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작으로 시작해 중독과 강박으로
2023년도 얼마 남지 않았다. 올해 후회 없는 시간을 보내며 달려왔는가... 에 대한 생각으로 이어지는 것은 이맘때 머릿속에서 일어나는 자연스러운 사유이리라. 남들에 비해 비교적 지나온 시간들에 집착하고 땅을 치며 후회하는 성격은 아니다. 다만 좀 더 나에게 남은 시간을 알차게 쓰고 싶다는 생각은 항상 한다. 어릴 때부터 삼십 대 중반이 된 지금까지도 이 생각을 한다는 것은 아무 변화 없이 똑같은 상태를 유지 중이라는 말이 아닐까.
더 이상 이렇게 살아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불현듯 강하게 들었다. 나이가 40, 50, 60, 그 이후에도 똑같은 생각을 한다면 약간의 비참함까지도 느낄 것 같았다. 그 오랜 시간 동안 나에게 변화나 성장은 일어나지 않았다는 뜻이니까. 더 깊게 생각해 보면 나를, 나의 삶을 위한 노력 없이 시간이 이끄는 대로 그저 흘러가듯 살았다는 것이기에. 이러한 삶의 방식이 무조건 틀린 것이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나는 내가 바라는 나의 모습이 있고 그 모습을 향해 꾸준히 노력하여 점진적인 성장을 보이는 삶을 살고 싶다.
올해가 다 가기 전 조금 더 빨리 더 나은 나를 위해 노력하는 삶을 시작하고 싶었다. 당시의 마음은 노력을 쏟아붓고 싶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는데 그곳 중 하나가 운동이었다. 육아휴직 기간 동안 내 몸을 챙기지 못하는 시간이 차츰 쌓여가자 우울증, 무기력증과 체중 증가, 게으른 생활 태도가 몸에 배는 느낌이 들었다. 이렇게 살다가는 정말 걷잡을 수 없는 길로 빠질 것 같아 결혼 전까지 자주 했었던 러닝을 다시 시작했다. 가볍게. 적어도 2023년 마지막날까지는 매일 20~30분씩 달려보기로.
12월 18일 월요일부터 12월 24일 일요일까지 7일 중 하루를 뺀 6일을 달렸다. 달리지 못했던 그 하루도 너무나 달리고 싶었던 날이었으나 혼자 딸을 돌봐야 했어서 어쩔 수 없었다. 결과적으로 지난 일주일이 나에게 터닝포인트가 될 것 같다. 하루를 시작하면 언제 달릴까 고민하며 정말 어쩔 수 없는 이유가 아닌 이상 그날은 무조건 달리고 싶어 꼭 달리고 말겠다고 다짐하는 나를 매일 발견한다.
체중이 전보다 늘어난 상태에서 러닝을 시작하니 몸이 무겁고 관절 여기저기에 무리가 가는 듯 느껴졌다. 그럼에도 1분이든, 2분이든, 5분이든 그 시간을 멈추지 않고 뛰다 보면 어느새 심장도 함께 뛰고 있다. 그런데 이상하게 멈추고 싶지 않다. 들숨, 날숨이 쉴 새 없이 드나드는 코와 입도, 무거운 몸을 지탱해야 하는 관절도, 여느 때보다 빨리 뛰고 있는 심장도 몸의 모든 곳이 힘든 상황인데 계속 달리는 상태를 유지하고 싶은 건 뛸 때마다 이해가 되지 않는다. 분비되는 호르몬과 같은 이성적이고 과학적인 용어들로 그 상태를 이해하고 싶지 않다. 그저 그 순간의 만족감을 감성적으로만 표현하고 느끼고 싶을 뿐.
내가 좋아하는 러닝을 더 재미있게 즐기기 위해서 체중을 빨리 감량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동시에 달린 지 일주일도 채 안되었는데 러닝을 위한 하체 근육이 조금 형성된 느낌마저 들었다. 날이 갈수록 달릴 때마다 무릎이 조금 더 위로 올라감을 느꼈으니까. 그래서 좀 더 러닝다운 발구름과 무릎 올리기가 용이해진 듯하다. 트레드밀 레벨을 두 단계 올려 달리기도 했으니 말 다했다. 그럼에도 오늘 하루는 쉴까 하는 생각을 왜 하지 않았겠는가. 무거운 몸을 이끌고 아파트 짐으로 내려가 달리고 나면 마음이 그렇게 뿌듯하고 몸은 그렇게 상쾌할 수가 없었다.
게다가 고작 그 일주일 안에 러닝과 나의 협응에 대한 분석까지 이루어졌다. 예를 들면 어떤 속도로 달렸을 때 심박수가 더 높은지, 어떤 자세로 달려야 몸의 통증이 발생하지 않는지 등 말이다. 생각보다 빠르게 달렸을 때 심박수가 높지 않았고, 느린 속도로 중간에 걷지 않고 최대한 오래 달려가면 심박수가 미친 듯이 치솟더라. 또 발과 다리는 11자로 유지한 채 달리고 미드풋 착지를 하며 중간에 걷는 것도 미드풋으로. 힐로 걸었을 때 무릎 뒷부분이 한동안 아팠었다. 팔은 몸 중심부로 살짝 왔다 갔다 움직이며 몸을 최대한 덜 움직이는 방향으로 달려야 한다. 그리고 아쉽지만 체중 감량엔 운동보다 식단임을 한 번 더 확인했다.
러닝을 할 때의 나의 몸과 마음 상태는 어떠한지, 나에게 효과적인 러닝 자세는 무엇인지, 또 계속 뛰고 싶다는 러닝 중독과 하루도 빠트리고 싶지 않다는 강박, 러닝 후의 긍정적인 변화들. 이 모든 것들이 일주일 동안 고작 하루에 한 시간도 아닌 20~30분 동안 2, 3km 정도를 달린 것으로 나타난 것이다.
사소한 차이가 1등과 성공을 만들어 낸다고 한다. 사소한 차이가 쌓여 종국에는 큰 변화를 낳는다고 한다. 작은 것을 얕잡아 보고 '하루에 그거 해봤자 뭐 도움이 된다고. 돈이 나오나 쌀이 나오나'와 같은 생각으로는 계속 시간의 흐름에 맡겨진 삶을 살 수밖에 없다.
알고 있던 삶의 진리이자 유용한 삶의 태도이지만 실천하기가 참 쉽지 않다. 운동뿐만 아니라 내 삶의 전반적인 영역에 사소한 변화를 일으켜 러닝처럼 꾸준한 노력을 이어가 봐야겠다는 다짐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