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 인간은 AI와의 낭만을 꿈꾸는가

영화 [그녀]를 보고 든 생각을 끄적이다

by 창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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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작이 막 개봉되었던 2013년과 2014년 그 언저리에는 아직 AI라는 것이 막연한 존재였기에 인간과 AI 간의 유대감이라는 소재는 이질적이고도 독창적이라고 여겨졌다. 하지만 이 글이 쓰이고 있는 지금 2026년은 더 이상 이 둘의 관계를 특이하게 보지 않는 시기다. 이미 일상다반사에 AI의 영향력이 진득이 관여하고 있고, 이제는 사회성, 신뢰성, 창작성, 지성 및 교양 등과 같이 인간의 인문사회학적 속성에조차도 깊이 스며들고 있는 추세다.


[그녀]는 편지 대필 작가 테오도르(혹은 시어도어)가 인공지능 사만다와 대화를 나눔으로써 사만다에게 사랑을 느끼게 되는 이야기다. 테오도르는 자신의 일을 함으로써 인간 관계에 대한 허무주의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다. 어떤 내용을 내포하고 있든 간에, 편지라는 것은 인간 관계를 전제로 형성되는 매개체다. 그렇기에 사람과 사람 사이에 날것의 감정과 본성이 오고 가기를 마련이다. 물론 훈훈하고 어여쁜 마음이 있겠지만은, 표독하고 멸시하는 마음도 있을 것이다. 편지를 대필하면서 그것들을 직접 마주할 수밖에 없는 테오도르가 누군가와 관계를 쌓는 것에 대한 현실을 니힐리즘의 입장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납득이 될 법하다.


이러한 맥락에서 테오도르가 AI인 사만다와 대화를 나눔으로써 사만다에게 사랑을 느끼게 되는 전개는 어쩌면 당연할지도 모른다. 편지를 대필함으로써 간접적으로 경험했던 불쾌한 요소들은 사만다와 관계를 구축하는 과정 속에선 수반하지 않는다. 사만다는 테오도르의 말을 정성스레 귀를 기울여 주고, 테오도르의 모든 점을 이해해 준다. 있는 그대로의 나 자신을 따스하게 포용하려는 자에게 호감을 느끼지 않을 자는 매우 드물 것이다. 언젠가 ChatGPT에게 연애 감정을 가지게 된 사람을 다룬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사람들로부터 상처를 많이 받아 그간 마음의 문을 닫고 살아 왔는데, AI의 편견 없고 다정다감한 태도가 큰 치유가 되었다는 것이 그 사람의 고백이었다. 영화 속의 공상 과학적인 낭만이 현실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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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 어울리는 것에 대한 난이도는 저마다 달리 체감한다고 본다. 누군가에겐 쉬운 작업이기도 하지만, 누군가에겐 엄청난 난제로 여겨지기도 한다. 그러나 인간과의 관계를 쌓는 것은 1+1=2처럼 간단하고 명확한 일이 아니라는 점은 너 나 할 것 없이 수긍할 것이다. 하늘이 맺어 준 운명의 상대라고 불릴 만한 사람과 조우하지 않는 이상, 그것은 순수한 공감과 동질감만이 연거푸 중첩되어 물 흐르듯이 발전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자주 조바심이 나고, 망상을 하고, 오해를 하고, 질투를 하고, 다투고, 상처를 받는다. 하지만 이러한 곡절에 맞닥뜨릴 때마다 부드럽고 재치 있게 해소하는 수완을 부리는 능숙한 사람이 있다. 반면 고뇌와 속앓이를 반복하다가 결국 그 무게에 짓눌려 자발적인 고립을 선택해 버리는 서투른 사람도 있다.


사람은 이기심을 바탕으로 관계를 쌓는다. 상대가 자신이 살아오면서 정립해 온 주관적인 기준에 벗어나 개인적인 감정을 해치게 한다면, 그 상대에게 쉽게 작별을 고하기를 마련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적어도 나는 가식 없이 참된 자신으로서 타인과 관계를 형성할 수가 없다. 있는 그대로의 나 자신이 상대의 사고방식과 가치관에 처음부터 온전히 부합할 가능성은 매우 드물기 때문이다. 물론 이러한 나의 비사교적인 결함마저 포용해 줄 수 있는 사람과 관계를 쌓을 기회가 찾아올 수도 있다. 다만 그런 사람을 만난다는 것은 복권에 당첨되는 것과 같은 희귀한 행운일 뿐이다. 게다가 자신의 결함을 이해해 줄 수 있는 사람과 관계를 형성하기를 조심스레 소망하는 것마저도 이기적인 공상이 아닐까 싶다.


이러한 점에서 사만다만큼 매력적인 대상은 아마 없을 것이다. 사람들과 관계를 쌓는 과정에 놓일 때마다 묘하게 상처와 스트레스를 끊임없이 받아 온 사람에게는 구세주 같은 존재다. 더 이상 누군가의 변덕에 지치지 않아도 된다. 더 이상 누군가가 무심코 가볍게 던진 말과 행동에 쓰라린 아픔을 느끼지 않아도 된다. 더 이상 인간 관계 속에서 나 자신만 찌질해지고 비굴해지고 있는 처지에 한탄할 필요는 없다. 있는 그대로의 나 자신을 오롯이 받아 주는 존재가 있다면, 그것만으로 족하리라. 우리는 AI와의 낭만을 꿈꾸는 사람들을 쉽사리 비난하거나 조롱할 수는 없을 테다. 어느 날, 사람에 데이게 되는 순간이 우리의 삶에 불쑥 찾아온다면, 사만다가 건네는 따뜻한 손길을 구태여 마다할 수 없을 것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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