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펙트 데이즈] 완벽함에 대한 시시한 고찰

영화 [퍼펙트 데이즈]를 보고 든 생각을 끄적이다

by 창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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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의 제목이라함은 그 속에 담겨 있는 이야기가 어떠한지를 넌지시 알려 주는 축약된 설명서라고 볼 수 있다. 본작은 주인공 히라야마의 이야기에 '완벽한(perfect)'이라는 형용사를 과감히 부여한다. 공중화장실 청소부로서 반복되는 삶을 완벽하다고 표현할 수 있을까. 이것은 직업의 귀천에 관한 것이 아니라, 전체적인 삶의 본질적인 성질에 관한 것이다. 본작 속 히라야마가 사는 인생의 기저는 반복성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저 자신의 집에서 출발해 자판기 캔 커피를 마시고, 이윽고 도쿄의 어느 공중화장실에서 청소를, 그리고 또 다른 공중화장실에서 청소를, 그리고 또 다른 공중화장실에서 청소를 한 후 자신의 집에 종착하는 하루의 연속이다. 심지어 그 사이 사이 청소를 하지 않는 시간들을 메워 주는 올드팝, 책들, 분재들, 그리고 필름 카메라마저도 반복된다. 물론 그 속에는 예기치 못한 세세한 사건들이 발생하지만, 그것들이 그의 인생의 반복성을 뒤흔들 만한 파급력을 지니고 있지는 않다. 결국, 그의 삶은 고리타분하게 느껴질 수도 있는 일상의 구조에 조금이나마 균열을 내 줄 색다르고도 자극적인 경험들이 들어설 자리조차 없게끔 조직되어 있다. 이러한 단조롭고도 제한된 인생을 완벽하다고 할 수 있냐는 것이다.


아무래도 본작의 제목이 왜 히라야마의 일상을 완벽하다고 지칭한 이유는 단조로움을 만끽하는 그의 태도에 있다고 본다. 그는 자신의 반복되는 나날들을 세심하고도 정성스레 체험한다. 이른 아침, 차에 올라타기 전에 자판기 캔커피를 한 모금 음미하고, 카세트에서 넘쳐 나오는 올드팝의 선율을 즐긴다. 이후 공중화장실을 깨끗이 만드는 데에 몰두를 하며, 이따금씩 그 주위를 오고 가는 사람들을 관망해 본다. 그리고 휴식 시간에는 필름 카메라로 나뭇잎들의 고요한 생동감을 포착하고,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무음으로 속삭이는 책 속의 이야기에 집중한다. 그 다음 날, 그는 다시 그것들을 철저히 맛을 본다. 사람들에겐 아무리 먹어도 질리지 않는 음식이 하나쯤은 있기를 마련이다. 히라야마에겐 어쩌면 이 단조롭고 반복되는 인생이 그것이 아닌가 싶다. 그런고로 그는 이 인생의 구조에 균열을 낼 이색적인 경험들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이미 익숙하고도 정겨운 단조로움의 맛으로도 충분하기에. 이러한 맥락으로 히라야마의 일상은 완벽함에 어울린다고 볼 수 있다. 히라야마의 '완벽한 날들'은 예외성이 없는 단순한 반복성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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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저마다 이상적인 삶을 마음 한구석에 품고 있다. 그것이 호화롭고 역동적이든 아님 소박하고 평화롭든, 그 이상적인 삶을 향유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완벽한 날들'이라고 여길 때가 있다. 그리고 간혹 자신이 지금 처해 있는 현실이 그 '완벽한 날들'과 극명한 차이가 있다는 냉혹한 사실에 사무치게 괴로워할 때도 있기 를 마련이다. 그러나 히라야마가 취하는 삶의 태도는 이런 우리에게 가르침을 주는 듯하다. 막연히 소망하는 '완벽한 날들'과 현실 간의 아득한 괴리감을 한탄하는 것보다는, 지금 이 순간을 '완벽한 날들'로 여겨 보는 연습을 해야겠다는 마음이 든다.


우리말에 사금파리와 이징가미라는 단어가 있다. 사금파리는 사기그릇의 깨어진 조각을, 이징가미는 질그릇의 깨어진 조각을 의미한다. 왜 우리 조상들은 완벽한 형태의 그릇이 깨어져서 생긴 한낱 조각에 이러한 특별한 이름들을 붙였을까. 어쩌면 얼핏 완벽해 보이지 않는 그 조각에서도 그만의 완벽함이 있기 때문에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 우리의 현실이 비록 하찮은 조각 덩어리처럼 보여도, 어쩌면 독특한 가치가 있는 사금파리나 이징가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니 우리에게 놓여진 지금의 삶에도 나름대로의 달큼한 맛이 있으리라 믿는다. 어쩌면 나도 늘 되풀이해 오던 일상 생활을 어김없이 겪었음에도 하루의 끝자락에서 완벽한 날이었다며 잔잔한 미소를 지을 수 있는 히라야마의 태도를 잠시, 혹은 꽤 오래 빌려 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