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리안 티처>를 읽고-또 다른 사람들의 버티는 삶에 대해 알게 되었다.
동료 선생님, 특히나 같은 과목의 영어 선생님들이 많이 취득하는 자격증이 있다. 한국어교원자격증이다. 한국어교원이란 국어를 모국어로 사용하지 않는 외국인, 재외동포를 대상으로 한국어를 가르치는 사람을 뜻하며, 자격증 취득 후에는 어학원, 대학 등의 어학당, 사회복지관, 글로벌청소년센터, 다문화가족지원센터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이 가능하다.
영어가 유창한 영어교사들에게 한국어교원자격증은 또 다른 목표가 쉬이 될 수 있기에 많은 분들이 자격증을 취득하기 위해 시간을 투자하는 모습을 많이 봐왔다. 그 모습에 나도 잠시 혹하여 '오 해두면 나중에 잘 활용할 수 있겠는걸. 나도 한 번 해볼까'라는 생각을 했었다. 생각으로만 그쳤지만.
소설 <코리안 티처> 속 등장인물들은 H대학 한국어학당에서 한국어를 가르치는 여성 시간강사 네 명이다. 선이, 미주, 가은, 한희. 주기적으로 돌아오는 재계약 시즌은 그들이 잠시도 안심할 수 없이 매 순간 안절부절못하게 한다. 고용주의 눈치를 보며 시키면 시키는 대로 일을 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다. 혹은 곧 있으면 펼쳐질지도 모르는 그야말로 진짜 모르는 무기계약직을 얻기 위해 조금의 가능성이라도 믿고 자신이 맡은 책임과 의무 이상으로 자신을 혹사해 일을 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주위 시선이나 평가를 신경 쓰지 않고 주체적으로 자신의 교육관을 펼쳐나가거나 또는 한없이 긍정적인 마인드로 학생들과 애정 어린 관계를 맺으며 매 수업 즐겁게 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힘든 상황 속에서도 긍정의 힘을 놓지 않고, 그 척박한 삶에서도 또 다른 희망을 잃지 않는 인물들의 현실이 밝아지는 이야기는 독자의 상상 속에 맡겨졌다. 애석하게도 소설은 현실과 크게 다르지 않다. 벼랑 끝에서 고군분투하며 버티고 살아남는 사람들이 원하는 곳에 안착하는 부분은 아득하게 먼 곳인 듯 보이지 않는다. 고군분투하고 살아내기 위해 버티는 그 과정만이 소설 속에 고스란히 담겨있다.
선이가 수업을 하는 사진이었다. 꽌의 인스타그램이었다. 한글로 '선생님 예뻐요'라고 쓰고 옆에 하트를 붙인 것을 보고 선이는 긴장했던 마음이 잠시 풀어졌다. 사진을 옆으로 넘겨보았다. 다른 학생을 깨우는 선이의 모습, 화이트보드에 판서를 하는 선이의 모습, 양팔을 번쩍 들어 올리고 과장된 표정을 짓고 있는 선이의 모습. 검은색 스커트는 늘 같았지만 블라우스가 다른 걸 보면 여러 날에 걸쳐 찍은 사진이 분명했다. 선이는 점점 불쾌해졌다. 이렇게 몰래 사진을 찍으면 안 된다고 가르쳐줘야겠다고 생각하며 선이는 본문을 클릭해 해시태그를 확인했다.
#Seoul
#HUniversity
#KoreanTeacher
#KoreanGirl
#KoreanPrettyGirl
#KoreanHotGirl
게시글에는 37개의 댓글이 달려 있었다. 대부분 베트남어로 된 댓글이었는데 그중 영어로 달린 댓글이 3개 있었다.
Is she pretty? Really?
She's in the wrong job. She's too pretty to be a teacher.
Fuck, she turns me on.
이 여자가 정말 예쁘냐고 비꼬는 댓글과 선생님이 되기엔 너무 예쁘다는 정반대의 댓글이 나란히 있었다. 마지막 댓글은 '씨발, 꼴리네'라고 번역해야 할 것이다. 선이는 '코리안핫걸'이라는 해시태그를 클릭해 같은 해시태그를 단 게시물을 검색해 보았다. 속옷만 걸치고 가슴을 드러낸 여자들의 사진이 쏟아졌다. 숨이 턱 하고 막히는 것 같았다.
말도 안 돼.
선이는 자신이 꽌에게 가르쳐주고 싶었던 단어, '부당하다'와 '모욕적이다'를 떠올렸다.
꽌 씨, 이건 부당해요. 이건 정말 모욕적이에요. 내게 이런 이름을 붙이지 마세요.
위와 같은 상황 속에 놓인 선이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른다. 마음 놓고 경찰에 신고를 할 수도 대학에 학생을 처벌해 달라고 적극적으로 요청할 수도 없다. 사건이 발생하고 며칠이 지나서야 꽌은 제적을 당한다.
이 정도는 학생을 가르치는 교실 안에서 일어날 수 있는 예상가능한 문제 상황일 것이다. 비정규직 여성 시간강사인 네 명에게는 이뿐만 아니라 대학의 사업 진행 그리고 그 과정에서 발생한 문제들을 없애기 위해 하루아침에 일자리가 없어지기도 한다. 그러다 대학의 필요에 의해서 단기 일자리에 갑자기 투입되기도 하고. 참...... 책을 읽으면서 답답하고 안타까웠다.
몇 년 전 나는 막연히 '한국어교원자격증 괜찮아 보이는데? 취득해 놓으면 좋을 것 같은데?'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그 자격증만으로 밥벌이를 하고 있는 사람들의 현실 같은 소설 속 이야기는 또 다른 버티기였고 살아남는, 살아내는 것이었다. 이 책을 읽지 않았다면 몰랐을 현실. 이 글의 제목이 '또 다른' 살아남는 것에 대한 이야기인 이유이다. 소설이 나의 공감의 폭을 더 넓혀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