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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riting Choenghee May 24. 2023

<나의 뉴욕 수업>을 읽었다.

온전한 나를 찾기 위한 여행 그리고 쓰기

 책 <나의 뉴욕 수업>은 괴테처럼 외국으로 여행을 가 호퍼, 브론테처럼 온전한 자신을 발견하고 성장하기 위해 뉴욕으로 간 저자 곽아람의 스토리이다.



 괴테는 37세 때인 1786년 9월 이탈리아로 떠나 1788년 6월 바이마르로 돌아온다. 그는 1786년 9월 17일 베로나에서 이렇게 썼다. “내가 이 놀라운 여행을 하는 목적은 나 자신을 속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여러 대상을 접촉하면서 본연의 나 자신을 깨닫기 위해서다.” (책 9쪽 내용 중)
요한 하인리히 빌헬름 티슈바인, 「창가의 괴테 」, 종이에 수채, 41.5 X 26.6cm, 1787년, 괴테하우스, 프랑크푸르트


 뉴욕에서의 1년 동안 나는 매일 썼다. 낯선 환경, 새로운 것들과 부딪히며 온몸으로 체득한 생경한 감각을, 모조리 붙들어 글로 표현하고 싶었다. 그 글쓰기는 나를 위한 훈련이었을 뿐, 그 누구를 위한 것도 아니었다. 누군가 읽어주면 좋겠다 생각해 소셜 미디어에 기록했지만, 아무도 읽지 않더라도 상관없었다. 쓰는 행위만으로도 나는 충족되었으니까. ‘나’를 재료로 한 그 집필의 과정에서 ‘나’라는 사람은 점점 또렷해졌다. 손에 잡힐 듯 구체적으로 내 것이 되었다. 나는 괴테가 언명했듯 “여러 대상을 접촉하면서 본연의 나 자신을 깨달았”고, 호퍼의 말처럼 “나 자신에게 의지해” 썼다. (책 12쪽 내용 중)
에드워드 호퍼, 「자화상」, 종이에 목탄, 45.6 X 30.7cm, 1903년, 스미스소니언 국립초상화갤러리, 워싱턴 D.C.


 연수기간 중 기억에 남는 일들이 숱하게 많지만 가장 행복하고 뿌듯한 충족의 순간은 메트에서, 모건라이브러리에서, 강의실에서 15~16세기 독일로 돌아가 뒤러를 논하던 금요일 오전의 그 수업시간이다. 오래도록 두고두고 기억날 소중한 시간이라 잊지 않기 위해 나는 ‘오늘의 뒤러‘라는 제목의 일기로 그 수업을 매번 기록해 두었다. 학점을 받아야 하는 것도 학위를 따야 하는 것도 아닌 상태로 듣고 싶은 수업을 듣고 있는 그 상황이 내가 뉴욕에서 누리는 궁극의 사치가 아닌가 생각했다. 1월의 마지막 월요일이 생각난다. 수업이 끝나고 저녁 약속까지 시간이 남아 도서관에 앉아 금요일 뒤러 수업에 필요한 리딩을 했다. 도서관은 조용했고 겨울 햇살은 아늑했고 논문을 읽는 동안 나는 15세기 유럽으로 가 있었다. 뒤러의 이탈리아 여행에 대한 논문이었다. 나는 다시 내가 뉴욕에 올 때 가졌던 질문, 괴테에게 이탈리아 여행이 끼친 영향을 내가 뉴욕에서 체류하는 동안 받을 수 있을 것인가… 뉴욕에 갓 와서 모건라이브러리의 샬럿 브론테 전시를 보고 가졌던 의문, 브론테에게 벨기에 여행이 준 그 자극을 내가 이 도시에서 얻고 있는가… 또다시 그러한 물음 속으로 빠져들었다. 이탈리아에서 뒤러가 화가로서 베로네세, 만테냐, 혹은 폴라이올로로부터 수많은 것들을 배우고 시각적 자극을 받았던 것처럼, 나는 글 쓰는 사람으로서 또 다른 종류의 자극을 받고 있는가. (책 98쪽부터의 내용 중)
알브레히트 뒤러, 「자화상」, 나무패널에 유채, 67.1 X 48.9cm, 1500년, 알테피나 코테크, 뮌헨


 To you I am neither Man nor Woman - I come before you as an Author only-it is the sole standard by which you have a right to judge me-the sole ground on which I accept your judgement. (여러분에게 저는 남자도 여자도 아닙니다. 저는 오직 저자로서만 여러분 앞에 서 있습니다. 이것이 여러분이 저를 판단할 권리가 있는 유일한 기준이며, 제가 여러분의 판단을 수락하는 유일한 근거입니다.) 나는 샬럿의 드레스 옆, 벽에 적힌 문구를 소리 내어 읽어보았다. 내게 주어진 뉴욕에서의 1년간의 자유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할 것인지에 대해 가닥이 잡힐 것 같았다. 독립 의지를 가진 자유로운 인간으로 살겠다. 당위가 아닌 욕망을 좇으면서 최대한 많은 경험을 하겠다. 그리고 그 경험을 바탕으로 좋은 글을 쓰겠다. 괴테처럼 되겠다고 떠나온 여정이 샬럿 브론테를 통해 어느 정도 구체화되는 것 같았다. (책 171쪽부터의 내용 중)
조지 리치먼드, 「샬롯 브론테」, 종이에 분필, 60 X 47.6cm, 1850년, 국립초상화박물관, 런던






 이 책을 쓴 저자는 조선일보에서 기자 생활을 시작해 현재 문화부 출판팀장으로 일하고 있는 곽아람 기자이다. 저자는 괴테와 비슷한 나이에 괴테처럼 외국으로 여행을 가 호퍼, 브론테처럼 온전한 자신을 발견하고 성장하기 위해 뉴욕으로 갔다. 뉴욕으로 가기 전에는 많은 한국인들이 그렇듯 타인의 기준에 자신을 맞추려 노력하며 살아왔다. 나이에 맞게, 기자답게 항상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며 압박에 시달리면서.


 위에 인용한 책 속 내용들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부분들이다. 항상 쓰고 싶었던, 쓰는 것을 직업으로 하는 사람을 부러워하던, 다이어리도 잘 꾸미지 않더라도 꼼꼼히 쓰는 사람이 멋져 보이는 나는 전혀 쓰지 않는 인간이었다. 학창 시절부터 임용고시를 합격하기까지 공부할 때조차도 쓰기보다 눈으로 계속 읽으며 공부하는 편이었다. 그 흔한 SNS도 잘하지 않는 편이라 기록은 거의 하지 않았고, 일기는 초등학교 방학 숙제로 썼던 기억밖에 없다. 이 책의 저자처럼 해외여행을 나도 간 적이 왜 없겠는가. 하지만 사진, 동영상으로만 남겨뒀지 글로 쓴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하지만 마음속에 항상 자신의 생각과 감정들을 깔끔한 단어와 표현들로 차근차근 써 내려가는 사람들이 항상 멋있어 보였고, 그들처럼 쓰고 싶었다. 이 책을 읽어가면서, 그림, 화가와 관련된 저자의 지식과 감상적인 내용들도 유익하고 흥미로웠지만, 뉴욕에 있으면서 하루도 빠짐없이 자신을 발견하는 글쓰기를 했다는 부분들이 더 와닿았던 이유도 이런 나의 마음에서 기인했을 것이다.


 나는 올해 우리 나이로 35세이다. 저자가 이 책을 위해 뉴욕으로 여행을 간 나이 38세보다 어리지만 비슷하다. 지금까지 쓰지 않았던 나는 쓰지 않았기 때문에 생각도 많이, 깊게 할 필요가 없었다.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에 나에 대해 발견할 기회가 많지 않았고 결과적으로 나는 스스로에 대해 잘 모른다. 모르는 것 같다는 표현보다 모른다라는 표현으로 단정할 수 있을 정도다. 옷을 사거나, 음식을 먹거나, 무언가의 선택의 기로에 있을 때 내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잘 모르겠는 순간이 다수이며, 그 순간 동행하고 있는 사람에게 나에 대해 묻고 그 평을 통해 결정을 하는 경우가 많다. 또 지금까지 깊게 사유한 적이 없다 보니 내가 쓰는 글의 깊이도 깊지 않은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브런치스토리를 시작하고나서부터는 생각하는 시간이 많아졌다. 그래서 요즘 이런 내가 낯설기도 하면서 새로운 모습이라 설렌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추후 자세히 쓰고 싶다.


 저자가 나와 비슷한 나이에 스스로 안의 자신을 알아가기 위한 여정을 떠났듯, 나도 육아휴직을 하는 1년의 시간 동안 많은 것을 경험하며 생각하고 느낀 것들을 글을 쓰며 ‘나란 인간은 누구인가’를 발견해 봐야겠다. 진짜 도통 나는 나를 잘 모르겠다.


 책 <공부의 위로>, <쓰는 직업>을 통해 저자를 알게 되었다. 이번 책 <나의 뉴욕 수업>으로 저자의 <미술 출장>, <어릴 적 그 책>, <모든 기다림의 순간, 나는 책을 읽는다>, <그림이 그녀에게> 등의 다른 책들도 읽어보고 싶어졌다. 그리고 6월 초에 에드워드 호퍼 전시를 보러 서울시립미술관에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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