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극장판 체인소 맨: 레제편]을 보고 든 생각을 끄적이다
내가 아는 여자들은 전부 날 죽이려 하더라고
주인공 덴지가 레제에게 건넨 이 말이 체인소 맨 작품 전체의 측면에서 그의 여자 관계를 가장 명확히 시사한다고 볼 수 있다. 비단 본작뿐만 아니라, 전작인 TV 애니메이션 시리즈에서도, 그리고 [자객편]이라는 이름으로 나올 그 뒷이야기에서도, 심지어 현재 연재 중인 원작 만화의 2부에서마저도 덴지의 이 발언은 꽤나 통찰력이 있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즉, 체인소 맨이라는 이야기가 시작되고 나서 그가 접근하고자 하거나 그에게 접근하는 모든 여자들은 하나같이 위험할 따름이다. 여기서 '위험하다'는 표현은 대단히 매력적이라는 은유적인 의미도 약간은 내포해 있지만, 무엇보다도 주인공의 심리를 뒤흔들고 끝내 생명을 앗아 갈 수 있을 만큼 문자 그대로 위험하다는 의미가 강하다. 거기에 더해 덴지는 어떠한 방식이든 간에 이러한 여자들과 접점을 맺는 데에 한결같이 거리낌이 없다. 그는 여자와 얽힐 수 있는 기회가 찾아온다면, 그로 인해 스스로가 위험에 노출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기꺼이 뛰어들고야 만다. 그렇게 그는 위험한 여자들에게 몇 번 데었음에도, 그리고 이러한 사실을 인지하고 있음에도, 여전히 여자와의 관계 형성을 꾸준히 갈망하는 사람으로 존재한다.
덴지의 일관성은 단순히 성욕에만 기인한 것이 아니라고 본다. 물론 대부분의 그의 언행은 자신의 본능적인 욕구 해소라는 목적의식에 따라 발현한다. 체인소 맨이라는 이야기의 처음부터 그는 원초적인 욕망에 더할 나위 없을 정도로 충실한 사람이며, 이를 외면하거나 억제하고자 하는 스토아주의적인 노력을 할 생각은 일절 하지를 않는다. 그러나 그의 이러한 태도가 위험한 여자에게 이끌리는 유일무이한 원인은 아닐 것이다. 덴지는 마땅히 받아야 했을 사랑을 그저 뒤늦게나마 받고 싶은 것뿐이다.
나는 사람은 인생을 살면서 세 가지의 사랑 중 적어도 두 가지 정도는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나는 부모로부터의 사랑, 다른 하나는 친구로부터의 사랑, 나머지 하나는 연인으로부터의 사랑이다. 사람은 어렸을 때부터 이 세 가지의 사랑 중 두 가지라도 소복이, 그리고 지속적으로 섭취를 한다면, 시간이 흘러 그것들이 결국 단단한 콘크리트가 되어서 쉬이 흔들리고 무너지지 않게 될 안정적인 심리적 기반을 형성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정신과학 및 심리학에 대한 전문 지식을 바탕으로 내세운 견해가 아니라, 단지 추상적이고도 관념적인 사견일 뿐이니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말기를 바란다. 어쨌든 누구든지 이 세 가지의 사랑을 모두 받을 권리가 모름지기 있으며, 그중 최소한 두 가지라도 넉넉히 받아 두어야 그것들이 훗날 삶을 살아가는 데에 필요한 정신적 자양분이 될 것이라고 여긴다.
본작을 보아도, 심지어 원작 전체를 톺아보아도 덴지는 이 세 가지 모두가 결여되어 있다는 점을 알 수가 있다. 그는 애시당초 부모로부터의 사랑을 제대로 받지를 못했다. 어머니는 진작 세상을 떠났으며, 아버지는 그에게 사랑 대신 빚만 한껏 남긴 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부모의 이른 부재는 그를 본의 아니게 채권자가 된 야쿠자에게 변제하기만 해야 하는 고달픈 삶으로 내몰았다. 이로 인해 덴지는 친구로부터의 사랑도 받을 수가 없었다. 사람들과 친구 관계를 맺을 수 있는 기회의 장인 학교를 다닌다는 것은 그에게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사치였고, 그를 에워싼 주변 사람들이라고는 오직 야쿠자 아저씨들뿐이었다. 그렇기에 당연히 연인으로부터의 사랑마저도 받지 못할 수밖에. 설령 여자와 사회적 교류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더라도 제대로 된 인간 관계를 맺음으로써 배울 수 있는 도덕 관념이 현저히 부족한 그가 과연 상대방에게 호감을 얻는 것이 통상적으로는 가능하겠는가.
덴지는 어렸을 적부터 으레 받았어야 할 부모의 사랑과 친구의 사랑을 받을 수 없었다. 게다가 연인의 사랑조차 받을 수가 없었다. 근본적으로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죽을 때부터 오로지 혈혈단신으로만 살아갈 수 없으므로 다른 사람으로부터 사랑을 받아야 한다. 그런고로 사랑을 조금이라도 받지 못한 자는 마음 한구석에 그동안 축적된 묘한 외로움을 희석할 만큼 사랑을 아낌없이 줄 사람을 갈구하는 법이다, 그 상대방이 어떻든 간에. 덴지가 어째서 위험한 여자들과 얽히려 드는지는 이 점에서 알 수 있다. 그는 단지 진작에 받았어야 할 사랑을 지금이나마 받고 싶을 뿐이다. 부모의 사랑, 친구의 사랑, 그리고 연인의 사랑에 대한 커다란 결여를 메워 줄 수 있는 어머니이자 친구이자 여자 친구인 사람이 필요한 것이다. 많은 사람들의 관심 속에서 범람하는 사랑을 받고 싶은 것이 아니다. 그득하고도 지속적인 단 한 사람의 사랑으로 족하다는 것이다. 적어도 나의 눈에는 덴지의 언행 속에서 이러한 외로운 외침이 보였다.
나의 주변에서도 덴지 같은 사람을 보았거나 들었던 적이 간혹 있다. 사랑이 부족함으로써 생기는 외로움을 달래 보기 위해 아무나 만나는 버릇을 들였다가 끝내 큰코 다쳤다는 이야기를 심심치 않게 접했다. 허나 인간 관계를 형성하는 데에 앞서 사랑의 결여 그 자체에 초점을 두는 것보다는 앞으로 받을 사랑의 형태에 조금 더 초점을 두는 것이 어떨까 싶다. 단순히 사랑이 부족해서 어떠한 사랑이든 일단 채워 주기만 하는 사람이면 다 된다는 주먹구구식보다는 자신에게 알맞는 사랑을 줄 알맞은 사람을 찾는 것이 더욱 나으리라. 흔히 우리는 마음을 공간처럼 표현할 때가 종종 있다. 마음이라는 것은 사랑이든 추억이든 무엇이든 담는 그릇과 같다는 셈이다. 우리 모두에게는 저마다의 예쁜 그릇이 있기를 마련이다. 예쁜 그릇에 쓰레기를 담다가는 도리어 그릇만 더러워질 뿐이다. 이왕이면 예쁜 그릇에 예쁘고 맛있는 음식을 담는 것이 더 좋지 않겠는가. 이렇듯 우리의 그릇을 한결 예쁘게 해 줄 예쁜 사랑을 만날 수 있기를 살포시 소망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