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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riting Choenghee Dec 14. 2023

행복에 대해서

윤석남 작가의 개인전을 다녀와서

 마흔에 그림을 독학으로 시작하여 한국의 여성주의 미술을 개척하고 발전시킨 작가이자 제23회 이인성미술상 수상자인 작가 윤석남(1939~, 만주)의 개인전을 보러 대구미술관을 방문했다. 그는 어머니와 모성에 관한 자전적 이야기를 자신의 예술의 뿌리로 삼고 이후 정체성, 생명과 돌봄, 여성사로 주제를 확장시켜 역사 속 여성을 재해석하는 작업에 몰두하고 있다고 한다. 그 활동들을 전시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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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례로 정칠성(2020), 김시숙(2022) 초상이다. 한지에 분채. 두 작품 모두 크기는 210 x 94cm.


 그중 첫 번째로 한국 여성 독립운동가를 다룬 채색 초상화 20점을 볼 수 있었다. 미술관의 거대한 벽면들을 허한 느낌 없이 가득 채우는 그림의 크기와 그림 속 주인공들을 표현한 선명하면서도 단호한 색채, 또 그들의 명확한 안광과 눈동자는 작가가 여성 독립운동가들을 진심으로 존경하며 많은 이들에게 그들이 기억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진심으로 전달되도록 했다. 실제로 그러한 바람을 갖고 더 많은 초상화를 그리는 것이 자신의 목표이자 과업임을 밝혔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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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화상(2018). 136 x 93 cm. 자화상은 왜 다른 작품들보다 조금 작게 그렸을까.


 윤석남 작가의 자화상이 걸려 있었다. 아 이렇게 생기신 분이구나. 이런 옷 스타일을 입고 이런 색을 좋아하시는구나. 하며 앞의 그녀의 작품들을 보며 상상해 왔던 내 머릿속 작가님과 비교, 대조하며 감상했다. 상상 속 작가님과는 사뭇 다른 분이 작품에 올라와 있어 살짝 놀라긴 했다. 동시에 작가님만의 어떤 분위기가 실제 작가님이 앞에 계시는 것이 아니라 그림으로 보는 것임에도 뿜어져 나오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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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특히 전시에서 주목해서 본 것은 작가가 그림일기처럼 그린 작품들이었다. 2001년에서 2003년 사이에 일기를 쓰듯 수많은 드로잉을 남겼다고 한다. 작가의 다른 작품들과 비교하면 작품으로 볼 수 없는, 정말 말 그대로 일기로 가볍게 보일 수 있는 것들이었다. 하지만 작가의 그림에 대한 진정한 열정과 그걸 증명하는 그간의 성실함과 습관화된 결실을 그 작품들로 보는 것 같아 다른 작품들만큼 가볍지 않게 다가왔다. 또한 드로잉의 제목과 글귀는 그녀의 문학적 면모를 볼 수 있어 독서와 글쓰기를 좋아하는 나로서는 무척 흥미로운 부분이었다.


 작가는 마흔에 그림을 독학으로 시작했다고 한다. 이는 취미활동에 그치지 않고 1982년 개인전을 시작으로 40여 년간 한 해도 거르지 않고 꾸준히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고 한다. 미술상까지 거머쥔 그녀다. 이러한 내용을 작가 소개란에서 읽고 작품들을 하나하나 눈으로 음미하면서 작품마다 그만의 스타일을 즐기기도 하고, 작품이 우리에게 던지는 의미와 메시지들을 읽어낼 때 그녀가 주는 응원과 위로를 동시에 받는 듯했다. 무언가를 좋아하고 하고 싶어 졌을 때 나이는 진정 숫자에 불과함을, 굳이 잘 그리고 잘 쓰고 잘하지 않더라도 매일 꾸준히 해나가면 된다는 것을 그녀가 그녀의 작품들로 말해주는 듯했다.


 실제로 작가는 이 기간 동안 작업이 잘되지 않아 답답하고 불안한 감정을 느끼며 하루 종일 드로잉 작업에 몰두했다고 한다. 규칙적인 습관처럼 매일 꾸준히 그리고 어떤 날에는 몇 장씩도 그렸다고. 그런 시기를 거치고 나니 그는 작업이 머리로 하는 것이 아니라 몸을 움직이고 손을 쓰며 스스로를 단련하는 과정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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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더욱 놀랍게 한 작품은 <1,025: 사람과 사람 없이>였다. 버려진 유기견을 보살피는 이애신 할머니의 사연을 우연히 접하고 그의 삶에서 받은 충격, 감동, 그리고 고마움으로 1,025마리의 유기견을 나무로 조각하여 작품을 만들기 시작했다고 한다. 모든 생명체는 존귀함을, 생명을 경시하는 인간의 이기심에 대한 저항을, 모든 생명은 공존해야 함을, 그럼에도 결국 인간애를 전달하는 듯했다. 이 작품 역시 작가의 자신의 작업에 대한 열정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다. 한 마리 한 마리 다 다른 1,025마리의 유기견들을 자신의 화법과 조각으로 특색 있게 완성해 낸 것은 과히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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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지막 작품 <핑크룸 VI>은 작가의 연작 중 하나로, 겉으로 화려해 보이는 핑크, 앉을 수 없는 소파, 유리구슬, 거울 등은 불안하고 불편한 작가 자신의 모습을 형상화한 것이라고 한다. 사회적 기대와 현실적인 갈등 속에서 가정 내 여성이 겪는 압박감을 시각적으로 표현한 것이라고.


 1930년대 출생 작가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의 예술미와 그만의 독특한 스타일이 빛나는 전시였다. 약간의 선입견을 발동시켜 본다면 고전작품들처럼 동양의 자연을 위주로 한, 다양하고 선명한 색채보다 흑백 위주의 비슷한 채도의 색으로 표현된 작품들이지 않을까 쉬이 예상할 수 있다. 하지만 그의 작품들은 그만의 예술 세계와 결코 시대에 뒤쳐지지 않는 윤석남이라는 아티스트의 독특한 화법으로 가득 차 있었다.


 예술을 하는 사람은 그만의 무언가로 많은 이들과는 다른 유일한 표현방식이 있다. 나는 항상 그것이 부러웠다. 나만의 무언가를 갖고 있고 그것으로 표현을 하여 다른 이들에게 어떤 울림을 줄 수 있다는 것이.  




 윤석남 작가의 작품들로부터 느낀 감정과 생각들이 좋았다. 며칠간 전시 감상의 여운이 계속 남아 떠나질 않았다. 그중에도 명징하게 남아있던 것은 행복이라는 감정이었다. 작가의 뼈를 깎는 창작의 고통은 모른척하려 한다. 비교적 늦게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시작했다는 사실도 외면하려 한다. 이외에도 내가 모르는 작가와 관련된 많은 실상들에 눈을 감은 채 내 눈에는 젊지도 않은 1939년생 작가가 그저 행복해 보였다. 


 비록 늦었지만(작가 자신은 늦었다고 생각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자신이 좋아하는 그림에 흠뻑 빠져 하루도 빠짐없이 매일 몇 작품씩 그린다는 것. 매년 전시를 하고 미술상까지 수상했다는 것. 잠시만 그 작가에 빙의를 해봐도 행복할 것 같다.


 잘하고 못하는 능력 문제는 차치하고서라도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명확히 알고 매일 그것을 한다는 것은 행복의 요인 중 하나가 아닐까.


 잘하고 못하는 능력에 대해서도 조금 생각해 보자. 아주 잘하는 것보다 내가 더 올라갈 수 있는 목표를 가질 수 있게 약간의 능력 부재도 행복의 요소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무언가를 성취하고 싶거나 어떤 목표를 이루고 싶다는 욕구. 그것을 위해 새로운 일상을 계획하고 시작하는 설렘. 지루해질 수 있지만 매일 무언가에 시간과 노력을 투자하는 몰입의 경지. 그 과정에서 조금씩 배우고 성장하는 순간들을 발견하는 것. 이 모든 것들이 한 사람을 행복하게 하는 것들 아닐까.


 너무 잘하면 재미없지 않을까. 할 때마다 고민이나 도전 없이 쉽기만 하다면 목표랄 게 생길 수도 없다. 주위의 찬사를 받아도 큰 기쁨이나 만족감이 없을 것이다.


 의식의 흐름으로 돈의 경우에도 나는 같은 생각이다. 돈이 너무 많아도 삶이 재미없지 않을까.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만 있으면 사실 무엇이라도 다 할 수 있는데 돈으로 산 물건, 경험들이 주는 찰나의 즐거움이 지나고 나면 뭐가 남아있을까. 1, 2년으로 끝나지 않는 긴 인생동안 어떤 것으로 진정한 행복을 채울 수 있을까. 많은 돈을 가진 재벌들이 불법을 저지르고 마약에 빠지며 자신의 인생을 망치는 것도 어쩌면 긴 세월 동안 어떤 목표도 가질 수 없고 진심으로 열정을 다하고 싶은 자신의 무언가의 부재에서 오는 허망함이 주원인이 아닐까.


 나는 요즘 행복하다는 감정을 자주 느낀다. 하고 싶은 것이 있지만 그 분야의 천재가 아니다. 지독스럽게 가난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부자도 아니다. 하지만 그 부족함이 삶을 풍요롭게 해 줄 인생의 목표를 갖게 한다.


 동시에 목표를 이뤄가는 과정을 사랑하는 가족들과 함께 간다. 과정의 고단함도, 목표를 이뤘을 때의 행복감도 함께하는 이들 덕분에 그 행복감이 속이 닳 정도로 달콤하다.


 남편이 최근 읽은 두 책에서 비슷한 이야기를 하는 부분이 있다고 한다. 

 먼저, 강용수의 <마흔에 읽는 쇼펜하우어>에서 다음과 같은 부분이 있다고 들려주었다.

특히 큰 노력 없이 경제적인 부를 가졌다면 풍요 속 공허함은 견딜 수 없다.
곤궁이 민중의 계속적인 재앙이듯이 무료함은 상류사회의 재앙이다.
사람은 꿈을 이루고 성공하고 싶어 한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꿈을 이루고 성공할수록 권태에 빠져드는 것을 피할 수 없다. 이를 증명하듯이 크게 성공한 부자들 가운데 인생의 따분함을 견디지 못해 스스로 세상을 떠나는 사람도 있다.


 소설가 정혁용의 에세이 <문밖의 사람>에서는 아래와 같은 내용이 있단다.         

얼마의 돈이 필요할까? 1억? 10억? 100억? 돈만 벌리면 인간은 행복할까? 시간과 노력이 걸리는 건 두 번째 문제고, 삶은 한 번 뿐이라는 게 나 같은 인간에게는 더 큰 문제인 것 같다. 그런 성공도 어렵지만 그 정도의 돈을 벌려면 이미 삶과 시간을 거의 다 쓴 후일 테니까.


 한 번도 지금보다 더 갖지 못해 불행하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현재에 감사하며 조금씩 성장하는 목표를 갖고 그것을 이뤄가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과정 모두 행복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무한 긍정성이 지금의 나를 만드는 데 한몫을 대단히 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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