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리뷰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20세기 최고의 소설로 칭송받는다는데 한 10년 전인가 절반 읽다가 지루해서 접었다. 그러다가 10년 만에 다시 읽을 기회가 왔다. 첫 장을 펴자마자 내가 요즘 관심 있는 니체의 영원회귀 이야기로 시작되길래 앉은자리에서 3시간 만에 다 읽었다.
리뷰를 크게 세 가지 관점으로 할 수 있을 거 같은데 하나는 4명의 주인공들의 연애소설 관점, 다른 하나는 니체철학과의 관련성, 마지막은 공산주의 체코의 역사적 관점이다. 이 중에서 역사적 관점은 빼도록 하겠다. 공산주의 억압과 망한 이야기에는 개인적으로 더 이상 큰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1. 연애소설 관점
연애고자인 내가 보기엔 한마디로 그냥 ㅁㅊ넘들이다ㅋㅋ 운명이라는 둥 묘사하다가 바람은 또 오지게 피운다. 다른 리뷰를 좀 찾아보니 토마시와 사비나는 가벼운 연애를 테레자와 프란츠는 무거운 연애를 상징한다는데.. 걍 그놈이 그놈이다. 다만 각자 가진 결핍으로 상대방을 이상화해서 바라보고 결국 다른 현실을 마주하는 점은 인상 깊다.
토마시는 전형적인 회피형 인간인데 그중에서도 책임 없이 몸만을 섞는 바람둥이형이다.(원래 회피형 연애 특징이 극단적으로 모쏠 아니면 바람둥이다) 한마디로 그냥 겁쟁이다. 테레자와 동반수면하는 사이가 되면서 일말의 책임감을 기준으로 잡아보려 하지만 결국 바람피우는 습관은 못 고친다.
같은 가벼움을 추구하는 인간인 사비나는 모든 권위로부터 자유로워야 한다는 결핍을 가지고 있는데, 상대방인 프란츠를 배신해야 할 기준으로 삼아 자신의 자유로움을 증명하고 싶은 욕구에 빠져 있다.
이제 무거움을 상징하는 인간들을 살펴보자. 테레자는 가벼운 인간인 어머니 때문에 자신만은 사실 지식인, 진지한 사람과 어울릴 자격이 있다는 신분상승 욕구에 얽매어 있다.
겉보기에 모든 면에서 멀쩡해 보이는 프란츠는 과도한 책임감, 사회적 의무에 시달리고 있으며 자신이 바람피운다고 고백한 후 아내의 반응을 보면 자신만의 착각이었음을 알게 된다.
2. 니체철학의 관점
"뒤집어 생각해 보면 영원한 회귀가 주장하는 바는, 인생이란 한 번 사라지면 두 번 다시 돌아오지 않기 때문에 한낱 그림자 같은 것이고, 그래서 산다는 것에는 아무런 무게도 없고 우리는 처음부터 죽은 것과 다름없어서, 삶이 아무리 잔혹하고 아름답고 혹은 찬란하다 할지라도 그것조차도 무의미하다는 것이다."
니체의 영원회귀. 같은 사건이 영원히 반복된다는 개념. 니체는 고통이 영원히 반복된다고 하더라도 이를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는 긍정성을 아모르파티라고 비유했다. 쿤데라는 이를 조금 비틀어서 다시 극심한 허무주의에 빠지게 한다.
테레자처럼 여섯 번의 우연을 운명으로 믿는 이상주의자들은 무거움 속에서 고통받는다.
반면에 토마시나 사비나처럼 대놓고 가벼움을 추구하는 인간들에겐 삶은 우연의 연속이고, 그들은 로맨스 따위의 이상을 믿지 못하는 현실주의자들이다.
하지만 토마시도 깊은 내면에선 '그래야만 한다' 이런 구절에 의지하며 가벼움을 참을 수 없다.
결국에 토마시는 깨닫게 된다. "임무라니, 테레자, 그건 다 헛소리야. 누구에게도 임무란 없어." 완전한 허무주의를.(이 부분에서 불교의 제법무아가 떠올랐다)
배경지식 없이 쉽게 읽히는 작품은 아니다. 작가는 공산주의 독재라는 시대적 배경에서 미세하게 가벼움을 밀어주는 듯 하지만 인간존재의 본성상 가벼움 역시 참을 수 없다는 게 결론인 듯하다.(색즉시공 공즉시색의 경지에선 가벼움이 곧 무거움이요, 무거움이 다시 가벼움이겠지만 말이다)
인생은 작은 선택들의 무수한 연속이지만 인생이 한 번뿐이라면 우리는 선택을 하고서도 그것이 올바른 선택인지 절대로 알 수 없을 것이다. 인생에 무턱대고 던져진 인간이란.. 이 얼마나 나약한 존재인지..! 인간에 대한 연민이 느껴지는 작품이다.
"사람이 무엇을 희구해야만 하는가를 안다는 것은 절대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사람은 한 번밖에 살지 못하고 전생과 현생을 비교할 수도 없으며 현생과 비교하여 후생을 바로잡을 수도 없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