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진작 쓰지 않았을까.
브런치스토리를 시작한 게 올해 5월 16일이니 글을 쓴 기간을 세어보면 3개월 하고도 조금 넘었다. 몇 번 글에도 남긴 적이 있지만 브런치스토리를 시작하기 전에는 참 쓰지 않는 사람이었다. 독서도 인상 깊은 부분을 사진으로 찍어두었지 필사는 한 적이 없다. 공부도 필기하기보다 읽으면서 머릿속에서 정리했다. 다이어리, 스케쥴러도 매년 사지만 잘 쓰지 않아 아무것도 쓰이지 않은 빈 종이 쪽수가 더 많은.
쓰는 게 참 무용해 보였다. 책을 읽을 때는 책 내용에 집중하며 정독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소위 뼈를 때리는, 감명 깊은, 나의 성장에 도움이 되는, 혹은 깊이 공감되는 부분을 책 속에서 발견했을 땐 사진으로 남겨두면 된다고 생각했다. 왜 굳이 필사를 하는 걸까. 더 이해가 안 되는 건 책 전체를 필사하는 분들을 목격했을 때였다. 천천히 정독하면 되지 왜 저렇게 시간낭비를 하는 걸까. 필사할 시간에 더 많은 책을 읽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시험공부를 할 때엔 더욱이 쓰는 게 이해되지 않았다. 책에 다 있는 내용을 굳이 또 똑같이 노트에 옮기는 이유가 납득이 되지 않았다. 그저 책 자체를 구조화시키면 되는 거 아닌가. 형광펜으로 키워드를 하이라이트하고, 하위 키워드나 주요 세부내용들을 다른 색으로 형광펜 하거나 밑줄을 쳤다. 시험은 누가 머릿속에 더 많은 내용을 조직화해서 갖고 있고 문제가 요하는 내용을 빠르게 인출하느냐에 달려있다고 생각했기에 더더욱 노트필기는 시간낭비라고 생각했다. 굳이 공부할 때 펜을 잡고 썼던 경우는 백지를 책상 위에 올려두고 방금 공부한 내용을 책을 덮고 마인드맵을 그릴 때밖에 없다. 쓰는 방식으로 인출을 해봄으로써 공부가 잘 되었는지, 잘 안된 부분은 어디인지를 확인하기 위해서. 다이어리, 스케쥴러도 그날의 투두리스트, 잊으면 안 될 것들 등을 쓰는 데는 사용했지만 정작 나를 위한 쓰기로 활용한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정말 단 한 번도. 나를 위한 쓰기는 아래에 조금 자세히 서술해 보겠다.
브런치스토리를 통해 글을 쓰면서 나는 참 어리석었던, 자만덩어리를 안고 살았던 인간이었다는 걸 깨달았다. 쓰기를 쓸모없다고 생각했던 내가 스스로 부끄러웠다. 사람들은 왜 글을 쓰는지, 글을 쓰면 무엇이 좋은지 등 쓰기의 필요성과 좋은 점들을 여실히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글을 썼으면 좋겠다. 필사든, 일기든, 에세이든, 시든, 소설이든, 그게 무엇이든.
필사를 하든, 일기를 쓰든, 시를 쓰든, 소설을 쓰든. 쓰는 순간부터 나 자신과의 대화가 시작된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를 알게 되고, 내가 바라는 나의 모습을 알게 되며, 나아가 내가 부족한 점이 무엇인지 알게 된다. 쓴다는 행위는 지금 내 뇌구조 그림에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어떤 것, 혹은 내가 당도한 문제에 집중하고 파고들게 만들기 때문이다. 자연스럽게 그 큰 부분의 어떤 것에 대하여 쓰게 될 수밖에 없다. 그것에 대한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며 멈출 수 없기 때문이다. 읽기는 그것을 발견하는 것에 그치게 하지만, 쓰기는 그것에 대해 깊이 파고들게 하고 한 문장, 한 문장, 글을 하나, 둘 쓰면서 그것이 선명하게 떠오른다. 그래서 쓸수록 내가 바라는 바, 내가 집중하고 싶은 것, 내가 원하는 것을 발견할 수 있게 된다. 그것을 이루기 위해 현재 나의 상태에 비추어 부족한 부분도 자연스럽게 도출되기 마련이다. 적어도 나의 경우에는 그랬다.
매일 쓰는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조금이라도 더 나은 사람이 될 가능성이 있다면, 그건 훗날 돌아볼 기록이 과거를 반성하게 해 주어서가 아니라 현재에서 나와 마주 앉는 시간을 꾸준히 보내기 때문일 거예요. 그리고 그 시간은 인생에서 내게 그리 중요하지 않은 것들에 쓸데없이 힘을 빼지 않도록, 반대로 내게 중요한 것들은 지키며 살 수 있도록 도와줄 것입니다. 나라는 사람이, 다른 누구도 아닌 나로서 잘 살아갈 수 있도록 말이에요.
- 책 <기록하기로 했습니다.> by 김신지
위에서 인용한 것처럼 글을 쓰면서 나와 마주 앉는 시간을 많이 갖게 되었다. 그러다 내가 잊고 있던 과거의 꿈을 찾게 되었다. 나의 전문성을 활용하여 책을 쓰고 싶다는 것. 그 책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겪는 어려움을 덜어주고 싶다는 것. 다 오픈하면 재미없으니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다 보면 하나, 하나씩 공개되겠지. 그렇게 많은 이들에게 내가 가진 능력으로 도움이 되는 삶을 살고 싶다.
초등학생 때부터 일기 쓰기가 국어 시간 숙제가 되었고, 방학 때도 어김없이 숙제로 제출해야 했다. 학기 중에는 그나마 미루지 않고 진정성 있게 일기를 썼던 것 같은데 방학만 되면 몰아서 썼다. 날씨가 참 고민거리였다. 일기는 미뤄 쓰더라도 날씨만큼은 그날그날 미루지 않고 체크해뒀어야 했는데... 선생님이 날씨도 맞게 썼는지 체크하실 것 같은데 다르게 써서 혼나면 어떡하지... 하면서 걱정하던 기억이 생생하다.
후회스럽다. 초등학생 때부터 쓰기의 중요성을 일치감치 체감하고 쓰기를 시작했다면 지금의 나는 어떤 사람이 되었을까. 그때부터 스스로와 마주 앉아 자신에게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매일 밤 생경하게 떠올리고 다음 날을 온전히 자신에게 집중하며 살아왔다면, 그 시간들을 차곡차곡 쌓아왔다면 지금보다 더 성숙한 사람이 되었을 것 같다. 겉만 무르익은 사람이 아니라 겉을 채우고 있는 그 속까지. 그랬다면 지금 쓰고 있는 나의 글도 지금보다 더 깊이 있는 글이 되지 않았을까.
자신이 쓴 일기와 다이어리를 모으는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했다. 책장의 한 칸을 저렇게 차지하고 있으면 먼지만 쌓일 텐데, 아니면 디지털화해서 노트북이나 스마트폰으로 쓰지라고 생각했었다. 그렇게라도 쓰지 않았으면서. 지금 생각하면 참 오만하고 부끄럽다. 지금이라도 일기, 또는 브런치스토리에 글을 매일 써볼까 한다. 지금이라도 나와 대화하는 시간을 늘려 나를 더 단단한 사람으로 키우고 싶다. 내가 바라는 나의 모습을 갖추고 싶다.
*글 제목 이미지 출처: 픽사베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