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직의 기로에 서다

by 뱅글이

일주일 정도 병가를 썼다. 약도 타서 먹었다. 약을 쉽게 권하진 않는다는데 검사 결과, 주관적 정신건강 지표보다 객관적 정신건강 지표가 더 심각하다고 했다. 쉽게 말하면, 스스로 생각하는 것보다 더 심하게 정신력이 소진되어 있다는 뜻이다.




2일 정도 약기운에 멍하게 시간이 흘러갔다. 갑자기 교장선생님이 면담을 요청하셨다. 교장선생님께 가감 없이 말씀드렸다. ’현재 저희 반은 정상적으로 수업을 진행하기 어려운 상태입니다.‘


교장선생님은 자신의 과거 경험을 진솔하게 말씀하시며, 학교에서 필요한 조치는 적극 협조하겠다고 하셨다. 동학년 선생님들도 내 상태를 보고 기운 내라며 격려했다.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심리상담사와 얘기하며 휴직을 고민했다. 5월 말이었지만, 1년이 아니라 1학기를 마칠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다. 마치 끝이 없는 터널을 통과하는 느낌이었다.



일주일 뒤 나는 다시 출근하기로 했다. 앞으로의 결과는 잊어버리고, 일단 담임으로서 할 수 있는 것들이 뭐가 있는지 학교 차원에서 할 수 있는 조치를 먼저 해보자, 이렇게 생각했다.


1. 특히 문제가 심한 아이들 3명의 보호자를 각각 학교에서 상담했다. 교감선생님 입회 하에 그동안 저지른 구체적인 문제행동 목록(학생 1명당 a4 3장 정도 분량)을 보여주며 아이의 미래를 위해 어떻게 협력할 수 있을지 얘기했다.


2. 몇몇 문제행동에 대해서는 학교차원에서 생활지도위원회를 열어 징계했다. 또한 학교폭력위원회도 열어서 문제를 공식적 절차로 넘겼다.


3. 상담이 필요한 아이는 위클래스로 인계했으며, 약물치료가 필요해 보이는 아이는 학교예산으로 심리검사를 받아보는 데에 보호자가 동의했다.


4. 교실 차원에서는 더 이상 문제행동을 하는 학생들 위주로 반 분위기를 형성하지 않고, 대다수 아이들 학습권 보호를 위해 수업에 집중했다.(여전히 방해하는 학생들이 있었지만, 절차에 맞게 분리조치 등으로 처리했다)




이상의 조치들로 반이 드라마틱하게 좋아지진 않았다. 하지만 오로지 담임교사의 책임과 능력에만 의존하던 기존의 방식보단 부담감이 덜하고, 실질적인 효과도 있었다.



내가 이번 학급을 맡으며 절실하게 깨달은 것은 아무리 능력이 뛰어난 담임교사가 와도 그는 개인일 뿐이며, 결국 소진된다는 것이다. 단순히 개인 탓을 할 게 아니라, 교사와 학생 모두를 위해 시스템이 필요하다.



복귀한 첫날, 아이들의 표정도 그리 밝지 않았다. 나를 걱정했든지 아니면 뭔가 불안했을 것 같다. 종종 2학기 때도 계속 담임선생님을 할 거냐고?! 묻는 아이들이 있었다. 처음엔 뭔 소린가 했는데 알고 보니 이 아이들은 5학년이 될 동안 단 한 번도 한 명의 담임이 1년을 마친 적이 없었다.

나는 숨기지 않고 솔직하게 말했다. “선생님이 최근 학교 일로 스트레스가 감당하기 어려워서 잠시 쉬며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다.”


나는 이러한 사실이 전혀 숨길 일이 아니며, 오히려 학생 및 보호자가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덮는다고 있었던 문제가 사라지진 않으니까 말이다.


이렇게 나는 다시 학교로 복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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