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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riting Choenghee Jun 07. 2023

에드워드 호퍼의 인생 기록

그리기와 쓰기

 “오빠, 서울에서 에드워드 호퍼 전시 중이래요. “라고 내가 남편에게 한 말로 곧 생후 10개월이 될 아기도 함께하는 서울 여행이 시작되었다.

 “맞아. 이번에 전시 볼 겸 서울 여행 갈까?” 돌도 안 지난 아기를 육아 중이라 장난치듯 농담 삼아 던진 남편의 말을 나는 덥석 잡아 놓아주지 않았다.

 “응!!! 가자!”

 오랜만에 떠나는 먼 곳으로의 여행에 들뜬 나를 보고 남편은 동대구역에서 출발하는 KTX 티켓과 숙소를 알아보기 시작했고 1시간도 지나지 않아 예매, 예약을 완료했다.


 그렇게 시작된 서울 여행. 아침부터 느긋하게 준비하다 제일 중요한 딸의 분유 젖병을 챙기지 않았다는 사실을 동대구역에서 알아차렸다. 하지만, 서울역 롯데마트에서 구매하는 기지를 발휘하였고 제일 염려되었던 KTX 내에서의 딸의 계속되는 울음은 걱정에서 그쳤다. 승차 후 얼마되지 않아 낮잠을 자 평화롭게 서울역에 도착했기 때문에. 이후, 통인시장에 들러 기름떡볶이를 포장해 숙소로 이동하였고 약간 늦은 점심식사 후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열린 전시 ‘에드워드 호퍼: 길 위에서’를 관람하러 갔다.

서울시립미술관에 도착해서 남편과 나, 딸의 입장티켓을 발권했다.


 곽아람 기자의 책 <나의 뉴욕 수업>에서 호퍼의 자화상과 그의 이야기를 간단하게나마 접하고 가서인지 호퍼와 그의 작품들이 괜히 더 친숙하게 느껴졌다.




 전시는 호퍼의 전 생애에 걸친 드로잉, 판화, 유화, 수채화 등의 작품들을 파리, 뉴욕, 뉴잉글랜드 일대, 케이프코드 등 그의 자취가 남아있는 장소를 따라 본인만의 화법을 전개하고 그만의 독보적인 예술을 찾아 성장해 나가는 순간들을 모아두었다고 한다.

 그의 작품들을 크게 세 시기로 나눌 수 있는데 특히 나는 1900년 초 학생 시절, 즉 그가 습작을 그리며 예술가로서의 표현과 기술적 숙련을 위한 노력을 기하는 제일 초반 시기가 인상 깊었다. 에드워드 호퍼 전시를 서울 여행 전부터 많은 기대를 했기 때문이리라. 그리고 이제껏 쓰지 않았던 사람이었지만 쓰는 사람으로 변모하고자 그 노력의 시작점에 있는 나에게 예술가로서 성공하기 위해 여러 습작과 표현 연습에 공을 들인 그의 초기 작품들을 보고 있자니 당시의 그와 현재의 내가 동일시되는 느낌에 그랬으리라. 한편, 그는 얼굴과 상반신, 특히 손을 수차례 그리는데 사진 촬영이 불가했지만 이 전시를 기념하기 위해 산 노트로 엿볼 수 있다.

<자화상과 손 습작>, 1900년경, 종이에 펜, 잉크, 연필, 20 x 12.5cm 뉴욕 휘트니미술관

 

 파리에서는 파리지앵과 일상을 관찰하며 다양한 직업군, 카페에 앉아있는 사람들, 유행하는 옷을 입은 남녀 등을 캐리커처로 기록했으며, 후에 뉴욕에서 기존의 관찰로 구성된 것에 상상력을 더해 몇몇 작품을 완성했다고 전해진다.

 뉴욕에서도 뉴욕의 풍경과 뉴요커들의 일상이 호퍼의 자연스러운 작업의 소재가 되었다고 한다.

 뉴잉글랜드에서 조세핀 버스틸 나비슨과 교제를 시작했고, 결혼을 했다.


<와이오밍의 조>와 <굿하버해변에서 스케치하는 조>

 호퍼 부부는 멕시코 남부와 서부를 여행하며 많은 수채화 작품을 그렸다. 그들은 경험하고 본 것을 구체적으로 묘사하기 위해 작은 노트에 즉각적으로 스케치하였고, 이러한 노력은 대상을 더욱 사실적으로 표현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고 한다. <와이오밍의 조>는 자동차 앞 좌석에서 높게 솟은 산봉우리와 산을 둘러싼 숲을 그리고 있는 조세핀의 모습을 보여준다. 이는 동시에 뒷좌석에 앉아 조세핀을 그리고 있는 호퍼의 모습을 연상케 하며, 평소 이들의 여행하는 모습을 상상하게 한다.


 그리고, 호퍼는 평소 아이디어를 메모하거나 스케치해두었고, 추후 작품을 판매하면서부터 조세핀과 함께 작품 관련 정보, 판매 내역, 전시 이력 등을 장부에 기록해두었다고 한다.

에드워드 호퍼, 조세핀 니비슨 호퍼 <작가의 장부 1권>, 1913-63 뉴욕휘트니미술관


 이렇듯, 호퍼는 작품 전, 작품을 그릴 때, 작품 후 전시, 판매 등 모든 과정을 기록해두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아이패드 드로잉이 항상 배워보고픈 분야였는데 마음속에만 두고 실천하지 않았다. 그림은 글을 쓰는 것과 마찬가지로 어떤 중요한 순간의 그 의미와 가치를 기록하는 것이므로 이번엔 그게 무엇이라도 직접 그려보고 싶다는 동기와 의지가 생겼다. 아마 나에게 가장 소중하고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사랑하는 딸과 남편이 함께하는 어떤 순간을 그리게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전시 말미에 에드워드 호퍼의 다큐 ‘호퍼: 아메리칸 러브스토리’를 시청했다. 평생 말이 많은 편이 아니고 과묵했던 그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말로 표현할 수 있다면, 그림을 그릴 이유가 없을 것이다.

 글에도 적용되는 말이 아닐까? 어떤 순간은 너무 기이하고 값진 것이어서 어떤 말과 글로도 표현할 수 없을 것이다. 적확한 단어나 표현을 찾기가 어려울 것이다. 그런 것들을 그림으로 표현하고 기록하는 사람. 화가. 에드워드 호퍼와 같은.


 이번 전시를 보면서 호퍼의 작품들은 그의 인생 여정동안 자신에게 의미 있는 순간들을 포착한 기록이며, 시간의 흐름에 따른 그의 발전과 성장을 보는 것 같았다. 나도 매일 글을 쓰며 내 인생 스토리를 기록한다면 훗날 나의 글은 지금의 글보다 더 깊이 있고 통찰력 있는 것으로 성장과 발전을 도모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2023.6.1.(목) 전시 ‘에드워드 호퍼: 길 위에서’를 관람했다.




생각하고 다짐하고 계획하는 나와는 달리 바로 실천하는 내 남편의 아이패드 드로잉(<라이프사이클>, 2023, 연필에 유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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