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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riting Choenghee Feb 04. 2024

네가 있어 나를 잃지 않을 수 있어

이게 더 맞는 말이다

 이 말을 결혼 전부터, 결혼하고 나서도 자주 들어봤다. ‘자식을 낳으면 그때부터 나는 사라진다.‘ 자식을 낳는 그 순간부터 세상의 중심이 자식이 되면서 나를 위해 쓰던 시간과 공간, 그리고 옷, 음식 등 세상 만물에 대한 취향과 선호가 세상 어느 저편으로 물러간다.


 내 직업이 뭐였는지 잠시 까먹을 정도로 매일 하루 대부분의 시간을 딸 육아에 쓰고 집안 대부분의 공간은 딸의 놀잇감, 책으로 어지럽다. 밥도 제대로 챙겨 먹지 못하고 옷은 내 취향을 반영하여 나를 돋보일 수 있는 것보다 생활에 용이한 트레이닝복을 자주 입는다.  


 결국 많이 들었던 말을 고개를 끄덕하며 동의할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그러나, 나는 도리어 딸을 낳음으로써 나를 잃지 않을 수 있었다. 딸 덕분에 나라는 존재가 더 선명해졌고 명확해졌다.  




 한없이 게을러지고 싶고 삶의 뒷걸음질을 치고 싶을 때 딸을 보면 최소한 제자리걸음이라도 하게 된다. 내 생활을 정비하고 내 건강을 챙기려고 노력한다.

 

 내 인생이 마치 일시 정지 버튼에 의해 조금도 움직이지 않는 상태가 된 듯할 때 딸을 보면 즐거운 미래를 상상하게 된다. 세상에서 제일 소중하고 친한 친구가 또 하나 생겼구나. 바로 딸이다. 딸이 크면 단둘이 해외여행 가기, 손잡고 카페에 가서 수다 떨기, 딸이 자신의 일거수일투족을 이러쿵저러쿵 수다스럽게 나에게 털어놓으면 같이 욕해주고 기뻐해주며 때로는 조언도 아끼지 않기 등 이제껏 내 인생에 없었던 새로운 일상의 장면들을 그려본다.


 새로운 인생의 목표도 생긴다. 딸에게 자랑스러운 엄마가 되기 위해 더 나은 내가 되고 싶어 진다. 남편과 사랑을 바탕으로 서로 존중하고 배려하는 관계를 형성하고 유지하기, 일상이 정돈되고 운동과 식단을 게을리하지 않으며 나를 챙기기, 항상 연구를 하는 교사로서 일적으로도 프로페셔널한 엄마 되기, 좋아하는 독서와 글쓰기를 꾸준히 하며 취미의 소중함을 알려주기, 작은 일에도 기쁨을 느끼고 감사하는 나의 모습을 잃지 않기 등등등.   


 자식을 낳으면 그 순간부터 나라는 존재는 없어진다는 말은 조금은 맞고 많이 틀렸다고 생각한다.


 딸이 있어 지치고 힘든 순간이 찾아올 때 인생의 비수기를 길지 않게 흘려보낼 수 있다. 게으름에 나를 맡기지 않는다. 포기하지 않고 나를 결국 일으켜 세운다.


 내가 살고 싶은 삶이 더 명확하게 그려진다. 내가 이루고 싶은 목표가, 하고 싶은 것들이 하나둘씩 늘어난다.


 그런 삶이, 그런 내가 아직 가까운 어쩌면 조금 먼 미래에 있지만 그런 삶을 살기 위해, 그런 내가 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딸이 있어 나를 잃지 않고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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