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넘어야 할 첫 번째 벽은...
3년 전 내가 담임을 맡았던 제자가 아침부터 카카오톡으로 연락이 왔다. 갑자기 생각이 났다며 별 탈 없이 잘 지내고 계시냐며. 요즘 교권침해 사안으로 연일 애통한 뉴스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는 가운데 그 제자는 나의 안부가 궁금했나 보다. 선생님은 잘 지내고 있고 육아 휴직 중이라며 너는 어떻게 지내고 있냐고 하니 놀라운 대답이 돌아왔다. 그 대답 때문에 나는 감사함을 주제로 한 에세이 하나를 쓰려다 포기하기로 했다.
당연히 익명으로 글을 쓸 테지만 만약 그 제자가 나중에라도 내 브런치 계정을 알게 되었고 글을 읽게 되었을 때 자신에 대한 이야기가 만인에게 밝혀졌다는 사실에 기분이 안 좋을 수도 있을 것 같아서. 또 그 제자의 주변 친구나 지인들도 읽어보면 누구에 대한 글인지 알게 될 수도 있다. 조금 더 부풀려보면 내 글 하나로 그 제자는 감정이 상하는 것 이상으로 주위 사람들로부터 발생하는 불필요한 소음과 잡음까지 감내해야 할 일일 수도 있다. 그래서 글의 주제가 오로지 나에 대한 것이거나 혹은 타인에 대한 것이라면 알려졌을 때 좋은 일일 경우에만 쓰는 편이다.
최근 읽은 책 <작가의 목소리> 중 '에세이를 쓸까 소설을 쓸까'에서 사람들은 흔히 소설보다 에세이를 쓰기 쉽다고 하지만 에세이를 쓰는 것 또한 만만치 않음을 몇 가지 이유와 사례를 들어 설명하고 있다. 그중 와닿았던 지점은 내가 쓴 글이 어떤 이에게 상처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두 번째와 세 번째 책으로 에세이를 준비하면서, 다른 작가들의 에세이를 참고 삼아 많이 보았습니다. 요즘은 시대가 변하면서 불편한 것이 있으면 숨기지 않고 드러내는 세상이 되었죠. 그래서 그런지 에세이에서도 무언가 날이 서있고, 날카롭고, 예민하고, 불편한 게 있으면 불편하다 말하는 게 당연한 세상이 된 것 같습니다.
당사자가 본다면 아, 이건 분명 내 얘기군, 하면서 크게 상처받을 만한 내용들을 '에세이'라는 장르 안에서 풀어내는 글들이 많았습니다. (중략)
저는 누군가 글로써 저를 나쁘게 표현한다면, 기함할 것 같습니다. 말이야 뱉어내면 허공에 흩어지고 사라진다지만, 글이라는 것, 특히 책은 오래도록 남게 되니까, 그 상처의 크기도 훨씬 크게 느껴진다고 할까요. 물론 저라고 미운 사람이 없겠냐마는, 글로 그 미움을 그려낼 때는 많은 고민을 하게 되는 것 같아요.
- 책 <작가의 목소리> by 이경
모든 작가의 사정과 심정을 다 알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타인에게 상처가 될 수도 있는 글을 쓰는 사람의 입장을 생각해 본다면 의도적으로 상처를 주려고 쓴 글이 아닐 수도 있다. 자신이 받은 상처가 너무나 헤아릴 수 없이 큰 것이기에 자가 치유 차원의 해소적 글쓰기였을 수도 있다. 그 상처를 다시 글로 쓸 때 다시 그 고통의 순간으로 자신을 오롯이 데려다 놓는 것 또한 쉽지 않았을 것이다. 또, 더 나아가서는 그 글을 통해 자신과 비슷한 처지에 놓여있는 독자들에게 위로와 공감을 전달하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나의 경우에 타인에 대한 글을 쓰기란 너무나 막중한 책임감이 따르는 일이다. 글 하나가 주는 영향력은 엄청나게 크다. <작가의 목소리>에서 저자 이경이 썼듯, 말은 허공에서 흩어지지만 글은 작가가 일부러 지우는 그 순간까지는 남아있다. 그 사이에 많은 일이 발생한다. 불특정 다수가 오해나 확대해석으로 악성댓글을 달거나, 글 퍼 나르기로 작은 불씨가 커져서 걷잡을 수도 없는 산불을 낸다. 산불 난 뒤에 글을 지워봤자 이미 늦은 것이다.
교사도 생즉고의 삶을 살고 있고 그것을 말로든 글로든 풀어야 살아갈 수 있는 한 인간일 뿐이다. 그러나, 직업상 그 말의 무게가, 글의 무게가 다른 직업군의 그것보다 더 무거운 것 같다. 요즘은 교사들도 인스타그램으로 솔직한 학교 현장과 교사로서 자신의 감정을 풀어내기도 하지만 적어도 나에게는 그것이 너무나도 어렵다. 오죽하면 나의 브런치스토리 계정도 유일하게 남편만 알고 있다. 혹시 브런치스토리에 'TEACHER CHOI' 그거 너 아니냐며 물어보는 가족이나 지인조차 없다. 한편으론 많은 것을 오픈할 수 있는 그들의 솔직함과 용기가 부럽기도 하다.
그러면 소설을 써볼까. 글을 쓰는 건 너무 좋고 포기할 수 없으니 말이다. 소설은 허구이지 않은가. 그런데 이마저도 나에게는 쉽지 않다. 소설을 쓰기 위해 등장인물, 스토리, 구조, 시점, 세계관 등등에 대해 구상해야 하는 복잡함과 어려움은 차치하고라도 제일 먼저 맞닥뜨린 벽은 에세이에서 만난 벽과 똑같다. 허구라는 소설도 결국 현실을 살고 있는 소설가로서의 한 사람과 그의 삶을 드러낼 수 있다는 것. 많은 소설가들이 쓴 작품들은 자전적 소설이다. 소설가가 쓴 작품에 그의 경험과 가치관이 특정 인물과 상황, 배경에 고스란히 반영될 수밖에 없다. 또는, 소설가 자신이 경험했던 것 그대로를 토대로 약간의 허구를 섞어 작품을 쓰기도 한다. 나마저도 작품을 읽은 후에 작가를 의심하기도 하는 것이다. 이거 자기 얘기 아니야 이거 하면서.
나는 나를 드러내는 것이 너무 어렵다. 나 자신을 그대로 드러내는 것도 쉽지 않을뿐더러 혹시나 나로 인해, 내가 쓴 글로 인해 다치는 사람이 생길까 봐 걱정이 되기도 한다. 나 자신을 드러내는 일에 대해서는 그나마 노력을 하기는 했다. 부모님의 갈등으로 인해 힘들었던 어릴 적 이야기도 브런치스토리를 통해 글로 드러냈으니까. 나로서는 조금씩 노력하고 있는 중이지만 아직 다 내려놓지는 못한 듯하다.
<책 한번 써봅시다>를 쓴 저자 장강명은 솔직한 글을 쓰고 싶다면 뛰어넘어야 할 세 가지가 있다고 했다. 욕먹는 데 대한 두려움, 자신을 뽐내고 싶은 욕심, 교훈과 감동에 대한 집착이 그것들이다. 나의 잠재의식 속에 이런 욕구들이 있는 건가. 생각해 보게 된다. 혹시나 내 글에 욕이 담긴 악성댓글이 담기지 않을까. 내가 멋있어 보이고 싶어서, 지인들이 내 글을 읽었을 때 엄청 잘 썼다고 평해줬으면 하는 건가. 교훈과 감동을 담은 글을 쓰고 싶은 건가...
*글 제목 이미지 출처: 픽사베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