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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이라는 여전히 녹록지 않은 세계

<그래도 번역가로 살겠다면>를 읽고 그럼에도 번역가는 존재했다.

by Writer Choenghee

책을 읽으며 예상치 못했던 부분 중 하나는 번역가도 1인 기업과 같아 영업능력이 필요하다는 사실이다. 번역가가 되기 위해 필요한 것을 생각해 본다면 흔히 언어능력, 번역할 분야의 전문지식과 경험을 쉬이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이와 더불어 출판기획서를 작성하여 번역할 책을 따내고 SNS를 통해 자신을 알려 번역할 거리를 받기도 하는 등 요즘은 과히 자신을 알리고 오픈하는 시대인가 보다.


또 흔히 영상 번역을 생각하면 극장에서 상영되는 영화 자막을 생각한다. 하지만 영화 자막을 번역할 수 있는 사람은 극히 소수라고. 영상 번역을 하려고 하는 사람들 중 어떤 사람은 '유명 극장에서 상영되는 영화의 엔딩 크레디트에 내 이름이 버젓이 등장할 거라 기대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자신이 유명한 영화를 번역할 거라 생각하는 건 연예인의 생활이 전부 화려할 거라 단정 짓는 것이나 마찬가지다.'(동일한 책에서 인용)


번역가가 되기 위해서 그리고 번역가들이 하는 공부는 하나의 책에서 무수한 가지가 뻗어나가듯이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였다. 크게 외국어 익히기, 한국어 익히기, 글쓰기 연습, 번역 기술 공부로 분류할 수 있었다.


첫 번째, 외국어를 익히기 위해서는 다양한 유형, 다양한 문체의 글을 골고루 읽어 익숙해져야 하고, 각 글의 특징과 특정 유형의 글에서 자주 사용되는 문구나 어휘를 눈여겨보는 등 와인감식가나 바리스타처럼 글의 미묘한 온도를 잡아낼 줄 알아야 한다고 한다. 또한, 목표는 번역이기에 짧은 글, 긴 글 가릴 것 없이 다독과 정독을 골고루 하여 하나의 글을 꼼꼼히 읽기도 해야 하지만 가능한 많은 글을 접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다양한 외국어 표현을 암기하는 것도 필요한데 이는 한국어를 외국어로 번역할 때 암기한 표현을 그대로 가져다 쓰지 않고 창의적으로 외국어 표현을 만들어 쓸 경우 어색한 표현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문법 공부는 따로 시간을 투자할 필요는 없지만 한 번쯤은 검토할 필요가 있고, 살아있는 영어표현을 주워 담는 것도 잊지 말아야 한다. 단어의 어근이나 다양한 용례를 설명해 주는 책을 비롯해 언어와 관련된 에세이를 가볍게 읽는 것도 좋다.


두 번째, 한국어 익히기. 한국어다운 한국어를 구사하기 위해서 한국어의 특징을 별도로 공부하면 좋다. 예를 들어, 주어의 생략이 잦고 동사의 활용이 다양하다는 것처럼. 띄어쓰기나 맞춤법, 자연스러운 한국어를 구사하는 법 역시 관련 책의 도움을 받아야 하며, 한국어로 된 책을 다양하게 많이 읽는 것 또한 필요하다. '나는 소설가나 시인의 글을 읽는 것을 좋아한다. 맛깔스럽고 생생한 언어를 쓰는 소설가, 언어를 경제적으로 다룰 줄 아는 시인은 나의 숨은 번역 스승이다.'(동일한 책에서 인용)


세 번째, 글쓰기 연습. '번역은 글쓰기다. 최종 형태가 글이기 때문에 글을 얼마나 잘 쓰느냐에 따라 번역문의 질이 결정된다.'(동일한 책에서 인용) 그러므로, 번역가가 되려면 내가 옮긴 글을 다듬는 연습을 해야 하며 내 글을 쓰는 연습도 해야 한다.


네 번째, 번역 기술 공부. 번역의 바이블 <번역의 탄생>, <번역의 모험> 등 책을 바탕으로 직접 번역해 보길 추천한다고. '나는 괜찮은 책, 그러니까 역자가 믿을만하고 원서가 나의 관심 분야인 책을 찾으면 공부 교재로 점찍어 놓는다.'(동일한 책에서 인용) 그리고 평소 책을 읽다가 자신이 구사하지 못할 것 같은 표현을 보면 밑줄을 치거나 별도로 정리해 두는 것도 추천했다. 마지막으로 번역학원, 번역아카데미, 번역대학원 등을 통해 번역 수업 듣기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뿐이랴. 이 글에서 요약된 내용 이외에 어마어마한 번역 공부의 세계가 책 속에 펼쳐져 있다. 공부해야 할 책들, 읽으면 좋을 책들 등 도움이 되는 저서들의 목록도 있으니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인용한 부분은 '(동일한 책에서 인용)'이라는 어구를 달았지만 사실 많은 부분이 책의 내용을 요약하였기 때문에 상당 부분 인용 하였음을 밝힌다.




글을 써보면 자신을 알 수 있다고 했던가. 이렇게 번역가들에게 필요한 공부를 요약하는 나 자신을 보며, 또 번역 공부에 도움이 되는 책들, 번역가들이 쓴 에세이, 언어의 역사와 용례를 알려주는 책들의 리스트를 보며 설레는 나 자신을 발견하며 아직도 여전히 내 마음속 한 자리에는 번역을 해보고 싶다는 감정이 조금은 살아있다는 것을 느낀다.


마음을 먹고 번역을 하고 싶어 하는 감정을 조금 더 들여다보았다. 나는 우리 한글의 이루 말할 수 없는 아름다움을 포함해 세계의 다양한 외국어들로부터 알 수 없는 신기함과 매력을 느끼는 듯하다. 너무 자연스러워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잊고 있는 공기처럼 언어라는 것도 지극히 자연스럽고 당연한 듯 보이지만 그 언어의 발생과 변화, 역사를 들여다보면 너무나 흥미진진할 것 같다. 대학 시절 영어사에 대해서 몇 강의를 듣으며 흥미롭게 수업을 들었던 기억이 난다. 아직 국어를 제외하고는 영어밖에 할 줄 모르지만 독일어, 스페인어, 프랑스어 등 다양한 외국어도 습득하고 싶다. 언어를 넘어 그 나라의 문학도. 글을 쓰다 보니 하고 싶은 건 많은데 현실적으로 제한된 여건이 머릿속에 하나 둘 떠올라 안타까운 심정이지만.


많은 소설가들 중 번역을 하는 유명 작가들이 있다. 일본의 무라카미 하루키가 그러하고 우리나라의 정세랑 작가, 정보라 작가가 그러하다. 특히 소설 <저주토끼>로 2022 부커상 인터내셔널 최종 후보작에 선정되었던 정보라 작가는 러시아와 폴란드를 비롯한 동유럽권 문학작품들을 주로 번역한다고 한다. 소설가들이 번역을 하는 데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시, 소설, 수필 등 문학을 하기 위해 살아 숨 쉬는 스토리만 중요한 게 아니다. 한 작품의 스토리를 표현하는 단어 하나하나, 그 단어들이 모여 이루는 표현과 문장들을 차근차근 곱씹어보고 내 것으로 표현하는 과정이 번역과 맞닿아 있는 것 아닐까.


아마도 소설가를 포함한 작가들과 번역가들은 다음과 같은 기쁨을 아는 사람들인 듯하다. '문장 하나하나를 옮기는 데 머물지 않고 하나의 삶을 옮기려는 노력. 번역이 그런 일이라면 책에 닮긴 하나의 삶을 오롯이 내 것으로 소화하고 싶은 사람에게 이보다 더 큰 매력은 없을 것이다. 그 삶을 이해하려는 시도, 그 삶에 공감하려는 마음은 번역가에게 가장 큰 기쁨이자 고난의 원천 아닐까?'(동일한 책에서 인용)


한편 번역을 번역가를 부수적인 일, 무대 위의 백댄서처럼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와는 반대로 하나의 작품을 써내는 작가는 아티스트, 예술가, 창조자로 칭송하기도 한다. 번역가를 한 때 꿈꿨던 나 자신도 이러한 생각을 했던 적이 있었다. 그저 하나의 책을 독자들이 읽기 쉽게 옮기고 싶다는 단순한 생각. 번역에 대해 아는 게 아무것도 없던 시절 단지 영어가 좋아 번역에 대해 무지한 상태에서 철없이 했던 생각. 아니다. 번역은 그런 게 아니다. 번역은 또 다른 창조이자 번역가는 창작을 수행하는 예술가이지 않을까. 부커상이 작가와 번역가에 함께 수여되듯이.


'우리는 글을 읽을 때 자신의 맥락 내에서 이를 해석하는 경향이 있다. 해당 글에 대한 배경지식, 문체의 친숙함, 이해력 등이 맥락의 다름으로 인해 사람마다 각기 다른 독해가 나온다. 번역 역시 동일한 원문에서도 각기 다른 해석이 나올 수밖에 없는데, 정영목 번역가는 이를 두고 "인간의 언어는 성기기 때문에 번역의 반은 상상이다."라고 했다.

우리의 생각을 담아내는 언어의 상대적 빈약성 때문에 저자조차 자기 생각을 100퍼센트 담아냈다고 확신할 수 없는 글에 번역가는 자신만의 해석을 입힌 뒤 또다시 언어라는 성긴 형태 속에 이를 담아내야 한다. 이 일련의 과정은 겉으로는 보이지 않으며 번역가 자신조차 의식적으로 행하지 않는다.' (동일한 책에서 인용)




번역가들의 고군분투하는 삶과 그럼에도 계속되는 녹록지 않은 현실, 번역가를 바라보는 아직도 여전한 시선들이 책을 읽으며 가슴 한편이 아려왔다. 4차 산업혁명, 인공지능과 더불어 번역가의 현실은 어쩌면 더 힘들어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저 무언가를, 어떤 이야기를 풀어내는 언어가 좋아 그것을 알리려고 얼마 안되는 수입에도 투쟁적인 삶을 살아가는 번역가들에게 조금이나마 밝은 현실이 다가오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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