가 될 수 있음을 생각합니다. 기존의 글들보다는 조금 더 주관적인 인사담당자 Opellie의 경험을 소개합니다. 기억의 조각에 크고 작은 살을 붙였기에 기본적으로 브런치북 '인사담당자 Opellie'는 실제 인물과 같을 수도, 다를 수도 있습니다.
어느 인사담당자의 시간을 기록합니다.
"팀장님 면담 신청합니다"
메신저 알람이 울린다. 구성원분들과 면담은 인사팀장인 나에게 항상 있어 온 상황이었기에 반갑게 답을 한다.
"물론이죠. 환영합니다"
"1층 로비에서 볼까요?"
차 한잔 하며 이야기를 하려 말을 꺼내자 그는 회사 근처 커피숍을 이야기하며 먼저 가있겠다고 했다.
"OO님,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팀장님"
"무슨 일 있어요?"
"아마도 그런 것 같네요"
이야기를 듣고 있었고, 그 이야기의 요지는 명확했다. 우리가 '직장 내 괴롭힘'이라 부르는 상황이었다. 이야기를 듣고 순간적으로 법에서 '하여야 한다'라고 말하는 절차적 요건을 생각하고 동시에 괴롭힘을 주장하는 상대방을 다독인다.
인사담당자에게 직장 내 괴롭힘 사건은 참 어려운 상황이다. 직장 내 성희롱과 마찬가지로 그 상황에 대한 판단에 지극히 주관이 개입될 수밖에 없고 사안 특성상 양 당사자 모두가 만족하거나 인정할 수 있는 결론에 이르기가 어렵다. 어느 일방의 입장만 취하면 자칫 선의의 피해자가 만들어질 수도 있다. 무엇보다 직장 내 괴롭힘에는 무엇이 되었든 모두가 좋은 결과로 이어지기 어렵고 인사 역시 잘못 대응할 경우 이후 공개적인 노무 리스크를 만날 수도 있는 상황이다.
'직장 내 괴롭힘'이라는 표현은 수년 전 근로기준법에서 등장했지만 사실 법은 현실을 반영했을 뿐 그 본질은 「갈등」이다. 갈등에는 최소 둘 이상의 이해관계자가 존재하며 이들 간의 상호작용이 존재한다.
이야기를 듣고 우선 법에서 정하고 있는 조치들을 취하고 이야기의 본질을 확인하는 과정을 진행했다. 어떤 상황에서 어떤 이야기들이 어떤 표현과 방식으로 구체화되었는지를 확인했다. 이 사건에서 나는 지금의 상황이 법률상 직장 내 괴롭힘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결론을 내렸다. 직장 내 괴롭힘을 주장하는 구성원 입장에서는 마음에 들 수 없는 결정이었지만 해당 구성원분이 제출한 녹취, 동료들의 증언 등을 반복해서 확인했을 때 이를 직장 내 괴롭힘이라 판단하기는 어렵다고 생각했다. 물론 인사팀의 판단에 동의하기 어렵고 속상하다면 고용노동부에 진정을 넣을 수 있다는 이야기도 같이 전달했다.
직장 내 괴롭힘은 본질적으로 갈등이다. 갈등은 둘 이상의 이해관계자가 존재하며 그 사이를 채우는 상호작용이 존재한다. 법 제도상 직장 내 괴롭힘이라 판단할 수는 없어도 그 상호작용의 결과를 전적으로 어느 일방의 탓으로 돌릴 수는 없다. 사건을 종결하고 직장 내 괴롭힘의 가해자로 지목된 리더를 찾아갔다. 이후에는 좀 더 말이나 행동에 조심해 달라는 말을 건네자 그는 이렇게 답을 했다.
"내가 괴롭혔다고? 난 잘못한 거 없어"
"인사팀장도 괴롭힘이 아니라고 했잖아"
리더의 이 한 마디로 이 리더가 어떤 리더인지를 명확히 알 수 있었다. 이번 사건이 법률상 직장 내 괴롭힘이 아니라 판단했지만 갈등의 발생에서 해당 리더가 자유로울 수 없음을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법에서 정한 기준에 위배되지 않았다고 해서 그러한 상황이 발생하게 만든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다. 하지만 해당 리더는 인사팀의 판단을 면죄부를 받은 것처럼 말하고 있었다.
우리는 종종 리더를 혼자 일하는 사람이 아니라고 말한다. 리더는 다른 사람들이 일을 하게 만드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자신 이외에 다른 사람의 말과 행동을 이끌어내는 힘, 우리는 이를 영향력이라 부른다. 영향력은 리더 혼자만으로 발생하지 않는다. 영향력이 발생한다는 건 상호작용이 있음을 전제한다. 그 상호작용의 결과가 부정적이라면 그 상호작용에 관여한 주체들은 모두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잡OO닛이라는 사이트에서 본 어느 기업에 대한 평가글이 생각난다. 그 평가글은 회사도, 상품도, 사람들도 다 좋은데 리더 하나가 기업을 망치고 있다는 내용을 담고 있었는데, 그 평가글에 달린 기업담당자의 덧글이 인상적이었다.
"이제는 가버린 그, 더 이상 오해하지 말길"
언젠가 그 기업에 대해 이와 같은 말을 들을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