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Writing Choenghee Oct 16. 2023

후쿠오카에서 느끼는 설레는 기분

연애할 때처럼

 후쿠오카에서의 여행 이틀째 아침이 밝아왔다. 잠을 푹 자고 일어나서인지 어제보다 기분이 한결 가벼워졌고 오늘 하루가 기대되었다. 어제는 후쿠오카가 너무 답답한 나머지 남은 이틀 동안의 여행이 걱정스러울 정도였다. 장신인 나에게 도로도 자동차도 상점도 사람도 다 작게 느껴졌고 가는 곳마다 여유공간 없이 딱 1인에게만 허하는 크기의 공간에 딸을 안고 몸을 구겨 넣어야 하는 어려움이 그 이유였다.


 남편은 내가 씻고 나갈 준비를 편하게 할 수 있도록 딸을 데리고 산책을 나갔다. 해외로 여행을 와서 걱정 없이 나의 일신 치장에만 집중할 수 있는 그 시간이 짧았지만 충분히 달콤해서 오늘의 후쿠오카에서 있을 여행의 시간들이 답답함이 아니라 설렘으로 바뀌었다. 이처럼 단순한 존재란 말인가. 나란 인간이.


 산책하고 돌아온 남편과 딸. 나갈 준비를 다 마친 나는 남편이 전자레인지에 데워 온 딸의 유아식을 딸에게 먹이고 외출복으로 갈아입혔다. 기저귀, 간식 등 준비물도 챙기고. 남편은 그간 씻고 머리를 만진 후 옷을 입고 나갈 채비를 했다. 유아차에 딸을 태우고 호텔 메인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바다까지 건너온 해외에서 화장도 하고 머리도 만지고 깔끔한 옷을 입은 뒤 선선하게 부는 바람을 맞으며 남편과 딸과 함께 걸으니 이것만으로 충분히 여행이었다. 굳이 명소, 맛집, 쇼핑몰을 가지 않아도. 남편도 같은 기분이었는지 이렇게 말한다. 와이프야 화장도 하고 머리도 만지고 옷도 차려입고 같이 이렇게 나오니까 우리 연애할 때 생각난다. 나도 기분 좋음과 동시에 괜한 설렘이 있었는데 결혼 전 연애시절이 떠올라서였을까. 기분 좋은 설렘과 함께 후쿠오카에서의 이튿날 여행이 시작되었다.


-


스시잔마이 톈진점. 스시 모듬 세트 2개와 아사히 생맥주



 남편이 전날 밤 찾아둔 스시집이 있었다. 스시잔마이 톈진점. 늦게까지 자느라 아침을 못 먹은 우리는 점심시간이 되어 브런치로 그 스시집에서 식사를 하기로 결정했다. 모듬 스시 2개를 주문한 후 어젯밤 이치란라멘에서 마신 아사히 생맥주를 잊지 못해 여기서도 한 잔 주문하고 말았다. 이 시간에 술을 마시기는 내 인생 처음. 괜히 방탕한 느낌이 들었지만 여행을 왔기에 가능한 일이라 부끄러워하지 않고 당당히 한 잔 즐기기로 했다.


 아사히 생맥주는 어제보다 살짝 그 감흥이 덜해서 맥주 마시러 이치란라멘을 다시 가야 하나 싶을 정도로 어제의 그 맛을 잊지 못했다. 이제 술 얘기는 이쯤 하고 일본의 스시에 대해 얘기해 보자. 남편과 나 둘 다 첫 스시로 장어초밥을 골랐는데 입에 넣자마자 둘 다 흠칫 놀란 눈으로 역시 다르네라고 연신 말하고 또 말했다. 밥과 위에 올려진 생선이 절대 따로 노는 법이 없었다. 입 안에서 하나같이 잘 어울려 부드럽게 넘어가는 맛이 일품이었고 생 와사비 또한 은은하게 코끝을 찌르는 게 인상적이었다.


 맥주 한 잔과 함께 스시 한 세트를 다 먹은 후 톈진역 근처 쇼핑거리로 가기로 했다. 남편이 한국에서부터 그레이색 후드집업을 사고 싶어 했기 때문에. 마침 남편이 원하던 게 매장에 없고 주문을 해야 해서 곧 일본으로 떠날 우리는 일본에서 사기로 결정을 했었다. 슈프림, 챔피온, 나이키 등 수많은 브랜드를 돌아다녔지만 패션에서만큼은 까다로운 남편을 만족시키는 아이템이 없어 결국 아무것도 사지 못했다. 이후 호텔 근처 캐널시티를 돌아다녀도 남편 마음에 드는 후드집업은 없었다.


 딸에게 유아식을 먹일 겸 유아차에서 내려 걷는 시간도 줄 겸 호텔로 가기로 했다. 그런데 계획한 시간보다 어중간하게 시간이 남아 캐널시티 근처 후쿠커피를 가기로 했다. 후쿠오카 여행 관련 많은 블로그들에서 후쿠커피 푸딩이 참 맛있었다는 후기를 봤던지라 기대감이 솟구쳤다. 달콤한 디저트를 무엇보다 좋아하기도 하고.



캐널시티 근처 후쿠커피. 남편과 나의 바닐라 라테, 카페라테와 아이스크림 푸딩



 블로그 후기도 다 믿으면 안 되는 것인가. 아니 부정적으로 생각하지 말자. 개인적인 취향은 다 다를 수 있다. 개인적으로 나의 입맛에는 아이스크림 푸딩임에도 썩 맛있지 않았다. 아이스크림 덕분에 계란향이 강한 푸딩을 먹을 수 있었다. 밤에 편의점에서 사 먹은 푸딩이 더 저렴했지만 훨씬 더 맛있었… 이 또한 개인의 주관적인 후기이겠다.





 딸에게 먹이려고 한국에서 싸 온 유아식을 전자레인지로 데워 먹인 후 양가 부모님들께 드릴 선물을 사러 캐널시티로 향했다. 우양산과 하카타 도리몬을 각각 두 개씩 샀다. 그리곤 낮에 톈진 역 근처 쇼핑을 하러 돌아다닌 터라 다리가 피곤해 벤치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그런데 분수쇼가 시작된다는 안내가 흘러나왔다. 분수 가까이에 다가가 딸과 남편과 쇼가 시작되기를 기다렸다. 음악과 함께 물이 위로 솟구치는데 딸이 우와했다. 갑작스러운 소리와 물줄기로 놀라움을 숨기지 못했을 것이다. 딸과 함께 할 많은 새로운 것들이 기대되는 순간이었다.


-


하카타 토리쿠라에서 주문한 오뎅국과 닭꼬치 모듬



 남편은 일본, 아니 특히 일본 요리에 관심이 많다. 대식가가 아니라 작게 소소하게 차려놓고 술 한 잔을 곁들이는 그 분위기와 소박함에서 오는 만족감을 좋아해서다. 그런 분위기를 즐기러 하카타 쪽을 걸으며 딸과 함께 들어갈 만한 식당을 찾았다. 그래서 들어간 곳이 하카타 토리쿠라.


 남편은 오뎅국 하나 주문해 두고 천천히 술 한 잔씩 하며 잔잔하게 대화하는 상황을 상상했으리라. 한 살짜리 딸은 가만있지 않고 젓가락을 만지려고 유아차에서 나오려고 안간힘을 썼다. 그렇게 우리는 오뎅국을 모듬 닭꼬치 구이와 주문하는 데 성공하긴 했지만 먹는 행위에 집중할 뿐 대화는커녕 다 먹자마자 식당을 나와야 했다.



웨스트 하루요시점에서 오코노미야끼, 오징어튀김, 사진엔 없지만 가라아게와 튀김우동도 주문했었다.



 남편은 아쉬운 마음에 2차로 갈 식당을 찾기 위해 또 거리를 걸었다. 유아차에 태운 딸이 밤잠에 들기를 기다리면서. 2차로 들어간 식당은 웨스트 하루요시점. 우동 전문점이라고 한다. 이곳에 온 경위는 다른 분위기 좋은 이자카야 같은 식당에 들어가려고 했다. 그랬더니 점원분이 친절하게 흡연을 하는 곳이라 아기가 있어 안 될 것 같다고 우리가 갈 만한 곳을 알려주셨다. 물론 일본어를 하나도 못하는 우리는 구글맵을 켜고 번역기를 돌려 소통해야 했지만. 그 따뜻한 마음에 일본에 여행 오면서도 조금이라도 일본어를 공부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았다는 것과 그분의 바쁜 시간을 뺏어 소통의 어려움을 해소한 것 같아 죄송스러웠다.


 맥주 한 잔과 오코노미야끼, 오징어 튀김을 주문한 후 오늘의 여행에 대해 이런저런 얘기를 남편과 하던 중 한국인 부부가 들어오는 게 보였다. 우리처럼 돌이 갓 지난 혹은 돌이 다 된 것 같은 아기와 함께. 밤 8-9시경이라 그 부부의 얼굴에 피곤이 역력했다. 아직 저녁 식사도 못한 듯 보였다. 드디어 식사를 하겠구나 생각하며 마음으로 육아의 고됨을 공감했다. 그런데 안쪽으로 그들이 들어간 지 20분도 채 안돼 아기를 태운 유아차를 끌고 다시 나오는 것이 아닌가. 아기가 울며 많이 칭얼대는 통에 이 식당에서도 식사를 못하고 다시 나가는 것 같았다. 육아를 하는 동지의 마음으로 가슴 아팠고 남편과 함께 파이팅 하며 그들은 듣지 못하는 응원의 목소리를 보냈다.


 남편은 육아가 참 힘들긴 하다고 하지만 힘들기만 하면 어떻게 육아를 하겠냐며 딸의 사랑스러움과 귀여움을 다시 한번 표현하며 맥주를 함께 들이켰다. 그리곤 여기 우동 전문점이라며 우동이나 소바 한 그릇은 먹어봐야 되지 않겠냐며 튀김 우동 한 그릇과 가라아게 하나를 더 시켰다. 그렇게 식도락 여행이 되어버렸다. 엄청 먹은 하루인 것 같다.


-


 호텔로 들어가기 전 편의점으로 가던 중 딸이 잠이 들어 들뜬 남편은 드디어 우리가 편히 일본 후쿠오카에서 소박한 음식 하나와 술 한 잔을 천천히 먹고 마시며 얘기할 수 있는 시간이 왔다며 또 식당과 이자카야를 찾기 시작했다. 밤거리를 30분은 넘게 함께 걸어 다닌 것 같다. 자정이 다 된 시간이라 많은 곳이 문을 닫는 중이었다. 남편은 참으로 아쉬워했고 나는 참으로 피곤했다.


 아쉬움과 피곤함을 이고 지고 편의점을 들러 오늘의 마무리를 하기 위한 맥주와 안주거리를 사서 호텔로 들어갔다. 이틀차 후쿠오카를 걸어 다니고 구경해서인지 작고 좁고 답답한 불편함에 익숙해져 가는 듯했다. 벌써 내일이면 한국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생각에 아쉽기까지 했다. 아쉬움으로 시작해 익숙함으로 이어진 대화는 다시 아쉬움으로 마무리되었다. 그렇게 우리 셋은 잠이 들었고 다음 날 오전 11시에 체크아웃을 해야 하는데 10시 15분에 일어나게 된다.



매거진의 이전글 후쿠오카를 가기로 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