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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riting Choenghee Aug 31. 2023

지구도 종말하고 태양도 죽을 것이다.

<문과 남자의 과학 공부>를 읽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해

 '태양 아래 영원한 것은 없다'라는 말을 살면서 자주 들어봤다. 몇 번은 친구와 대화하면서 농담 삼아 써본 적도 있었던 것 같다. 그런데 이 말이 틀린 말이란다. 태양만은 영원할 줄 알았는데 태양도 죽는다고? 책 <문과 남자의 과학 공부> 속 아래 인용한 부분을 통해 태양이 어떻게 죽게 되는지, 그 마지막 장면을 미리 만나보았다.



 우리는 떠나온 별로 돌아갈 수 없다. 우리 몸의 원자들을 만든 별은 죽고 없다. 태양이 생애를 마칠 때까지는 지구에 머물러야 한다. 다른 별처럼 태양도 죽는다. 태양은 온도와 압력이 높은 중심부에서 매초 수소 4억 톤을 융합해 헬륨을 만든다. 핵융합의 결과 수소 핵 4개가 양성자 2개와 중성자 2개로 이루어진 헬륨 핵이 되는데 그 과정에서 질량의 극히 일부가 에너지로 바뀐다. 중심부의 수소는 앞으로 50억 년 정도 지나면 바닥난다. 수소 핵융합이 멈추면 태양은 온도가 내려가면서 자체 중력으로 수축한다. 중심부의 온도와 밀도가 높아지면 헬륨을 융합해 탄소와 산소를 만든다. 태양은 표면에 남은 수소를 마저 융합하면서 적색거성(red giant star)으로 부풀어 오른다. 껍데기가 흩어지면서 수성과 금성을 삼키고 지구를 껴안는다. 그것이 지구의 종말이다. 중심부의 헬륨을 소진하고 나면 태양은 수축하다가 마지막 핵융합을 일으키며 폭발한다. 열기가 남아 있는 동안은 백색왜성(white dwarf)으로 희미하게나마 존재를 알리지만 온기를 완전히 잃으면 흑색왜성(black dwarf)으로 우주를 떠돈다.

- 책 <문과 남자의 과학 공부> by 유시민



 태양이 끝을 향해가는 과정 속에 지구의 종말이 포함되어 있다. 그러니까 우리가 살고 있는 행성, 이 지구도 언젠가는 다 타버리고 잿더미처럼 우주를 떠돈다는 이야기인 것이다. 예전부터 지구종말론은 수차례 있어왔다. 종교적으로 묵시록을 근거로 날짜와 여러 상황들을 연결시켜 언제 지구가 종말할 것이라는 예언 아닌 예언들이 있었다. 최근에는 이상기후 증상,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으로부터 파생된 재난으로 지구에 큰 재앙이 닥칠 것이라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한다. 그러나, 지구가 종말할 것이라는 것은 언제나 실제로 일어나지 않을 것이란 생각을 쉬이 했었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는 말이 있다. 작가, 가수, 배우, 작곡가들이 부러웠다. 그들은 직업, 즉 자신의 업 자체를 행함으로써 이름을 널리 알릴 수 있다는 생각에. (물론 이도 쉬운 일은 아니다.) 작가는 자신의 책, 가수는 히트한 곡, 배우는 출연한 필모그래피, 작곡가는 자신이 만든 곡을 세상에 남긴다. 후세 사람들이 쉽게 그들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고 매체로도 쉽게 전달되는 경향이 있다. 그러므로 그들은 다른 어떤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들보다 그들의 족적을 제대로 남기는 듯한 느낌이 들어 부러워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자신의 업적과 명성, 이름을 남기고 싶지만 위에 언급한 직업 종사자가 아닌 경우에는 자서전 같은 책을 써야겠다거나 연구를 통해 업적을 남겨야겠다거나 혹은 부자가 되어 대대로 자식들이 살아갈 자산을 물려줘야겠다거나, 아니면 결혼을 하고 자식을 낳는 것 자체가 자신을 포함한 가족의 대를 잇는 것이기에 자녀를 낳아야겠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어떠한 방식을 선택했든 간에, 그 방식으로 이 지구에 족적을 남긴다 한들 지구가 멸망하고 태양마저 종국에는 까만 잿더미가 되어 우주를 떠돌 거라고 하는데, 그렇게 된다면 후세도 후대 사람들도 존재하지 않는다. 미래를 위해, 아니 내가 존재하지도 않는 먼 미래를 위해 육체의 한계를 극복해 영생하기 위해 책을 쓰고 연구를 하고 밤새워가며 작곡하고 운동을 해서 신기록을 세운다 해도 그 노력들이 다 무슨 소용일까. 어차피 모든 인간을 포함한 생명체와 우주는 끝이 나는데.  



 그래서 자신이 생각하는 건강하고 행복한 삶의 기준들을 다 무너뜨리고 자유의 한계선을 넘어 방탕하게 살 것인가? 어차피 50억 년이라는 긴 시간이 더 흘러야겠지만 언젠가는 모든 것이 잊히고 사라진다. 그럴 거라면 이름도 족적도 이 지구에 남기기 위해 피땀 흘릴 이유가 없는 것이다. 과연 그럴까.


 




 지구가 종말하고 태양이 죽을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는 것은 지금 우리에게 허락된 시간인 현재에 집중하고 지금을 온전히 즐길 수 있게 해 준다. 미래를 생각하며 더 이상 무언가를 남길 필요가 없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의 나를 만든 과거는 이미 흘러버렸으니 어쩔 도리가 없다. 남은 건 현재밖에 없다. 그렇다면 현재에 할 수 있는 것들에 집중하면 되는 것이다. 이 순간 내가 하고 싶은 것, 내가 원하는 것, 가까운 미래에 내가 이루고 싶은 것에 집중하고 그 과정에 몰입하고 충실하면서 기쁨과 희열을 만끽하면 되는 것이다.



 어찌 보면 지구가 멸망하고 태양마저 검게 타 사라질 것이라는 사실은 다행인 일인 줄도 모른다. 그 먼 미래까지 남들의 입에 오르내릴 자신의 명성이나 악명에 대해 신경쓸 조금의 필요성도 말끔하게 없애주니까.



 또한, 지구와 태양이 끝이 있다는 사실은 미래를 위해 현재를 희생하지 않도록 해준다. 미래에 뭔가를 성취하기 위해 현재 이 순간의 기쁨과 즐거움을 일절 허락하지 않는 것은 너무나 가학적이다. 불확실한 미래를 걱정하느라 양 어깨에 모든 근심과 걱정을 달고 있다면 결국 멸망할 지구와 태양 또한 떠올리며 어깨에 쌓인 그것을 조금은 가벼이 털어내도 좋지 않을까.


 

 한편, 어차피 다 사라질 운명, 한평생 방탕하게 제대로 한 번 즐기고 가겠다는 허무주의 같지 않은 허무주의는 어떻게 보면 그 후폭풍을 스스로 다 감내하겠다는 의미이다. 그러한 선택으로 오는 책임은 현재, 이 순간 다 짊어져야 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 개인의 잘못된 선택들의 히스토리는 미래에 다 타고 없어진다 하더라도. 결국 스스로의 발목을 스스로 묶는 것을 넘어 자르는 행위이다.



 결국 좋은 삶의 방식은 간단하고 명료하게 한편으로는 진부하고 지루한 문장으로 다시 표현된다. '지금 여기 이 순간에 살아라(here and now)'. 아주 가까운 미래에 대한 계획은 그려본다 하더라도. weekly, monthy, 조금 더 길게 허한다면 a one-year planner처럼.

  





 책 <문과 남자의 과학 공부>는 교양서답게 뇌과학, 생물학, 화학, 물리학, 수학 등 과학의 내용들을 이해하기 쉽게 서술했다고 하지만 그럼에도 많은 부분 쉽지 않았다. 하지만, 위처럼 다시 알게 된 과학적 사실들로 삶에 대해, 삶을 대하는 태도와 자세에 대해 단순하고도 명료한 답을 도출할 수 있었다. 동일한 책에서 인문학의 과제란 인간과 사회를 이해하고 설명하는 데 유용한 담론을 생산하는 것이라고 했다. 인문학뿐만 아니라 과학도 인간이 이 사회, 이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에 대해 어쩌면 더 명쾌하게 답을 줄 수도 있지 않을까. 문과도 과학을 공부하면 좋을 것 같다.



*글 제목 이미지 출처: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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