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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riting Choenghee Jun 22. 2023

강해 보였던 아버지가 힘을 얻는 곳

손녀가 뒤집기 하는 영상

 학창 시절 아빠를 생각하면 가까이하고 싶지 않은, 무서운, 집에 없었으면 하는 사람이었다. 지금은 아빠, 엄마 두 분 다 나이가 드셔서 그런지 예전만큼은 덜 싸우신다. 집안 청소, 반찬 등 사소한 것부터 돈, 인간관계 등 무게 있는 것들까지 다양한 주제로 다투시고 싸우셨다. 욕설이 난무하고 물건이 날아다니며…


 특히 내가 고등학생일 때 정말 많이, 하루 걸러, 아니 거의 매일 싸우셨다. 학교 마치고 학원을 갔다가 집에 갈 때면 오늘 아빠, 엄마가 또 싸우고 있지 않을까, 두려움에 떨며 집에서 들리는 인기척을 살피며 들어가곤 했다. 오죽하면 당시에 두 분께 이혼을 제안한 적도 있다. 매일 밤 받는 스트레스로 집을 나가고 싶었다. 마음에도 없던 학교 기숙사에 들어가서라도 집을 나오고 싶었다. 결국 고3 때, 기숙사에서 공부하기로 결심하고 집을 나왔다.


 기숙사에서 공부한다는 것이 편치만은 않았다. 집에 두고 온 엄마 때문에. 엄마 혼자 위험한 상황에 혹시나 처하진 않을까 염려되었고, 그렇게 나는 엄마를 보호하고 있는 아이어른이 이미 되어있었다. 어릴 땐 아빠, 엄마 두 분 중 상대적으로 여성인 엄마가 더 약해 보였고, 자연스럽게 엄마의 편이 되었다. 엄마가 더 약해 보이니 엄마를 보호해야 할 것 같았다.


 그 당시에 엄마를 보호하던 내가 아빠에게 대든 적이 있다. 그때 아빠가 "니가 아빠 나이 돼봐라. 지금 넌 아무것도 모른다."라고 하셨다. 그 말을 들은 당시의 나는 그럼에도 내가 정답인 줄 알았고 여전히 엄마의 편에 있었다. 아빠가 너무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요즘 아빠의 말씀처럼 나이가 좀 더 들고 사회생활을 하다 보니 아빠의 입장과 상황이 이해가 되기도 했다. 그리고 그 당시의 아빠가 너무 외로웠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나이만큼 시간이 흐르면서 다양한 사람들과 함께하고 세상을 살아보니 인간사에 정답이라는 것은 없는 것 같다. 각자의 상황과 입장이 있고 그것을 이해할 수 있는지의 여부에 따른 갈등만이 남는다고 생각한다. 저마다 살아온 환경이 있고, 그에 따라 형성된 성향과 어떤 상황이 주어졌을 때 어떤 선택을 하게 되는지의 경향성이 다르다. 그래서 무엇이 더 중요한지, 가치를 두는 곳도 다를 수밖에 없다. 결국, 두 사람의 성향, 선택경향성, 가치관 등이 비슷하면 갈등이 적고 관계가 원만할 가능성이 크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 서로가 서로를 이해할 수 없어 반목할 가능성이 클 것이다. 우리 부모님은 이 부분들이 너무나 각자의 극에 있을 정도로 크게 다르다.


 나이가 드셔서인지, 이제 헤아릴 수 없는 큰 차이를 포기하지 않으면 극복할 수 없다고 생각하셔서인지, 이제는 더 이상 싸우지 않으신다. 아빠, 엄마, 두 분이 서로가 서로의 어떤 부분을 포기하면서 인정하게 되기까지, 아니 감내한다는 표현이 맞겠다. 감내하기까지 약 30년이 걸린 것 같다. 내가 자라온 시간 말이다. 가장 가깝게 붙어사는 부부에게 그렇게 긴 시간을 고통스럽게 보내야 오늘의 피상적인 평화까지 도달할 수 있다는 것이 참 아이러니하게 느껴졌다.


 그 피상적인 평화는 점점 시간이 흐를수록 내적으로도 흘러들어 갔다. 서로 일상을 나누며 웃는 시간이 늘어갔다. 그리고 내가 결혼을 하고 딸을 낳으면서 두 분의 화목이 눈에 띄게 늘어났다. 부모님 연세에 흔히들 하시는 여행을 간다거나 등산을 간다거나 그런 특별한 이벤트를 함께 해서가 아니라, 손녀딸의 사진과 영상을 보며 웃고 행복해하는 그런 일상의 빈칸들을 통해서다.


 작년 11월 말. 딸이 드디어 뒤집기를 혼자 힘으로 해냈다. 그동안은 상체를 계속 뒤로 넘기며 대각선으로 몸을 비틀어 뒤집으려고 안간힘을 다했었다. 갖은 노력 끝에 마침내 딸은 스스로 자신의 몸 전체를 뒤집은 것이다. 남편과 나는 흥분해서 역사적인 날이라며 영상을 찍었다. 그리고 바로 친정 식구들의 단톡방에 올렸다.


 그로부터 며칠 뒤, 엄마와 통화할 일이 있어 연락을 했다. 전화를 끊기 전에 엄마가 말씀하셨다.

 “느그 아빠 OO이 뒤집는 영상 보면서 살아갈 힘을 낸다 카드라. 그 어린 게 몇 번을 거의 뒤집다 돌아오고 뒤집다 돌아오고 카드만 결국 뒤집어내는 걸 보고…”

 아마 못다 한 말에 담긴 의미는 포기하지 않고 끊임없이 시도하며 결국 해내는 그 모습을 보고 본인도 삶에 대한 의지를 다시 굳건히 하게 되었다는 것 아닐까?


 사실 엄마의 그 말을 듣고 놀랐다. 자식들에게는 한없이 잘해주려고 하셨던 아빠였지만 엄마와 사이가 안 좋았던 그 시기들로 인해 내가 아빠에 대해 갖고 있는 이미지는 흔히 말해 강하고 세 보이는 사람이다. 키도 크시고 풍채도 좋으셔서 더 그 이미지가 부각되어 보인다. 그런 아빠가 고작 100여 일 된 작디작은 손녀딸의 뒤집기 영상을 보고 그렇게 말씀하시다니 아빠도 그간 세월이 흐른 만큼 그 강인함이 많이 녹슬었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또, 강한 겉모습 때문에 가려졌었던 아빠의 삶의 노고와 외로움이 보였다. 손녀딸이 뒤집는 모습이 담긴 영상에 힘을 얻어야 했으니까.

 

 요즘 엄마랑 전화를 할 때마다 스피커 너머로 자주 아빠의 목소리가 들린다.

 “왜 요새 OO이 사진 안 보내노?”

 그럼 엄마는 이렇게 덧붙이신다.

 “아빠가 밤마다 자기 전에 OO이 사진이랑 영상 얼마나 많이 보는지 모른다. “

 손녀딸 보고 또 보고 그 귀여움에 웃고 얘기하다 잔다고.


 이제 학창 시절의 딸이 아니라 성인이 되어 전보다 더 많은 것을 볼 수 있고 이해할 수 있을 만큼 성장한 딸은 아빠에 대해서도 더 많이 보이기 시작했다. ‘내가 10대 때 볼 수 있는 크기. 딱 그 크기만큼만 아빠를 봤었구나.’ 아빠의 강한 모습만 보였던 때였다. 그 이면의 외로움, 사랑, 눈물 많은 여린 부분들은 보지 못했었다. 지금은 보인다. 이제야…




 글 제목에 첨부되어 있는 사진은 요즘 딸이 한창 뭘 붙잡고 서는 연습을 하고 있는 장면이다. 자야 할 시간인데 자지 않고 계속 창틀을 붙잡고 서고 또 앉았다가 넘어지기도 하고 또 붙잡고 서고 하는 모습을 보며 엄마가 아빠가 OO이 안간힘을 써 아등바등 시도하다 마침내 뒤집기를 해내는 영상을 보면서 힘을 낸다고 했던 그 말이 생각나서 사진을 찍고 글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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