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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riting Choenghee Oct 18. 2023

후쿠오카에서 떠오른 단상

마지막날이 되어서야…

 후쿠오카에서의 마지막날이 밝았다. 호텔 체크아웃 시간이 오전 11시인데 10시 15분에 일어났다. 큰일이었다. 준비하는데 한 시간 정도 걸리는 나는 폰에 뜬 시간을 보자마자 용수철이 튀어 오르듯 일어나 욕실로 들어갔다. 그동안 남편은 딸에게 물을 먹이고 옷을 갈아입혔고 짐을 정리했다. 후다닥 씻고 나갈 준비를 하고서 남편이 데워 온 딸의 유아식을 먹였다. 남편이 씻고 머리를 만지고 나갈 준비가 완료되면 또 나와 배턴 터치를 하듯 나는 여행용 캐리어에 우리의 짐을 마저 정리하고 남편은 딸을 돌봤다. 여행 마지막날이라는 아쉬움을 느낄 새도 없이 그날의 여행은 시작되었다.



남편이 데려간 스시집. 니카쿠즈시.



 남편은 일본 음식에 관심이 많다. 작고 소박한 양, 자극적이지 않은 맛, 뭔가 건강한 느낌을 품고 있는 일본 음식에 큰 만족감을 표현하는 편이다. 그래서 집에서 곧잘 해주는 음식도 거의 일본 음식들이다. 부타동, 오코노미야끼, 계란초밥 등. 그래서인지 일본에서 식사할 장소는 모두 남편이 알아봤는데 오늘 브런치로 먹을 스시집, 니카쿠즈시도 남편의 초이스였다. 12시 오픈인데 11시 30분에 먼저 도착한 우리는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기다리면서 그제야 눈에 들어온 일본 거리, 맨션, 아파트. 남편과 나는 당연하다는 듯 일본 집값, 재테크 등으로 대화의 화제가 전환되었다. 자식을 키우는 부모로서 자산을 불리고 유지하는 방법에 대해 공부하고 애쓰는 것이 물 흐르듯 당연한 수순처럼 우리에게 다가왔다.


 그리곤 일본 사람들의 라이프스타일이 묻어난 곳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예를 들면 눈을 아무리 크게 뜨고 찾아봐도 쓰레기 하나 절대 보이지 않는 길거리, 자전거가 일상생활의 교통수단으로 느껴질 정도로 많은 자전거가 세워져 있는 보관소, 그리고 맨션, 아파트, 주택 가릴 것 없이 한 사람이 소유하고 있는 주거지의 공간이 층고가 낮은 편에 좁다는 것. 남편과 나는 이런저런 대화 끝에 이런 결론에 이르렀다. 일본 사람들은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만큼의 공간을 소유하고 그 공간을 깨끗하고 정갈하게 가꾸고 살아가는 듯하다고. 또 고층 아파트, 맨션들을 올려다보면 거의 모든 집이 많은 식물들을 키우고 있었다. 식물에도 시간과 애정을 쏟는다는 것은 어찌 보면 작고 사소한 것도 소중하고 애틋하게 대하는 삶의 태도를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안타깝게도 남편이 데려간 스시집은 예약자를 대상으로 운영되는 곳이었다. 12시에 오픈한 그 집은 먼저 예약한 사람들로 가득 찼고 식사를 하고 싶으면 1시 30분에 다시 오라고 했다. 너무 미안하다는 듯이. 예약을 해야 하는 것을 모른 건 우리인데 마치 그분이 잘못한 것처럼.


 

SUN SELCO 쇼핑몰 앞에 세워진 수많은 자전거들. 자동차도 많지만 못지 않게 자전거를 생활 교통수단으로 사용하는 듯.
후쿠오카 맛집으로 강력히 추천하는 곳 이나다야선. SUN SELCO 쇼핑몰 지하에 위치
부타동. 또 먹고 싶다.



 결국 남편이 찾아놓은 또 다른 집, 이나다야선. 스시 대신 부타동을 먹으러 갔다. 남편이 해주는 음식 베스트 5 안에 드는 부타동. 그것의 원조를 직접 먹으러 간다니 너무 기대되었다.


 그런데 홈플러스 같은 대형마트처럼 보이는 건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닌가. 한껏 오른 기대가 와르르 무너지는 느낌이었다. 거기에 길어 보이는 웨이팅 줄까지. 그런데 구경하다 보니 우리만 외국인이다. 부타동을 먹기 위해 줄을 서고 있는 사람들은 인근 직장인들로 보이는 일본인들이었고 점심시간 수다를 떨며 줄이 줄어들길 기다리고 있었다. 현지인 맛집이라 이거지. 무너졌던 기대가 야금야금 다시 올라가기 시작했다.

 드디어 우리의 자리가 났고 유아차에서 칭얼거리는 딸을 아기띠로 업고 다닥다닥 붙어 앉아 부타동을 먹고 있는 일본인들 사이 빈 의자에 앉았다. 이제 낮고 좁은 식당, 작은 의자, 한 명이 들어가기에도 비좁은 자리는 익숙하다. 후쿠오카 여행 마지막날이 되어서야 후쿠오카가 편해졌다.


 앉고 조금 기다리자 부타동 한 그릇이 내 앞에 놓였다. 잘 버무리고 섞어 한 숟갈 입 안에 넣었다. 와. 너무 맛있었다. 이건 무슨 소스지. 고기는 또 왜 이렇게 부드러워. 대박. 남편이 집에서 해주는 부타동도 맛있지만 어떤 다른 차원의 맛. 먹으면서도 또 먹고 싶었다. 이렇게 맛있을 수가. 남편도 너무 맛있다고 연신 극찬을 한다. 극찬을 안 할 수가 없다. 누군가 후쿠오카에 여행을 간다면 꼭 이나다야선에서 부타동 한 그릇을 먹어보라고 말하고 싶다. 한국에 돌아와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까지도 남편과 나는 서로 그 부타동 또 먹고 싶다고 한다. 그러면 둘 중 하나가 농담으로 우리 또 (후쿠오카에 부타동 먹으러) 갈래 한다.


-


어느 마트 앞에 세워진 수많은 자전거들
오호리공원. 부타동과 오호리공원 때문에 후쿠오카에 또 가고 싶다.
오호리공원에서 러닝하는 사람. 나도 가벼운 몸으로 달리고 싶다.



 지하철을 타고 롯폰마쓰역에서 내려 우리의 목적지 오호리공원으로 향했다. 높고 푸른 나무들과 넓고 잔잔하게 흐르는 물결이 여행의 피로를 지워주는 듯했다. 자연이 품어주는 느낌을 좋아하는 나는 오호리공원을 왜 이제 왔을까 오자마자 후회가 되었다. 만약 첫째 날이나 이튿날에 왔다면 한 번 더 왔을 것이라고 확신이 드는 곳이었다. 공항 가기 전 남은 시간을 체크할 정도였으니까.


 계속 이 공원에서 걷고 벤치에 앉아 쉬고 바람을 느끼며 파란 하늘, 초록빛깔 나무, 흐르는 물결에 눈길을 두며 그저 멍하니 있고 싶었다. 그저 느릿하게 걷거나 멍하니 앉아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채워지는 기분이었으니까. 집에 돌아와서도 그곳을 가끔 떠올린다. 후쿠오카에 다시 간다면 시내 중심부가 아니라 오호리공원이 있는 롯폰마쓰에 숙소를 잡고 매일 그곳을 가고 싶다는 생각과 함께.



오호리공원 스타벅스.



 오호리공원을 크게 한 바퀴 돌며 산책을 하다 만난 스타벅스. 남편과 나의 티와 커피 한 잔씩 주문했다. 많은 사람들로 붐볐고 그 가운데 노트북을 켜고 일을 하고 있는 사람들도 있었다. 많은 이들로 부산하지만 그렇다고 책을 읽거나 노트북으로 글을 쓰거나 일을 해도 이상하지 않은 적당한 산만함과 소음. 자리만 있다면 나도 잠시 스타벅스에서 시간을 보내고 싶었지만 나올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오호리공원을 걸으며 산책을 이어갔다. 유아차에 타고 있던 딸도 내려 공원을 걷고 강아지에게 인사하고 비둘기도 따라가며 산책을 즐겼다.


 산책을 하다 본 사람들 중 어떤 이는 홀로 벤치에 앉아 음악을 들으며 사색을 반찬삼아 싸 온 점심을 먹기도 했고 또 어떤 이들은 피크닉 매트를 펼쳐 햇볕과 바람을 쐬며 주위에선 들리지 않는 작은 목소리로 점심 식사를 이어나갔다. 한국인이 아닌 어떤 외국인은 나에게 영어로 사진 촬영을 부탁했고 그의 사진을 찍어주었다. 그가 부탁한 각도와 장면으로 찍었고 피사체 중 당신이 제일 작은데 괜찮냐고 마음에 드냐고 물었더니 너무 좋다고 했다. 오랜만에 영어로 한 대화. 반가웠고 더 할 수 없어 아쉬웠다.


-


호텔에 맡겨둔 짐을 찾으러 가기 위해 롯폰마쓰역으로 돌아가던 중 발견한 츠타야 서점
일본어를 읽을 수 없지만 책과 관련 커피, 차를 함께 큐레이션 해둔 부분
서점 내 스타벅스에서 책을 읽거나 일을 하는 사람들



 슬슬 공항으로 가야 할 시간이 다가왔다. 가기 전 호텔에 맡겨둔 여행용 캐리어를 찾기 위해 지하철역으로 돌아가야 한다. 아쉬운 발걸음으로 지하철역을 향해 걸어갔다. 횡단보도를 건너려고 신호등을 기다리는데 건너편에 츠타야 서점이 있는 게 아닌가. 일본에 오기 전 한 번 들리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으나 일본어를 하나도 읽지 못하니 굳이 계획에 넣지 않았다. 이렇게 우연히 보게 된 것도 연이 아니겠나 생각하며 남편에게 잠시 가보자고 했다.


 평일 오후 3-4시쯤이었는데도 사람이 많았다. 커피나 차를 마시며 책을 읽거나 노트북을 열어 일을 하는 사람들로 서점은 북적였다. 일본어를 읽을 줄 몰라 수많은 책들이 있음에도 크게 관심이 일지 않았다. 그저 책을 좋아하는 일본 사람들은 어떤 분위기를 자아낼지가 궁금해 그들을 관찰했다. 어떤 책이기에 저렇게 골몰하며 읽고 있을까. 저 사람은 무슨 일을 하고 있는 걸까 등등에 대해 생각과 공상을 펼치면서.


 후쿠오카 여행을 기념하기 위해 츠타야 서점 내 문구를 파는 곳으로 향했다. 길이가 짧은 Penco 볼펜 하나가 눈에 띄었다. 사람들, 자동차들, 도로, 호텔 등 모든 것이 작고 좁게 느껴졌던 일본에 대한 첫인상이 일반 볼펜과는 달리 눈에 띄게 짧은 이 볼펜과도 겹쳐 보였다. 처음엔 그런 일본이 그러한 후쿠오카가 답답하고 불편하기만 했다. 이틀, 삼 일이 지나 그 모든 것에 익숙해졌고 떠날 순간이 다가오자 벌써 그리워지기 시작했다. 작은 것이 귀여워 보이기 시작했고 정갈해 보였다. 일본에서의 그 모든 느낌과 단상들을 담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그 볼펜 하나를 사기로 했다. 모든 것을 첫인상, 첫 느낌 하나로 단정하지 말자는 얕은 단상으로 후쿠오카 여행이 마무리되었다. 나중에 일본에 또 가게 된다면 기꺼이 그 작고 좁지만 소박하고 정갈한 그곳에 앉아 그 순간만을 즐기고 누리겠다는 다짐과 함께.



남편이 우리집 한 켠에 아카이빙 해 둔 후쿠오카 추억. 지하철 원데이 티켓과 Penco 볼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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