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민함이 나만의 무기가 되도록>을 읽고-섬세함이라는 무기
나는 예민한 편은 아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둔하지도 않다. 타인의 감정을 빨리 눈치채고 내가 어떤 행동을 취해야 할까를 생각하며 안절부절할 때면 예민한 것 같기도 하다. 내 입으로 아니 내 손으로 이렇게 표현하기 쑥스럽지만 넓은 포용력과 쉬이 발휘되는 공감능력으로 벌어진 일을 쉬이 수용하고 좋은 게 좋은 거라고 넘어갈 때면 그리 예민한 편은 아닌 것 같다.
일상에 대한 섬세한 관찰력과 남다른 표현력을 가진 작가들의 작품을 읽을 때면 나는 과연 예민한 것일까, 저 작가들만큼의 섬세함을 갖고 있는 것일까에 대해 스스로에게 반문하게 된다.
일상의 모든 상황에 항상 날이 선 상태에 있는 예민한 사람들은 그 예민함을 통해 자신이 느낀 것, 생각한 것, 겪은 것 등 그 모든 것들이 글감이 될 터. 일정 시간을 할애해 쓴 글로 많은 이들의 공감을 받을 수도 있고, 타인에게 도움이 되는 인사이트나 팁을 제시할 수도 있다.
혹은, 예민함을 좀 더 긍정적으로 활용해 세상 만물을 섬세하게 바라보고 들어보며 맛도 보고 향도 맡으며 느낀 것을 표현한다면? 그들의 오감 자체가 섬세하였기에 표현도 자연스레 다른 이들과 사뭇 다를 수밖에 없지 않을까? 표현 방식은 글도, 그림도, 영상도, 그 무엇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나에겐 둘도 없는 친구가 있다. 내 결혼식에서 각별한 의미를 담아 나의 부케를 받은 친구이기도 하다. 우리는 만 12살 한 중학교 1학년 1반에서 만났다. 2학기 쯤 우리는 별 것 아닌 일로 싸웠다. 당시 다소 예민하다는 생각이 들었던 친구가 자주 나에게 짜증을 냈다. 나는 수차례 참다 이제 그만하라고 역정을 내었고 이후 친구가 사과를 했지만 감정이 말끔히 해소되지는 않았다. 그렇게 2학년때부터는 다른 반이 되었고, 고등학교마저 각자 다른 학교에 배정되어 소식이 자연스럽게 끊겼다가 성인이 되어 우연히 만나게 된 것이었다.
그렇게 만난 우리는 자주 카페에서 수다를 떨거나 혹은 동네에서 만나 산책을 하며 근황 토크를 했다. 그러다 중1 때 다투었던 일을 얘기한 적이 있었다.
”그때 니 진짜 예민했었는데. 내가 니 때문에 얼마나 스트레스 받았는지 모르재?“라고 중학교 때 해소되지 않았던 감정을 털고자 은근히 물어보니
“그땐 내가 좀 그랬었지.”하고 친구가 대답했다.
“근데 어떻게 이렇게 변했는데? 지금 니는 완전히 어른된 것 같다. 성인이 된 것 같다고 해야하나? 아얘 속세의 감정을 초탈해버렸나?”라고 다시 물으면
“사회화가 많이 된 거겠지“하며 웃어버리던 친구였다.
다행히 사회화가 잘 되어 예민함을 통해 타인의 감정을 빨리 헤아리고 공감하며 먼저 배려하는 사람으로 변모한 친구였다. 그리하여 성인이 되어 우연히 만난 이후로는 한 번의 다툼없이 서로 챙겨주는 둘도 없는 친한 친구가 된 것이다.
그런 친구에게 여러번 탄복을 했었다. 어떻게 이렇게 섬세할 수 있냐며. 나는 너처럼 남들 못 챙길 것 같다고. 주위 사람들이 널 좋아할 수밖에 없겠다고. 친구는 큰 것을 주는 사람이 아니라 순간순간 작은 것들을 잘 챙겨 감동을 주는 사람이었다.
어느 날 친구에게 제안을 한 기억이 있다. 니도 글 좀 써보지 왜. 니같은 섬세함이면 책도 잘 쓸 것 같다. 사람들도 공감 많이 할 것 같고. 라고. 그 제안을 들은 친구는 블로그 좀 하다가 요즘 안한다고 했다.
책 <예민함이 나만의 무기가 되도록>을 읽는 내내 그 친구가 생각났다. 육아하느라 자주 연락은 못하지만 친구에게 이 책을 추천하고 싶었다. 그 친구라면 섬세함을 잘 갈고 닦아 요즘 각광받는 콘텐츠 크리에이터나 혹은 작가로서 영상이든 그림이든 글이든 높은 성과의 결과물을 낼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에.
책 속에 나의 예상을 지지해주는 부분들이 많았다.
예민한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들이 있다. 세상을 섬세하게 관찰하고 표현하는 것은 예민한 사람들만의 특권이다. 예민한 사람이 마음먹고 자신의 표현력을 단련한다면, 아름다움을 넘어 경이로운 마음까지 들게 하는 작품이 탄생한다. 당신이 예민하다면 이를 사용해 사람들을 즐겁게 하거나 도움이 될 만한 정보를 만드는 것에 집중해야 한다. 그것이 우리가 예민함을 가지고 태어난 이유이자, 선행을 베풀어야 하는 이유이다. (동일한 책 p.63-64)
그럼 예민함을 어떻게 섬세함으로 바꿀 수 있을까? 단순하다. 창조적인 일에 몰입하면 된다. 예민함이 극도로 치닫는 이유는 에너지 방향성이 타인에게 향해 있기 때문이다. 상처받고 싶지 않아서 자신을 지키고 싶기 때문에 그렇다. 타인보다는 나 자신에게 몰입해야 한다. 예민함을 이용하여, 작품을 만들고 창조적인 일을 하면 여유가 생긴다. 내면이 점차 튼튼해진다. (동일한 책 p.158)
자신의 예민한 성격을 탓한 적이 있는가. 나는 왜 이렇게 태어나서 사사건건 신경 쓸 수밖에 없고 일거수일투족 스트레스를 받으며 살까. 남들은 다 잘 사는 것 같은데 왜 나만 힘들게 살고 있는 것처럼 느껴질까. 등등.
물론 생즉고라 인생 자체가 힘들다지만 자신의 예민한 성향 때문이라고 느껴진다면 책 <예민함이 나만의 무기가 되도록>속 인사이트처럼 좀 더 자신에게 이로운 방향으로 이용해보면 어떨까? 섬세하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