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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riting Choenghee Oct 13. 2023

후쿠오카를 가기로 했다.

남편과 아니, 남편 그리고 딸과 함께하는 첫 해외여행

 여름휴가 겸 느지막이 날씨 좋을 때를 틈타 후쿠오카를 갔다. 2019년부터 2022년까지 코로나 바이러스가 번져 해외뿐만 아니라 국내 여행도 어려울 정도였다. 물론 그 정도는 뒤로 올수록 약해졌지만. 2021년에 결혼한 우리는 하나뿐인 신혼여행을 우리 부모님 때처럼 제주도를 갔다. 해외로 못 간 것에 대한 아쉬움이 없었다면 거짓말이겠지. 그래서 이번 후쿠오카 여행은 남편과 함께 떠나는 첫 해외여행이자 남편과 나 그리고 딸과 함께 떠나는 최초의 해외여행이기도 하다. 결혼을 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임신을 해 우리가 결혼한 다음 해 보물보다 더 소중한 딸을 낳았기 때문에. 1살 딸과 함께 아주 멀리 가기엔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라 우리나라에서 제일 가까운 일본, 거기서도 제일 비행시간이 짧은 후쿠오카로 여행지를 정했다. 지금 생각해도 돌을 갓 지난 아이와 함께 가기에 첫 해외여행지로 좋은 시도인 것 같다.


 10월 10일 화요일 오후 5시 20분 후쿠오카행 비행 편 티켓을 예매한 건 한 달 전쯤이었다. 솔직하게 말해서 남편은 차치하고 나로서는 일본에 관심이 전혀 없었다. 전 세계를 경직케한 코로나 19 바이러스가 나를 변화시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전에는 공짜로 보내준다고 해도 별로 내키지 않았던 일본. 가고 싶어도 못 가는 상황에 이르자 청개구리처럼 몹시도 가고 싶어졌다. 그럼에도 30여 년간 일본에 별 관심이 없어서였는지 MBTI로 따졌을 때 J임에도 불구하고 한 달여간 아무 준비나 계획을 하지 않았다. 딸을 위해 신경 써야 할 안전, 건강상 필요한 준비물 외에는.


 남편은 너무 가까운 일본에 가서인지 자신의 첫 해외여행이기도 한데 별 준비를 하지 않았다. 이쯤 되면 계획형 J가 맞는지 의심을 해야 하지 않을까. 와이프야 아우 설렌다라는 말만 틈만 날 때마다 혼잣말하듯 말해놓고는. 꼭 필요한 것만 준비하고 가고 싶은 곳, 먹고 싶은 것은 전날 찾아봐도 된다는 생각에 크게 걱정하거나 준비하지 않았다. 아무리 봐도 J가 아닌 것 같다.


 그렇게 우리는 출발 전 날 준비해야 할 리스트를 적고 출발하는 날 오전에 짐을 쌌다. J형 남편은 오후 3시쯤 공항으로 출발하기 직전 한 번 더 준비물 리스트를 들고 여행 가방 안에 물건들이 잘 들어가 있는지 확인했다. 그리고는 나는 유아차에 딸을 태우고 남편은 20인치가 넘는 커다란 여행용 캐리어와 기내용으로 들고 탈 수 있는 또 다른 여행 가방을 하나 더 챙겨 문밖을 나섰다.


 아무 생각 없던 나는 그제야 설렘이 폭발하는 듯했다. 남편과 둘이 간다면 설레기만 하겠지만 1살 갓 된 딸과 함께 가는지라 걱정이 내 머릿속 한 구석을 차지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설렘이 차지한 공간이 점점 더 커져 걱정을 밀어내는 듯했다. 그렇게 우리는 공항으로 가는 버스를 탔다. 처음엔 한적했던 버스가 공항에 가까이 다다르자 백패킹을 하는 외국인 두 명, 출장을 온 듯 보이는 사람들, 그리고 근처에 거주하는 시민들로 가득 찼다. 옆쪽에 앉아계셨던 할머니와 아주머니께서 딸에게 아이고 귀엽네, 예쁘다 해주시고 딸이 발로 아주머니의 가방을 밀어내는데도 괜찮아 아기가 그러는 건데 뭘 귀엽다 해주셨다. 웃으며 감사하다고 말씀드렸다.


 공항 바로 앞 버스 정류장에서 내렸다. 남편은 나보다 5살이 더 많지만 개구쟁이 같은 면이 많다. 일본에 간다는 설렘에 기분이 한 껏 좋아져 마치 딸과 나를 보호하는 보디가드인양 공항으로 안내하는 행동을 취하는 남편이 신기했다. 그 무거운 짐을 두 개나 맡고 있으면서. 남편에게서 개구쟁이가 튀어나올 때마다 생경하고 익숙하지가 않다. 존경스럽기마저 하다. 체력적으로 힘들 텐데도 포기하지 않는 유머러스함과 귀여움. 나는 체력이 약해지면 그저 표정으로 말로 다 드러나는 나약한 사람이다.


 공항 안으로 들어가 셀프체크인, 수하물을 맡기고 보안검색 후 우리가 통과해야 할 게이트 앞 의자에 짐을 두고 의자에 앉았다. 그리곤 딸에게 무릎보호대를 착용시키고 신발을 신긴 후 공항 바닥에 서게 했다. 두근두근. 남편과 나는 딸이 어쩌는지 잠시 지켜보기로 했다. 지금 이 순간 전까지 집 밖에서 걸어본 적이 없다. 항상 맨발로 혹은 양말을 신고 실내에서만 걷다가 선물 받은 신발을 집에서 신겨보니 어색한지 서지도 않고 신발을 신은 자신의 발만 쳐다보던 딸이었다. 일으켜 세워줘도 털썩 앉던 딸.


 



 잠시 어색해하더니 걷는다! 온 공항 바닥을 면세점을 사람들 사이사이를 걷고 또래 친구들도 만나 인사를 나누고 기분 좋은 함성소리를 내지른다. 그렇게 공항에서 첫 야외 발자국을 내딛는 날이 되었다. 딸의 모습을 찍은 사진과 영상을 부모님들이 계신 단톡방에 올리니 엄청 기뻐하신다. 드디어 밖에서도 걷는다고.


 거의 뛰다시피 빨리 걷는 딸을 따라다니느라 힘들어 보이는 남편과 역할을 바꿔 내가 따라다녔다. 그러다 비행기 탑승 시간이 다가왔다. 드디어 간다. 첫 관문이 다가온다. 비행기 안에서 짜증을 부리거나 울진 않을지. 그래서 같이 탄 탑승객들께 불쾌감을 드려서는 안 된다. 첫 관문을 잘 통과하기 위해 물, 짜 먹는 과일 퓨레, 뽀로로 스티커북을 준비했다. 내가 준비한 최고 필살기 아이템 뽀로로 스티커북을 쓰지도 않은 채 딸은 이륙한 지 얼마 안 되어 내 품에 안겨 잠이 들었다. 과일 퓨레 하나를 다 먹은 후였다.


-


 후쿠오카에 착륙했다. 이제 남편의 첫 관문. 공항에서 예약한 호텔까지 도착하기. 출발 전날 남편이 자신감 있게 말했었다. 다 알아놨으니 넌 신경 쓰지 말라고. 호언장담한 것보다는 약간 두려워하는 듯했지만 버스를 타고 지하철로 갈아타 몇 분 걸으니 호텔에 무사히 그러나 지친 상태로 저녁 8시쯤 도착했다.


 가성비 있게 예약한 호텔이지만 더블 모던룸이었는데 너무나 좁은 실내였다. 여행용 캐리어를 바닥에 펴니 우리가 지나갈 수 있는 통로가 막혀버리는 상태. 호텔을 오면서 봤던 식당, 상점, 일본인들이 떠올랐다. 잠시 본 걸로 일본은 이렇다고 정의 내리고 일반화할 수는 없겠다. 그러나 남편은 키가 180cm 넘고 나는 175cm가 넘는데 그 작고 정갈한 공간들과 사람들을 보니 우리는 마치 좁은 공간에 억지로 몸을 구겨 넣는 거인 같았다. 우리는 거인이라는 생각이 호텔을 나가서도 이어졌다.



호텔을 나서고 후코오카에서 처음 찍은 사진
나카스 강변



 후쿠오카에서의 첫 식사, 저녁을 먹기 위해 이치란라멘 본점으로 향했다. 본점이라는 명성만큼이나 밖에서 웨이팅을 해야 했다.



리모델링을 하는 듯 했다.
내가 주문한 돈코츠 라멘



 약 40분쯤 남편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기다리다 딸을 아기띠로 안고 식당 안으로 들어갔다. 대표 메뉴 돈코츠라멘을 키오스크로 주문하고 식당 안으로 들어가니 와 정말 공간이 협소했다. 남편이 안으면 우는 딸을 내가 아기띠로 안고 한 명이 들어가기에 조금의 여유 공간 없이 딱 맞는 자리로 들어가는 기분이란. 구겨 넣는다는 표현이 딱 맞다. 그렇게 불편하게 제대로 음미할 시간 없이 진하고 걸쭉한 육수가 맛있고 인상 깊다는 느낌을 빠르게 체감하고 서둘러 나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숨통 트이게 해 준 것이 있었으니 아사히 생맥주. 한국에서 먹는 것과는 완전히 달랐다. 크리미하고 시원한 맥주. 술을 못하는 내가 첫 한 모금에 눈이 동그래져 와 대박이라고 말해버렸다. 일본에서 계속 느껴온 답답함을 많이 해소시켜 주었던 아사히 생맥주. 그것마저 없었다면 너무 힘들었던 후쿠오카에서의 첫날이 되었을 듯.



나카스 강변 야타이
우리가 주문한 명란젓과 모듬 꼬치 그리고 생맥주



 남편이 가고 싶어 했던 나카스강변 야타이(포장마차). 강을 따라 길게 포장마차가 줄을 지어 서있었고 많은 사람들이 마음에 드는 포장마차 앞에 줄을 지어 기다리고 있었다. 웨이팅이 기본이기는 하지만 회전이 빨라 그리 오래 기다리지는 않았다. 사진에서 보듯 또 좁은 공간, 작은 의자에 딸을 안고 몸을 앉혔다. 사서 고생이 이런 건가. 짧지만 깊은 대화 몇 마디를 나누며 못 마시는 술을 곁들여 그간의 소회를 나누는 게 포차가 가진 의미 아닐까 생각해 오던 나는 좁은 공간에 울어대는 딸과 주문한 명란젓과 모듬 꼬치를 빨리 먹고 나올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첫 일본 여행은 수박 겉핥기식으로 끝나겠구나 생각했다.


 남편은 그래도 이 순간을 제대로 즐기고픈 마음에 폰으로 다음 갈 식당을 찾아봤다. 이런 기분으로 첫날을 마무리할 수는 없다는 듯. 그렇게 가는 곳마다 클로징 시간이 다 되어서 혹은 흡연을 허하는 식당이라서 아이가 있는 우리가 갈 수 있는 곳은 없었다. 세네 곳을 걸어서 문을 열고 물어보고 퇴짜를 맞는 식이었다. 지쳐서 먼저 잠든 딸을 유아차에 태워 호텔로 돌아왔다. 대신 맥주와 안주거리들을 사서. 짜증 섞인 투로 말해서 미안하다고 그렇지만 너무 좁아서 답답하다고 말하는 내게 내일 늦게까지 푹 자고 즐거운 추억 쌓고 가자는 남편의 말로 후쿠오카에서의 첫날이 마무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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