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스라이 그 꿈이 멀어져 가는 줄 알았다.
영어를 운명처럼 만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학창 시절 영어를 좋아했다. 그저 영어로 된 글을 읽고 원어민 선생님과 소통하며 해외 여러 나라에 사는 외국 친구들과 손수 한영, 영한사전을 찾아가며 영어로 편지를 쓰며 펜팔 활동을 하는 것, 팝송을 듣고 미드, 영드를 보는 것 등 영어로 읽고 듣고 쓰고 말하는 모든 것들이 이유 없이 좋았다. 영어를 하는 나 자신이 마음에 들었다.
자연스레 영어로 먹고사는 직업을 갖고 싶었고, 영어 교사, 외교관, 통번역가가 내 장래희망 리스트에 항상 있었다. 많은 인서울 사범대 영어교육과, 국제통상학과, 정치외교학과, 그리고 통번역학과는 그 당시 해당 분야로 유명했던 한국외대 영어통번역학과에 진학하고 싶었다.
영어교사가 되면 통번역은 업무차 하는 일이 잦아질 거라고 생각했고, 마음만 먹으면 부업으로도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렇게 통번역가는 우선순위에서 뒤로 밀려났다. 외교 관련 학과는 자연스레 영어교육과 보다 멀어지게 되었고 결국 덕업일치로 천직과도 같은 영어교사가 되었다.
영어 교사가 되니 운명처럼 미국과 자매학교 결연을 맺은 학교로 발령이 났고 국제교류 담당 업무를 맡게 되었다. 미국 자매학교가 우리 학교를 방문할 때, 그리고 우리가 미국을 방문할 때 나는 담당자로서 중간자적 위치에서 매 순간 통역을 해야 했다. 실제 통역가가 맡은 업무보다 그리 난도 높은 통역은 아닐 것이다. 크게 전문 용어가 오가지 않고 교육적 상황이나 일상생활에서 쓰이는 표현들, 우리 학교와 자매학교가 위치한 지역의 문화나 역사 등의 표현들만을 주로 사용하게 되니까. 하지만 마치 내가 통역가가 된 듯한 느낌에 설레며 내 업무를 즐겼다. 당시 결혼 전이었고 부모님과 함께 살 때였는데 홈스테이를 제공하고 있던 차라 나의 부모님과 부모님 댁에 잠시 머무를 미국 학부모 사이에서의 통역도 해야 했다. 한편 번역은 기회가 거의 없었다. 그렇게 번역가라는 꿈을 가졌다는 기억이 점점 희미해져 갔고 바쁜 일상에 치여 차츰 잊혔다.
그러다 번역가가 쓴 에세이가 자주 눈에 띄었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추후에 읽을 책 리스트에서 후순위로 밀려난 적이 많았다. 영어 교사가 되었으니 한 때 꿈이었던 번역도 점점 나와 먼 세계로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현실적으로 번역을 할 일이 없어 보였고 번역을 할 시간도 없었다. 나의 직업은 번역가가 아니고 영어 교사니까.
그런데 우연히 책 <그래도 번역가로 살겠다면>이라는 책을 읽게 되었다. 이 책을 쓴 이지민 저자와의 인연으로. 코로나 19가 터지기 직전 나의 다음 여행지는 뉴욕이었다. 뉴욕을 너무나 가고팠는데 코로나가 퍼지면서 우리나라 내에서의 이동도 쉽지 않았던 터. 책을 통해서라도 뉴욕을 가보자 싶어 우연히 만나게 된 책 <브루클린 책방은 커피를 팔지 않는다>. 저자가 두 딸들과 자주 브루클린 곳곳에 있는 서점들을 방문하며 그곳의 특징들과 매력들을 소개하는 책이다. 나는 여행을 갈 때마다 그 지역 유명 서점은 꼭 들른다. 그래서인지 이 책이 내가 뉴욕을 간다면 방문할 곳들이구나 싶어 실제로 뉴욕 여행을 하는 느낌이 들었다. 몰랐는데 이 책을 쓴 분이 미국에 살면서 번역 활동을 하고 계시는 중견 번역가셨다. 나는 번역가 이전에 저자, 작가로 먼저 알게 되었지만.
이 분이 쓴 책 <그래도 번역가로 살겠다면>의 책을 읽으며 내가 미처 몰랐던 번역가의 투쟁과도 같은 고군분투와 녹록지 않은 번역의 현실을 여실히 알게 되었다. '5년에 500원 오를까 말까 하고 물가상승률조차 반영되지 않는 번역료를 받으면서도'(동일한 책에서 인용) 번역이라는 일을 얻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삶, 그리고 번역 실력을 향상하기 위해 티도 안 나지만 가랑비에 옷 젖듯 매일 조금씩 도착어(영어), 출발어(한국어), 맡은 번역의 내용에 해당되는 전문분야를 공부해 가는 삶, 팔리는 번역가가 되기가 그렇게 힘든 현실 속에서도 그저 번역이 좋아서 매 순간을 번역가로서의 자신을 알리고 갈고닦아 발전시키는 사람을 발견할 수 있었다.
*책 <그래도 번역가로 살겠다면>의 리뷰는 다음 글에서 계속됩니다.
*글 제목 이미지 출처: 픽사베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