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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riting Choenghee Nov 02. 2023

렘브란트 전시를 보게 되었다.

미라클모닝이 가져다준 선물

 육아휴직 중이지만 늦게 일어난 적은 정말 한 번도 없었다. 5~7시에는 무조건 일어났다. 아침 일찍 깨는 14개월된 딸 덕분에. 밤새 차고 있어 불편했을 딸의 기저귀를 갈아주고 아침 식사를 준비하고 딸에게 먹여주다 보면 시간이 어느새 이렇게 됐나 싶다. 그리고 나선 설거지를 하거나 아니면 설거지를 잠시 미뤄두고 딸과 놀아주고... 아침에 일찍 일어나지만 나를 위한 시간은 조금도 없다.


 이번에도 아침 7시쯤 일어났다. 딸이 변비로 고생 중이라 소아과에 가야하는 날, 정기 검진이 있는 날이다. 아침 9시에 예약을 해뒀었다. 나는 부랴부랴 씻고 나갈 준비를 하고 그동안 남편은 딸을 돌봤다. 내 준비를 마치면 남편이 나갈 준비를 하고 나는 딸과 놀아준다. 그리곤 남편이 말했다. 우리 진짜 렘브란트 보러 갈래라고. 며칠 전부터 대구미술관에 렘브란트 전시가 있다는 인스타 피드를 보고 나에게 잊을만하면 알려주었다. 렘브란트 알지? 렘브란트 얼리버드 하면 선착순 20명에게 2024 캘린더도 준데. 하면서. 어젯밤에도 말했었다. 딸 병원 갔다가 바로 대구미술관 렘브란트 전시 보러 갈래?


 딸의 간식들과 물, 기저귀 등을 두둑이 챙겨 소아과로 향했다. 변비약을 소량 처방받고 바로 대구미술관으로 갔다. 《렘브란트, 17세기의 사진가》전시를 보기 위해. 남편은 선착순 20명에게 주는 렘브란트 작품으로 구성된 내년 캘린더에 더 눈독을 들이는 듯했다. 속으로 내심 불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미술관이 10시에 오픈인데 우리는 10시 딱 맞춰서 도착할 예정이었기 때문에. '아무리 평일이라도' 10시 딱 맞춰 도착하는 것은 얼리버드 축에 속하지 못할 거라고. 남편은 아무리 평일이라도에서 '평일'에 초점을 두는 듯했다.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


 10시 조금 전 대구미술관에 도착하니 이미 주차장의 3분의 2 이상은 찼고 유치원에서 단체로 전시 관람을 와 가을 아침 쌀쌀한 공기와는 대비되게 많은 아이들과 어른들로 붐볐다. 분위기 상 오후 2, 3시라고 해도 어색하지 않았다. 남편은 차에서 내려 딸을 유아차에 태운 후 빠른 걸음으로 미술관 입구 쪽으로 향하다 직감했다. 캘린더는 받을 수 없겠구나... 천천히 미술관 주변의 초록 나무들과 산이 제공하는 산뜻한 공기를 맡고 아이들의 재잘거리는 목소리를 들으며 미술관 안으로 들어갔다.   




 이번 《렘브란트, 17세기의 사진가》전시는 렘브란트의 동판화 120여 점을 소개하는 전시로 사진이 발명되기 2세기 전 마치 카메라의 렌즈와도 같은 시선으로 17세기의 세상과 당시의 사람들을 있는 모습 그대로 바라보고 작품에 담아낸 렘브란트의 시선에 주목한다고. 전시는 크게 자화상, 거리의 사람들, 성경 속 이야기, 장면들, 누드, 풍경, 습작, 인물, 초상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별 기대 없이 남편의 수차례 반복되었던 제안에 따라왔을 뿐인데 결과적으로 말하면 생각보다 흥미로웠다.  


 특히 거리의 사람들 부분에서는 행인, 거지, 거리의 악사 등 사회적 약자들을 그린 작품들이 많았다.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작품에 반영하고 날 것 그대로의 세상을 담은 것이 인상 깊었다. 성경 속 이야기에 해당되는 그의 작품들에서는 아담과 하와를 이상적인 젊은이의 모습이 아닌 평범한 사람으로 묘사한 것이 와닿았다. 기독교 신자도 아닐뿐더러 다른 종교도 갖고 있지 않다. 성경도 읽어본 적 없고 내용도 잘 모르지만 성경 속 인물들을 평범하게 표현하는 것은 렘브란테에게 어떤 용기가 필요했지 않았을까. 짧게 그의 마음을 공상해 본다.


착한 사마리아인 The Good Samaritan / 25.7x20.8cm / 1633 / 에칭, 뷰린


 성경에 대해 잘 모르지만 착한 사마리아인을 표현한 그의 작품이 있었다. 작품 옆에는 그에 대한 설명이 다음과 같이 있었다. '어떤 사람이 길에서 강도를 만나 초주검이 된 채 길가에 버려졌다. 길을 가던 사제와 레위인은 그를 돕지 않고 지나쳤지만 그를 불쌍히 여긴 사마리아인이 그를 여관으로 데려가 돌보아주었다. 렘브란트는 사마리아인이 여관에 도착하는 성경 속 장면을 묘사하면서 배변하는 개를 그려 넣어 놀라운 현실감과 디테일을 더했다.' (중략)


 렘브란트라는 인물에 대해 자세히 공부하고 가지 않았지만 작품들에서 느껴지는 따뜻함이 있었다. 거리의 행인들을 있는 그대로 묘사하고 성경 속 인물을 평범하게 표현하며 특히 다른 성경 속 내용도 많은데 그중 착한 사마리아인에 대한 작품을 만들어냈다는 것. 그의 행적에 대해 자세히 알면 이와는 다른 실망스러운 면모가 있을 수 있겠지만 그가 많은 노력과 시간을 쏟아 창조된 작품들에서 느껴지는 타인에 대한 따뜻한 마음도 그가 가진 다양한 인간성 중 하나 아닐까. 한 사람은 거대한 우주로 표현되기도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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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술 전시를 가면 항상 내가 폰으로 담아 오는 사진들의 공통점이 있다. 책을 읽고 있거나 글을 쓰는 사람이 표현된 작품들이라는 것. 그런 작품들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으면 내가 작품의 주인공이 된 양 대자연 속에 들어가 책을 읽고 있는 것 같고 글을 쓰고 있는 것 같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활동이자 아무리 많은 시간이 허락된다고 하더라도 지루하거나 지겹지 않을 만큼 독서와 글쓰기는 나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것들이다. 한편으론 지금 현재 나에게 그러한 시간이 충분치 않아 작품을 보면서 대리만족을 하는 것일 수도.


이탈리아 풍경 속 글 읽는 성 예로니모 St.Jerome Reading in an Italian Landscape / 25.9x21cm / c.1653 / 에칭, 드라이포인트


글 읽는 성 예로니모 St.Jerome Reading / 10.8x9cm / 1634 / 에칭


가지 잘린 버드나무 옆의 성 예로니모 St.Jerome Beside a Pollard Willow / 18x13.3cm / 1648 / 에칭, 드라이포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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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덧붙여 그림을 그리거나 악기를 연주하는 사람들이 표현된 작품들도 종종 사진으로 찍어오곤 한다. 물론 이런 작품들만 의도적으로 골라 찍어온다는 것이 아니다. 나도 모르게 지금껏 찍은 사진들의 공통점을 모아보니 그렇다는 귀납적 결론이다. 이는 나의 욕구와 마음 상태를 드러내는 것과도 같다. 독서와 글쓰기 외에 내가 따로 시간을 내어 배우고 싶은 미술과 음악이라는 또 다른 예술이 내 마음 한 구석에 존재한다는 것. 어릴 적 배운 피아노는 기억에서 많이 사라진 지 오래. 언젠가 기억 속 작은 불꽃을 찾아내어 다시 활활 그 불씨를 키우고 싶다.  


피리 부는 사람 The Flute Player / 11.6x14.3cm / 1642 / 에칭, 드라이포인트


스케치하는 사람이 있는 시골집과 농가건물 Cottages and Farm Buildings with a Man Sketching / 12.9x20.9cm / c.1641 / 에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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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쪽 작은 공간에는 동판화를 만들어내는 작업 과정이 처음부터 끝까지 영상으로 재생되고 있었는데 그 작은 공간에 이미 많은 유치원생 아이들이 앉아 시청하고 있었다. 렘브란트의 작품들이 좋았던 나는 그 속에 들어가 아이들과 함께 벤치에 앉아 렘브란트가 작품 하나하나를 창조해 냈던 과정을 집중하여 들여다보았다. 바로 옆에 앉아있던 아이가 와 그림 하나 만드는데 저렇게나 많이... 하며 한탄 아닌 한탄을 했다. 아이들 눈에도 재미보다는 어떤 수련이나 단련 과정으로 보였으리라. 동판 위에 그림을 그리는 시간보다 이후의 과정에 더 많은 수고와 시간이 들었으니까.


 어쩌면 예술이라는 활동은 우아하고 고풍스러워보이지만 실상이 겉으로 보이는 현상과는 다르듯 그 이면에는 예술가의 수많은 반복과 훈련의 시간들이 흐르고 있었으며 그 우아해 보이는 순간도 어쩌면 그 시간의 과정 속 한 지점일 수 있다. 그 시간들이 있었기에 남들의 눈에는 우아함과 고풍스러움이 보이는 것이 아닐까. 초심자는 뿜어낼 수 없는 어떤 오라와 같은. 초심자는 어느 분야를 막론하고 그 새로움에 이끌려, 사로잡힌 흥분감에 떠들썩하고 부산스럽기 마련이니까.  


 그렇게 전시를 다 보고 나와서 점심으로 무얼 먹을까 고민하던 중 우리 서문시장 가서 먹거리 이것저것 끌리는 대로 사 먹을까 제안했고 남편은 바로 동의했다. 평일임에도 많은 사람들로 붐볐고 주차하는데도 많은 시간이 걸렸다. 그 시간들을 달래줄 떡볶이, 호두과자, 호떡, 쫀드기를 사 먹었다. 딸을 데리고 이곳저곳 구경하며 맛있는 것도 곁들이니 행복이 따로 없었다.




 그렇게 집으로 돌아오니 오후 2시 즈음이었다. 우리 오늘 미라클모닝했나 보다. 이렇게 많은 것들을 했는데 아직 오후 2시야 오빠. 했지만 그 뿌듯함과 만족감에서 오는 감흥도 잠시 우리 부부는 피곤함에 잠이 들었고 딸은 온 집안을 돌아다니며 혼자만의 시간을 가졌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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