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Writing Choenghee Sep 21. 2023

여전히 다정과 사랑이 넘치는 거리

 딸을 유아차에 태운 뒤 동네 산책을 나섰다. 오늘의 목표 지점은 동네 독립서점. 우리 집에서 도보로 편도 약 30분 거리에 있다. 마음 같아서는 더 먼 곳을 향해 무아지경으로 걷고 싶으나 딸은 외출 후 1시간 남짓의 시간을 홀로 잘 즐기는 것 같다. 그 정도의 시간이 지나면 약간의 짜증 섞인 소리로 안아달라는 신호를 보내곤 하니까. 딸과 함께하는 산책이므로 딸의 의견도 존중하여 잠시만 나갔다 오기로 한다.



 산책을 할 때면 딸은 초록초록한 나무와 간간이 보이는 분홍색 꽃잎들, 멍멍 강아지들과 비둘기들을 보며 웃다가 소리 내다가 나름의 방식으로 그 과정을 즐긴다. 아직은 딸에게 모든 날아다니는 동물들과 사람이 산책시키는 동물들이 새와 개라는 하나의 단어로 일반화되겠지만 점점 커갈수록 앞에 보이는 수많은 나뭇가지들처럼 세세하게 구별되어 가며 뻗어나가겠지.



 딸이 산책 중 제일 많이 보는 것은 동식물들 외에도 무수히 많고 다양한 사람들일 것이다. 아빠, 엄마, 할아버지, 할머니, 고모, 삼촌 등을 제외하고도 같은 동네에서 살아가지만 처음 보는 사람들. 그런데 딸만이 이것을 경험하지 않는다. 나 또한 그렇다. 딸과 산책하기 전에는 처음 보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이 의식적으로 인지된 적은 없었다.



 길거리를 걷다가도, 횡단보도에서 초록 신호등이 켜지기를 기다리다가도, 도서관, 서점, 마트, 편의점 등에 들릴 때에도 마주치는 점원분들과 다른 손님들까지. 심지어 신축 아파트 건설현장을 지나갈 때 마주친 직원분께서도 딸에게 아이고 예뻐라, 귀여워, 그놈 참 순하게 생겼네. 복 많이 받겠다. 건강하게 자라라 등등의 덕담을 해주시고 딸의 발바닥을 간지럽히는 등 예뻐해 주신다. 엄마인 나는 감사드린다는 인사를 꼭 전달한다.






 많은 사람들이 그 순간 딸에게 건네는 미소와 온기가 느껴지는 말 한마디, 따뜻한 손으로 전달되는 체온을 딸이 기억했으면 한다. 커가면서 기억이 희미해지더라도 사람들이 건네준 그 마음들을 잊지 않았으면 한다. 바쁘고 각박해지는 삶 속에서도 그 온기를 잊지 않고 자신도 진심으로 그 따뜻함을 전달할 수 있는 사람으로 컸으면 한다. 삶을 살아가는 데 있어 자신과 타인에 대한 사랑을 기반으로 모든 것이 뻗어나갔으면 한다. 사랑을 받고 줄 줄도 알아 행복한 삶을 살아갔으면 한다.



 한 사람을 키워내기 위해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이 조금은 이해가, 체감이 된다. 옛날에는 이렇게 서로 인사를 하는 것을 넘어 얼굴을 트면서 육아 품앗이도 하고 그렇게 한 동네 사람들과 친분을 쌓아가며 살았겠지. 아이들은 형제자매뿐만 아니라 다른 집 아이들과 한데 어울려 같이 놀고 가끔은 싸우기도 하면서 그렇게 컸겠지. 부모들도 서로의 집에 놀러 가기도 하고 집안일도 도와주면서 거의 한 가족이나 다름없는 느낌으로 친밀한 관계를 형성하며 한 동네라는 거대한 공간을 좁고 가까운 곳으로 만들어갔겠지. 그렇게 한 아이는 가족 외에도 많은 인간적 관계들을 통해 사회적, 정서적 지지를 받으며 건강하게 성장해 갔을 것이다.






 시간이 흐르면서 딸이 성인이 됐을 때는 이 사회가 어떤 곳으로 변모할지 예상할 수 없다. 마을은커녕 온라인상의 커뮤니티가 더 활성화되고 오프라인에서는 철저한 개인으로 살아가는 각박한 사회로 변한다 하더라도 딸이 어릴 적 받은 그 다정한 마음들의 가치를 높게 여길 줄 알고 되돌려 줄 수 있는 사람이었으면. 그 온기가 다른 이에게도 진심으로 전달되고 퍼져 다시 그 가치를 알아보는 이들이 많아졌으면.






 딸과 산책을 하다 딸을 귀여워해 주시고 진심 담긴 덕담과 인사를 해 주시는 분들께 문득 감사하다는 마음이 밀려왔는데 그 마음이 계속 그 자리에 머물러 있었다. 한 사람이 살아가는 데 있어 어쩌면 타인으로부터 느껴지는 다정과 사랑의 가치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클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염려되는 미래의 사회에도 그 가치의 영향은 작지 않을 것이다.



*글 제목 이미지 출처: 픽사베이



  

매거진의 이전글 내가 좋아하는 것을 딸과 함께 하고 싶어 졌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