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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riting Choenghee Jul 14. 2023

비자발적 디지털 디톡스

영상 디톡스가 더 필요할지도

 출산 후 육아를 하면서 디지털 디톡스를 당하게 되었다. ‘당하다’라는 표현을 사용한 이유는 휴대폰, TV 등 디지털 매체를 사용하지 않는 상황이 자발적으로 일어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결혼 전엔 참 많이도 TV, 휴대폰으로 OTT 쇼, 드라마 등 영상들을 봤다. TV를 보다 볼만한 프로그램이 없으면 휴대폰으로 볼 것을 찾았다. 해외 프로그램도 너무 재미있고, 볼 것 천지였다. 항상 보고 싶은 것들이 있었고, 봐야 할 것들로 가득 찼다. 독서도, 운동도, 쇼핑도, 여행 계획도 다 휴대폰으로 했었다. 휴대폰 없으면 생활이 어떻게 돌아갈지 가늠이 안 될 정도였다. 뿐만 아니라 일도 폰으로 했으니. 일정관리도 앱으로, 코로나19 시기에는 온라인으로 수업 영상을 올리고 과제를 부여한 후 수업 참여 유무, 과제 이행 유무를 확인하는 학생들의 학습 관리 앱으로 교수 활동을 했으니까.




 그런데, 결혼을 하면서 신혼 가전으로 TV를 사지 않았다. 남편도 TV가 없었으면 했고, 나도 그러고 싶었다. TV의 영향력이 얼마나 큰지를 보여주는 증거가 바로 나이기 때문이다. TV는 해야 할 중요한 일과 건강하고 좋은 취미 활동들을 미루게 할 만큼 중독성이 큰, 없으면 더 좋을 것 같은 물건이었다. 그리고 거실의 서재화가 나의 로망 중 하나였다. TV만큼 책을 좋아해 좀 더 독서가 용이한 환경을 만들고 싶었고, 동시에 자녀들에게 책의 재미와 중요성을 자연스럽게 그리고 일상적으로 공유하고 싶었다. 


 책 <EBS 당신의 문해력>에서는 다음과 같이 책 읽기의 중요성을 말하고 있다.

 “디지털 기기도 재미있게 즐기고 책도 재미있게 잘 읽으면 아무 상관이 없다. 하지만 문제는 디지털 기기에 빠진 아이들은 책을 멀리할 가능성이 커진다는 데 있다. 자극적인 것에 익숙해진 아이들은 사람의 감정을 읽거나 책을 읽는 것과 같은 느린 자극에는 반응하지 않는다. 이것이 바로 디지털 기기에 빠진 아이들이 책으로부터 멀어지는 이유이다. “ (중략)
 “실험 결과 오디오북을 듣거나 동영상을 볼 때는 전전두엽이 크게 활성화되지 않은 반면에 줄글을 읽을 때는 전전두엽이 크게 활성화되며 붉은색으로 나타나는 것을 관찰할 수 있었다.
 비슷한 내용을 보더라도 매체에 따라 전전두엽의 활성화 정도가 달라지는 이유는 줄글을 읽고, 오디오북을 듣고, 동영상을 보는 것이 각각 질적으로 다른 과정이기 때문이다. 즉 글을 읽는 것은 굉장히 고차원적이고 능동적인 정보 처리 과정이며, 이로 인해 뇌 운동이 훨씬 더 활발하게 일어나는 것이다. “




 집에 TV가 없으니 디지털 디톡스가 되었나? 디지털 디톡스는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다. 왜냐하면 TV 자리를 휴대폰이 꿰찼으니까. 요즘은 TV 프로그램도 휴대폰으로 OTT를 통해 많이들 본다고 한다. 임신 동안에는 몸도 무거워 누워 있는 경우가 많았고 그럴 때면 여지없이 휴대폰을 들고 넷플릭스, 웨이브 속 영상들을 보고, 거기에 유튜브 영상들도 놓치지 않고 보았다. 임신 중 자고 있는 남편을 옆에 두고 밤새 넷플릭스로 ‘지금 우리 학교는’을 봤던 기억이 있다.


 출산 후에는 어떤가? 디지털 디톡스가 전보다는 비교적 많이 진행된 것 같다. 육아에 치여 현실적으로 휴대폰을 할 시간이 많이 없다. 그리고, 아기에게 영상을 보여주고 싶지 않은 마음과 부모로서 우리부터 모범이 돼 보이고 싶다는 마음으로 휴대폰을 가급적 사용하지 않으려고 노력 중이기도 하다. 이러한 노력의 일환으로 책을 전보다 더 가까이하게 되었다. 우리도 폰을 하지 않으니 TV도 없겠다 제일 재미있는 것이 책이 되어버린 것이다. 결과적으로 집이 도서관으로 탈바꿈하였다. 심지어 남편은 육퇴 후 자고 있는 딸을 깨우고 싶지 않아 이북 리더기로 독서를 하다 잠이 든다.


 우리가 책을 읽고 있으면 딸이 다가와 우리가 읽던 책을 집어 간다. 딸에겐 너무나도 많은 글밥과 흥미를 자아내는 그림이 하나도 없어 책이 아니라 그저 많은 장난감들처럼 만지고 던지고 물고 빠는 물체 중 하나이겠지만 물성 있는 책과 가까워지는 시간일 것이다. 차차 책으로 인지하고 아기 때부터 친숙해져 온 책을 어느 순간에는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것이라 기대하고 있다.




 그런데 요즘, 디지털 디톡스가 필요하다고 스멀스멀 내 눈이 신호를 보내는 듯하다. 브런치 스토리로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부터 휴대폰 사용량이 다시 늘었다. 휴대폰으로 글을 쓰고, 휴대폰으로 브런치스토리 작가님들의 글을 읽는다. 눈이 피로해졌다. 하지만 그러다 아이패드 드로잉에 관심이 있던 터라 그림체가 따듯한 브런치스토리 작가님을 우연히 발견하였고 출간하신 책을 도서관에서 빌려 읽어보기도 했다. (아래에 작가님을 소개해 드려요.)

https://brunch.co.kr/@yueunkimmm


 브런치스토리 덕분에 글을 쓰며 생각 정리도 하고 글을 잘 쓰고 싶어 물성 있는 책과 더불어 브런치북, 브런치매거진도 많이 읽게 되었다. 요즘 내 일상은 남편과 육아, 글쓰기, 그리고 독서로 간략히 요약할 수 있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이 휴대폰, 이북리더기 등 디지털 기기로 거의 이루어지고 있어 좋은 건지 나쁜 건지 잘 모르겠다. 육아 또한 딸의 이유식 먹는 시간과 약 복용 시간 등을 앱으로 기록하고 있으니까. 디지털 디톡스는 안되고 있지만 소위 바보상자로 일컬어지는 TV 프로그램들, 그리고 비슷한 OTT 프로그램들, 유튜브 영상들은 거의 보지 않고 있다.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위에 언급한 요즘 나의 상황이 개선이 필요한 상태인 것인지.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다 디지털 디톡스는 언제, 왜 필요한가에 대한 생각으로 귀결되었다. 제일 중요한 것은 스스로 디지털 매체를 사용하는 것을 조절할 수 있느냐, 나에게 도움이 되는 건강한 방향으로, 생산적으로 활용할 수 있느냐의 여부이다. 만약, 남들의 SNS, 자극적인 영상에 유혹당해 나에게 중요한 일들에 나를 위한 시간을 쓰지 못하고 그저 허비하고 있다면 디지털 디톡스가 필요한 시점이자 이유이다. 그러므로, 나는 현재 디지털 디톡스가 절실히 필요한 상황은 아니다. 하지만, 눈이 점점 피로를 느끼고 있으니 휴대폰 사용량을 조금은 줄여야겠다.


 TV, 넷플릭스 등과 같은 OTT, 유튜브를 끊는 것에 대해 약간의 두려움이 있었다. 타인과 대화 시 대화의 많은 소재가 사라지는 것이니까. 요즘 트렌드를 따라갈 수 없으니까. 끊어보니 신세계가 펼쳐졌다. 가끔 친정에 가 TV를 보게 되는데 TV가 재미없더라. 요즘 재미있는 프로그램들이 없기도 하지만 나의 뇌, 몸자체가 영상 디톡스가 되어버린 느낌. 예전처럼 재미있지 않았다. 집으로 돌아가면 다시 재미있는 글쓰기와 독서의 바다로 빠져들 수 있다는 자신감과 안정감, 기대감이 더 나를 들뜨게 했다. (여름이라 과몰입했나 보다.)




 디지털 디톡스, 아니 더 정확하게 영상 디톡스를 통해 텍스트의 바다에 빠져보자. 나에게 더 집중하고 더 성장할 수 있는 기회가 넘쳐나는 바다에.  



*글 제목 이미지 출처: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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