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닥터 스트레인지러브] 확신은 위험을 부르기도 한다

영화 [닥터 스트레인지러브]를 보고 든 생각을 끄적이다

by 창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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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작의 이야기는 첨예한 냉전 시대에 미국 공군 소속 잭 D. 리퍼 장군의 어느 확고한 믿음으로부터 촉발된다. 그는 예전부터 성관계 중에 느껴지던 피로감과 공허감의 원인이 소련 측 공산주의자들의 음모 때문이라고 굳게 믿고 있었는데, 그의 주장에 따르면 그 음모는 바로 미국인들의 귀중한 체액(혹은 '신성한 혈통')을 오염시키고자 상수도에 불소를 첨가했다는 것. 이에 그는 자신의 조국을 위험에 빠뜨린 소련을 공격하고자 수소 폭탄을 장착한 B-52 폭격기를 멋대로 출격시킨다.


물론 이 애국주의자의 믿음은 망상에 불과하다. 이는 자신의 성적 기능 장애에 관한 원인이 자신의 신체에게 있으면 건장한 군인으로서의 존재 가치가 떨어지기 때문에 이에 대한 강력한 방어 기제일 수도 있다. 혹은 수돗물 불소 처리가 사람들의 신체 기능을 망가뜨린다는 유언비어와 반공산주의적 신념이 만연했던 당시 1960년대 미국의 풍조를 맹목적으로 추종한 것에 대한 결과일 수도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조금만 더 생각해 보면 자신의 지론이 어불성설이라는 것을 충분히 알아차릴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그것이 틀리지 않았음을 애시당초 확신을 가졌다는 것이다. 그렇게 그의 섣부른 믿음은 미국과 소련 간의 첨예한 냉전에 불을 질러 버렸고, 끝내 자신의 조국은 물론 전 세계를 위험에 빠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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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확신의 파급력을 과소평가하는 경향이 짙다. 물론 확신이라는 것이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기도 한다. 그러나 현 세태를 보면 확신은 오히려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쪽이 더욱 비일비재하다는 점에 더욱 수긍이 갈 것이다. 지금, 세계는 정말로 평온하지를 않다. 인터넷에 진열되어 있는 뉴스 기사들을 잠깐만 톺아보아도 혐오와 갈등은 하루하루 또 다른 혐오와 갈등을 잉태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 모든 혼돈은 공통적으로 자신이 지니고 있는 생각이 절대로 틀리지 않았다는 확신에 기인한다고 본다. 서로 굽히지 않는 확신과 확신이 거세게 마찰을 일으킬 때 혐오와 갈등이라는 스파크가 번쩍 일어나는 셈이다. 비단 시사의 영역에서뿐만이 아니다. 개인의 영역에서도 마찬가지다. 사람을 상대할 때든, 일을 할 때든, 자신의 생각이 옳다는 확신을 고수하다가 기어이 낭패를 본 경험담은 결코 낯선 이야기가 아니다. 누구나 한 번쯤 자신의 생각이 잘못되었다는 점을 내내 자각하지 못하다가 결국 오해와 다툼, 혹은 실패라는 씁쓸한 결과를 맛보았을 것이다.


생각은 폭탄과 같은 것이다. 폭탄은 뚫기 힘든 장애물을 쉽게 없애 준다는 특징으로 건설, 탐사, 구조 현장 등에서 유용하게 쓰이고 있다. 그러나 그 특징이 도리어 사람들의 목숨을 쉽게 앗아 가는 전쟁 무기로 남용되기도 한다. 즉, 폭탄은 양면성을 품고 있다. 그것은 상황에 따라 긍정적인 결과를 부를 수도, 부정적인 결과를 부를 수도 있다. 생각도 마찬가지다. 모든 생각이 애초에 본질적으로 틀린 것은 아니지만, 경우에 따라 적합할 수도 부적합할 수도 있다. 결국, 모든 생각은 틀릴 수도 있다는 잠재성을 지니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래서 나는 마음속 확신을 일단 경계해 보려는 버릇을 들고 있다. 나는 나의 생각이 어떻든, 그것을 말과 행동으로 발현하기 전에 혹여나 틀릴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의심을 찬찬히 해 보려고 노력한다. 섣부른 확신이 괜스레 나의 인생을 위험에 빠뜨릴 B-52 폭격기의 수소 폭탄이 되는 것만큼은 피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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