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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riting Choenghee Dec 27. 2023

딸을 보고 뭉클해졌다.

계속 뭉클해질 수 있는 사람이고 싶다.

 딸이 혼자 잘 놀고 있길래 거실 소파에 앉아 요즘 읽고 있는 소설 <작가와 연인들>을 펼쳤다. 알고 있다. 1분도 채 안 돼 딸이 나의 독서 시간을 방해할 거라는 걸. 슬프게도 그 예상은 틀리지 않았고 딸은 나에게 다가와 내가 읽고 있던 책을 채갔다. 이런 적이 지금까지 셀 수 없이 많다.



 오늘은 사뭇 달랐다. 딸이 내 책을 채가는 것에서 그치지 않았다. 자신에겐 너무나 무거운, 두꺼운 그 책을 들고 열 발자국 정도를 더 걸어 자신의 책걸상까지 걸어가 의자에 엉덩이를 조심히 대고 앉더랬다. 그 후 책상 위에 그 책을 올리려고 수차례 시도하더니 실패하자 이내 자신의 배 위에 책을 올려 읽는 모습이었다. 긴 시간은 아니었지만 비교적 오래 딸은 책을 들고 보더라.


 

 그런 딸의 모습을 지켜보는데 왠지 모르게 가슴 어느 한 편에서 뭉클함이 일었다. 16개월 갓 된 아이에게 느껴지는 저 낯섦. 나이에 맞지 않은 의젓함이 보이는 것이 딸에게서 책 읽는 나를 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벌써 저렇게 컸구나. 언제 저렇게 컸을까. 엄마가 하루하루를 시간이 어떻게 가는지 모른 채 두려움, 조급함, 걱정을 안고 육아 파도에 정신없이 휩쓸려가고 있을 때 감사하게도 너는 조금씩 성장하고 있었구나.


 딸이 자신의 책상 앞에 앉아 내 책을 읽는, 아니 아직 읽지는 못한다, 보는 모습이 마치 슬로 모션이 걸린 영상의 한 부분 같았다. 그 순간에 느낀 많은 감정들을 뭉클함이라는 한 단어로 표현했는데 글을 쓰며 곰곰이 생각해 보니 그 뭉클함은 감사함이자 기특함, 대견함, 그리고 서툰 엄마의 미안함이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딸은 내가 읽는 책을 보는 것을 넘어 읽을 것이다. 게다가 내가 좋아하는 책도 함께 읽고, 딸이 추천해 주는 책을 내가 읽고, 엄마가 쓴 글을 딸이 읽고 딸도 글을 쓰고… 많은 것을 함께 하는 상상이 그 복합적인 감정을 뒤따랐다.


 딸이 성장하는 과정 속에 서로 닮아가는 모습들을 더 발견할 때면 그땐 지금의 뭉클함만큼 뭉클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복합적인 감정이 단조로워지고 슬로 모션이 아니라 빠르게 지나가는 장면이 될지도 모른다. 익숙해짐에 따라 당연한 것이 될지도 모른다.


 그 순간들이 올 때마다 놓치지 않고 뭉클해지는 엄마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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