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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pellie May 01. 2018

보고서를 쓴다는 것
이야기를 한다는 것

ppt보고서는 주제를 '요약하는 과정의 연습'의 측면에서 좋은 도구이다.

첫 직장에서의 보고서는 한글SW로 만드는 기안문서였습니다. 이미 과거의 시간에 의해 그 형식이 정해져 있었고 정해진 칸에 넣을 숫자들을 만들어 넣는 것이 주된 방식이라 할 수 있습니다. 능동성이 결여되어 있고 수동적인 채움 수준인 까닭에 보고서라고 말할 수도 있을까 싶기도 하지만 경영진에게 보고하기 위한 문서라는 점에서 가장 초보적인 단계의 보고서가 아니었을까 라는 생각을 합니다.


그로부터 3년 가량이 지나 이직을 했을 때는 일종의 문화적 충격(?)이 있었습니다. 소위 말하는 ppt의 one page proposal의 형식을 작성해야 하는데 온전히 만들어져 있는 양식에 숫자만 채워 넣으면 되었던 기존의 경험과는 상당히 많이 달랐던 까닭입니다. 지금도 그 당시 만들었던 문서들 중 일부를 가지고 있지만 지난 일이기에 웃으며 볼 수 있지만 어쨌거나 왜 이렇게 만들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당황스러운 문서를 만들었었지요. 그리고 이제는 여전히 잘 만든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대략적인 흉내는 낼 수 있는 정도가 되었다는 생각을 합니다. 서당 개 삼 년이면 풍월을 읇는다는 데 ppt로 보고서를 써온 시간이 근 10년은 된 까닭입니다.


얼마 전부터 같이 일하기 시작한 친구에게 ppt로 보고서를 작성하도록 일종의 강제(?)를 하고 있습니다. 어찌 보면 이 친구도 10여 년 전 제가 ppt보고서를 처음 만났을 때의 느낌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사실은 좀 당황스러울 겁니다. 경영진이 시킨 것도 아닌데 사수라는 아이가 갑자기 ppt로 만들라고 하니 말이죠. 일면 저에게 익숙한 방식을 그 친구에게 강요하는 것으로 비춰질지도 모르겠습니다. 개인적으로 ppt로 보고서를 만들었을 때 설명하기도 편하고 설명을 하기 위해 필요한 대상에 대한 온전한 이해를 돕는다는 점에서 ppt로 만드는 보고서에 좋은 감정을 가지고 있기도 합니다.


ppt보고서를 작성하면서 얻게 된 가장 큰 이점 중 하나는 one page로 요약하는 과정에서 대상에 대해 보다 깊게 이해할 수 있게 해주고 자신만의 논리로 설명을 하는 순서를 맞춰 보고서를 작성할 수 있다는 점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ppt보고서를 한 번도 써 본 적 없는 친구에게 사수로서 ppt를 사용하도록 강제하는 가장 큰 이유이기도 합니다. 'one page로 요약하는 과정의 연습'이라고 할까요. 그 과정의 반복이 '사고'로서 익숙해지면 ppt는 굳이 사용하지 않아도 될 겁니다. 물론 그 방법에 익숙해지면 익숙해진 방법에서 벗어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겠지만요. - 참고로 저는 요즘 마인드맵을 조금씩 사용해보기 시작하고 있습니다.



보고서를 작성한다는 것도 결국 누군가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전달하는 것과 같습니다. 다만 그 이야기의 주제가 정해져 있고 해당 주제에 대한 내 자신의 주장을 전개해야 하며, 그러한 주장을 뒷받침할 수 있는 근거와 그 주장대로 진행했을 때의 결과물이 함께 포함되어 있어야 한다는 점에서 다소 차이가 있을 뿐입니다. 특히 HR에 있어 보고서는 그 보고서에 담긴 데이터와 예측결과가 조직 전체에 적용되는 경우가 많다는 점에서 우리가 보고서에 담아 이야기하고자 하는 이야기 story에는 명확한 기준과 진정성이 담겨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누군가와 이야기를 할 때 그 사람이 우리를 대하는 태도, 가식적인지 진심인지 등에 대해 느끼는 것처럼 보고서도 이와 동일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모 기업에서 ppt보고서를 작성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습니다. 일부에서는 그러한 발표를 환영하고 있지만 한 편으로는 경영진이 ppt보고서가 가지는 외형적 화려함에 휘둘려 이야기가 왜곡될 가능성에서 스스로 벗어나지 못함을 인정하는 것으로도 해석해볼 수 있습니다. 어떤 의도이건 이러한 ppt의 배제도 현재의 시점에서는 제법 좋은 방법일 수 있습니다. 어릴 적 온라인 게임에 빠져 있을 때 제 스스로 PC방으로 가는 저를 제어할 수 없다고 판단했을 때 다 때려치고 지방으로 내려가 근 두 달 정도를 스스로 근신을 했던 방식이라고 할까요. 


어쨌든 '요약하는 과정의 연습'이라는 관점에서 개인적으로 ppt는 좋은 보고서 작성 도구라 생각합니다. 아무것도 없는 하얀 백지에 글자를 채워넣는 과정에서 단순히 글자를 나열하는 데 그치지 않고 구도와 배열을 맞춤으로서 이야기가 더 잘 전달되도록 만들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다만 이러한 ppt보고서가 갈수록 화려해지면서 그 내용보다 외형에 더 휘둘리는 우리들의 모습은 경계할 필요가 있을 겁니다. 우리가 이야기를 보다 효율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만든 도구로서 보고서가 그 외형 자체가 하나의 목적이 되어 버리는 상황입니다.

보고서란 상대방에게 우리 자신의 생각이 포함된 이야기를 전달하는 도구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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