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이는 저를 보며 '일을 벌인다'라고 말을 합니다. 그리고 저는 '일을 합니다'라고 말을 하죠. 바라보는 대상과 행동은 동일하지만 그 대상을 이해하는 방식이 다른 까닭이겠죠. 수년 전에 어느 개발자 분과 산책을 하면서 경력을 가진 상급자로서 우리들에 대해 이야기를 한 적이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생각의 방향이 비슷한 부분들이 많았던 분이라서였을까요. 일정 경력을 가진 우리들은 우리가 해왔던 일들을 그대로 하기 위해 노력하기보다는 우리가 했던 일들을 우리보다 어린 친구들에게 주고 우리는 새로운 일을 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했었죠. 여기에서 새로운 일이란 전혀 다른 분야에서의 일이 아닌 우리가 하는 일의 분야에서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일을 하면 계속 일이 많아집니다. 일이 많아지지만 기업이라는 곳이 그렇게 쉽게 인력을 주는 곳은 아니므로 기존에 해오던 일들을 정리하는 일 역시 계속해야 합니다. PC도 계속 '공간을 확보'해주는 일이 필요하듯이 일도 새로운 활동들이 들어올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주는 것이 필요합니다. 따라서 일이란 결국 기존의 일을 정리하는 일과 새로운 일을 만들어가는 일의 두 가지로 이야기를 해볼 수 있을 겁니다.
지나온 시간에 종종 마주했던 건 기존의 일을 정리하는 것도, 새로운 일을 만드는 것도 아닌 기존의 일을 포장하거나 부풀리는 일이었습니다. 무언가 스스로가 일을 많이 하고 있음을 어필해야 한다는 논리라고 할까요. 이 논리에는 기존의 일을 정리하거나 새로운 일을 만드는 것 대신 우리가 경험해서 이미 알고 있는 것을 지키고자 하는 의도가 담겨 있지요. 변화라는 측면에서 보면 변화에 맞추는 대신 변화를 거부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익숙함에 의한 편함에 좀 더 쉽게 이끌리는 본성(?)이라고 할까요.
일을 정리한다는 것
일을 정리한다는 것을 우리는 효율화라는 말로 표현합니다. 그리고 무언가 체계적인 것처럼 보이는 프로세스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을 하죠. 프로세스를 만들어서 보고를 하고 보고서에 담긴 프로세스를 보면서 우리는 효율성을 확보했다고 말을 합니다. 그리고 저는 그러한 관점의 효율성을 그리 즐기지 못합니다. 제 관점에서 일을 정리한다는 건 다양한 관점으로 일의 프로세스를 바라보는 것을 의미합니다. 불량품을 골라내기 위해 많은 경험을 가진 분들이 모여 컨설팅을 하고 있는데 신입직원이 선풍기를 돌려서 불량품을 골라내고 있는 것처럼 말이죠. 이를 위해 제가 알고 있고 경험했던 일의 방식을 다른 이들에게 공유하고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 과정을 진행합니다. 다만 한 가지 조건은 있습니다. 기업이라는 곳에서 일정한 시간과 리소스로 구체적 결과물을 만들어야 하므로 그 결과물을 미리 고정해놓는 점입니다. 『서울에서 부산을 가야 한다.』는 문장에서 '부산'을 고정해놓고 예전에 나는 A라는 방식으로 갔었는데 좋은 점과 나쁜 점이 뭐였는지 이야기하고 부산을 가는 다른 방법도 같이 생각해보자 라는 이야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정리하면 일을 정리한다는 건 프로세스를 만들거나 무조건 바꿔야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일을 다르게 바라보고 생각하는 과정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일을 만든다는 것
일을 만든다는 것을 우리는 창의성, 아이디어 등으로 표현합니다. 무언가 말 그대로 새로운 것을 만들어야 한다고 하죠. 개인적으로 오늘날 기존에 없던 완전히 새로운 것을 만든다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대신 기존에 우리가 알고 있었지만 여러 이유로 하지 못했거나 하지 않았던 시도들을 해보는 것을 의미한다고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바로 앞의 글에서 소개드렸던 『AI2045 인공지능 미래보고서』에서 이세돌 님의 인터뷰 기사의 다음 구절과 그 맥을 같이 합니다.
알파고는 인간이 생각하지 못한 수를 두는 것이 아닙니다. 인간이 생각했지만 두지 않는 수를 둡니다. p62
일을 만들어가기 위해 우리는 우리가 해왔던 경험에서 부족했던 부분들, 우리가 경험하면서 불합리하다고 느꼈던 부분들을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10여 년 전에 '우리 회사에서는 안돼'라는 말을 들었던 우리들이 10여 년이 지나서 '우리 회사에서는 안돼'라는 말을 다른 누군가에게 하고 있지 않은가? 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시간이 흘렀고 기술과 사람들의 인식이 변했고 변하고 있다면 10여 년 전에 하지 못했던 이유들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을 수도 있음을 스스로 인지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낯선 - 누군가에게는 이상한 - HR을 한다는 이야기를 가끔 듣습니다. 기존과 다른 HR을 하기 위한 인위적인 노력을 하는 것이 아니라 경험하면서 느껴왔던 것들을 14년 차 HR-er가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하고자 노력하다 보니 그런 것 아닐까 싶습니다. 군대에서 갓 일병을 달았을 때 당시 전투화를 닦던 우리들을 갑자기 차려 자세를 하고 정강이를 까였던 경험이 있습니다. 그때도 지금도 왜 맞았는지는 모릅니다. 다만 제가 상급자가 되어서 그렇게 아무 이유없이 혹은 이유에 대한 이야기도 없이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는 일을 하지 않으면 조직은 느릴 수는 있지만 변화라는 걸 조금씩은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일을 벌인다가 아니라 일을 한다가 되어야 하는 이유라 말하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