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가 권남희의 에세이 <스타벅스 일기>를 읽고-일기의 에세이화
최근 읽은 에세이 《스타벅스 일기》는 일본문학을 번역하는 권남희 번역가가 쓴 책이다. 이 책은 귀엽고 유머러스하게 스타벅스에서의 하루하루를 풀어낸 에세이지만 그렇게 얕지만은 않다. 1966년생 번역가이자 에세이스트인 권남희 작가님은 할머니가 되어서도 번역을 하고 싶다는 마음을 잃지 않은 채 이제는 다 큰 성인이 되어 대기업에 취직한 딸과 치매를 앓고 계시는 어머니를 곁에 두고 있다.
동안의 외모에 자칭 소식좌라고 하는 작가님은 겉으로는 강인해 보이지 않는다. 여리여리 그 자체. 하지만 처한 상황 속에서 그가 보이는 모습은 적어도 나에겐 억척스럽고 강인한 여성이었다. 밥도 제대로 챙겨 먹지 못하며 어머니 간병에 많은 시간을 쓰면서도 '스타벅스'의 달달한 음료 한 잔으로 끼니를 대신하며 자신의 업인 번역과 글쓰기를 해나간다. 어쩌면 일상의 고단함과 외로움을 번역과 글쓰기, 달달한 커피 한 잔으로 다독여왔는지도 모르겠다.
책 곳곳 작가님의 유머에 피식피식 웃음이 새어 나왔지만 인생을 먼저 살아간 사람으로서 자신의 소회와 의견을 담담하게 푼 부분에서는 그가 꼰대라 하더라도 스타벅스 옆자리에서 가만히 그의 이야기를 엿듣고 싶은 심정. 궁금하신 분들은 책을 읽어보시라.
책 한 권을 야금야금 읽어나가다 마침내 에필로그에 당도했다. 작가님은 초등학교 때부터 일기 쓰기를 좋아하셨다고. 스타벅스 일기도 스타벅스에서 일을 하기 시작하면서 꾸준히 쓰고 계셨단다. 그러다 소설을 써볼까까지 생각이 드셨다고. 결국 에세이로 탄생했지만 말이다.
스타벅스에서 일하는 날마다 '스타벅스 일기'를 썼다. 처음부터 일기를 쓴 건 아니었다. 스타벅스에서 일하기 시작한 지 두어 달쯤 지났을 때인데, 그날따라 옆 테이블에 사람이 자주 바뀌었다. 테이블 간격이 좁아서 들으려고 하지 않아도 옆 테이블 대화는 강제로 들렸는데, 어느 순간 뒤통수를 탁 치는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아, 스타벅스 오는 사람들을 소재로 연작 단편 소설을 써보자. 제목은 <어서 오세요, 스타벅스입니다>로.' 간단히 스토리도 구상해 보았다. '오, 이거 너무 재미있겠는걸.' 쓰지도 않은 책은 내 머릿속에서 이미 베스트셀러가 됐다.
그날부터 스타벅스에서 마시는 음료와 주위 사람들 얘기를 담은 일기를 썼다. 아쉽게도 몇 달 뒤,《어서 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라는 소설이 나왔다. 제목은 포기. 그러나 스타벅스 일기는 계속 썼다. 원래의 목적은 잊고, 스타벅스 일기를 쓰는 자체가 재미있었다. 초등학교 다닐 때부터 대부분 아이들이 싫어하는 일기 쓰기 숙제를 나는 유난히 좋아했다.
(책 《스타벅스 일기》의 에필로그 내돈내산 '스타벅스 일기' 중에서)
2024년 새해가 밝았다. 나는 무엇에 대해 꾸준히 써볼까? 딸을 낳고 육아를 시작하면서 스타벅스도 일 년에 3번 갈까 말까 한다. 그마저도 스타벅스 무료 쿠폰이 생겨서 가는데 그것도 테이크 아웃. 딸의 활동성은 스타벅스에 머무를 수 있는 시간을 허하지 않는다. 나에게 카페는 권남희 번역가이자 작가처럼 커피 한 잔과 함께 책을 읽거나 글을 쓰거나 일을 하는 장소이다. 테이크 아웃을 한다면 굳이 카페에 가야 하나 싶은 마음. 집에서 커피 머신으로 내려 마신다. 그러므로 스타벅스 일기는 불가능하다. 또 작가님이 이미 쓰셨기에 굳이?
나만 쓸 수 있는 이야기가 무엇이 있을까? 그 소재를 찾아 일기 쓰듯 꾸준히 써나간다면 한 권의 에세이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아니.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나만의 이야기를 솔직하고 진솔하게, 약간은 색다른 표현으로, 깊이 있게, 그 깊이는 나의 경험으로부터 얻은 인사이트와 지혜에서 비롯된다. 동시에 과장과 비유로 양념한 유머도 곁들이면 좋을 것이다. 내가 읽은 스타벅스 일기가 그랬다. 그저 꾸준히 쓰기만 하면 에세이가 아니다. 일기에서 그친다.
그나저나 오랜만에 스타벅스에 가고 싶다. 테이크 아웃하더라도 스타벅스 커피 한 잔 마시며 스타벅스 일기를 읽고 난 후의 남은 감정과 생각들을 머릿속에서 이리저리 굴리며 그 시간을 즐기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