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 상대평가의 피해자(?)가 되다

by Opellie
어느 인사담당자의 경험은 그대로 두면 그냥 한 사람의 경험일 뿐이지만, 그 경험이 공유되면 다른 경험을 만들어가는 재료가 될 수 있음을 생각합니다. 기존의 글들보다는 조금 더 주관적인 인사담당자 Opellie의 경험을 소개합니다. 기억의 조각에 크고 작은 살을 붙였기에 기본적으로 브런치북 '인사담당자 Opellie'는 실제 인물과 같을 수도, 다를 수도 있습니다.

어느 인사담당자의 시간을 기록합니다.


"Opellie, 잠깐 볼까"


부장님 호출에 회의실로 향했다.


"이번 인사평가 결과 말이야"


인사, 특히 평가담당자로서 입장은 심리적으로 많이 힘든 역할이기도 하다. 누구보다 먼저 자신의 인사평가결과를 알게 되는 자리이고 그 결과가 좋지 않을 경우 속상함이라는 감정에도 불구하고 결과를 눈으로 마주하며 작업을 해야 한다. 감정은 감정이고 일은 일이라지만 우리가 기계가 아닌 이상 칼로 무 자르듯 정확하게 구분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네 결과 지난 번 면담에서 말씀하셨습니다"


"응, 그래"


"그거 조정이 필요할 것 같다"


"네?"


부장님도 지금 상황이 다소 이상하다는 걸 알고 계신 듯 했다. 어찌되었든 절차에 따라 평가를 진행했고 개인별로 결과 피드백도 다 된 상태에서 조정이라는 절차에 없는 말을 부장님은 꺼내고 있었다.


"Opellie, 너도 알겠지만 C대리가 올해 승진대상자이잖아"


평가보상업무를 해온 나에게 이 한 문장이 주는 의미는 명확했다. 기업 규정상 승진 대상자의 최근 3개년 평가등급 평균이 일정 등급에 미치지 못할 경우 승진이 안되도록 설계되어 있었고, C대리가 이번에 받은 등급은 그를 승진시키는 데 걸림돌이 되어 있었다.


회사는 상대평가를 하고 있었다. 익히 아는 바와 같이 상대평가는 등급제, 서열화를 기반으로 하며 등급별 인원비율을 정하여 등급별 인원 수를 제한하고 있었다. 낮은 등급을 받은 C대리의 등급을 올리려면 다른 누군가의 등급을 낮춰야 했다.


당시만 해도 회사 내에서는 소위 말하는 '승진자 밀어주기' 관행이 있었다. 올해 승진 대상자에게 좋은 평가 등급을 주는 것을 말한다. 그리고 지금 나는 그 '승진자 밀어주기' 관행의 피해자가 되고 있었다.


사실 인사팀 자체는 상대평가 적용이 어려운 상황이었다. 무엇보다 인원이 적었다. 3명이 전부였고 그나마 각자 메인으로 담당하는 역할이 달랐다. 하지만 윗선에서는 현장상황에 관계없이 숫자로 보이는 비율을 맞출 것을 요구하고 있었다.


인사평가 담당자로서 내 경험 속에는 등급제, 서열화를 핵심요소로 하는 상대평가제도에 대한 경험이 많다. 처음 평가제도를 만났을 때 그렇게 하는 거라고 배웠고 평가결과에 대해 제기된 이의신청에 절차상 문제가 없음을 근거로 정당성을 주장하기도 했다.


시간이 흐른 지금 나는 기존의 경험을 기반으로 해왔던 것들을 하면서 하지 않았던 걸 해보려 하고 있다. 등급이라는 도구를 활용하지만 판단 대신 진단의 개념을 도입하고 단순히 등급별 비율로 인원을 구분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 구성원이 일을 하는 과정과 그 결과 데이터를 기반으로 등급을 만들어가는 시도를 하고 있다. 이런 이야기에 누군가는 좋은 이야기이지만 현실적이지 않은 이야기라고 말할 지도 모른다. 그건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경험의 울타리를 벗어나는 일이니까. 하지만 여기에서 한 가지 짚고가야 할 점이 있다. 단순히 이상적이라고 말하는 누군가도, 실제 변화가 가능하다고 말하는 나도 서로 말은 다르지만 그 다름의 근거는 같다는 점이다. 누군가는 경험을 근거로 안된다고 말하지만 지금 나는 경험을 근거로 가능하다고 말한다.


제도는 불완전하다. 그 제도를 만드는 이가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제도는 계속 보완되어야 한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보완을 할 수 있는 것도 사람이다. 경험하고 불완전함을 확인하고 현장에 맞게 개선해가는 과정 말이다.


인사평가담당자로서 동시에 인사평가제도를 적용받는 구성원으로서 내 경험들은 오늘날 내가 이야기하는 조금은 달라 보이는 성과관리와 성과평가의 기반을 이루고 있다. 내가 해야 할 일은 10년 전에 인사평가담당자로서 경험을 현재에 그대로 Ctrl+C & V 하는 것이 아니라 더 나은, 그래서 현장에 보다 적합한 형태로 제도를 개선해가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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